첫째를 영재원 준비 학원에 보내고 있습니다. 영재라서 그런 건 아니고, 아이의 가능성을 조금 더 열어주고 싶어서예요. 합격이 목표라기보다, 그 과정을 통해 배우는 게 많다고 믿습니다. 아이가 다양한 사고방식과 친구들을 만나고, 새로운 자극을 받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3개월 정도 다녔나, 어제, 아들이 갑자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빠, 나도 이제 미디어랑 게임 그만하고 과학 책을 읽어야겠어.”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먼저 시킨 적도 없고, 특별히 그런 이야기를 꺼낸 적도 없거든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원에서 만난 친구 중 한 명이 과학 이론과 실험을 아주 자연스럽게 설명하더래요. 그 친구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또래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조리 있게 말했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나도 저렇게 알고 싶다’, ‘나도 과학을 더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요.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책을 읽어야겠다고 결심한 거죠.
사실 아이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그날처럼 단호한 말투로 다짐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진심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함께 책을 찾아보고, 아이가 흥미를 느낄 만한 과학 관련 도서를 주문했습니다. 주말에는 함께 서점에도 다녀왔습니다. 아이가 직접 고른 책을 들고 나올 때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날 이후로 마음속에 오래 남은 생각이 있습니다. ‘역시 환경이 중요하구나.’ 부모의 말보다 더 강력한 건, 아이 스스로 느끼는 깨달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공부해라”, “책 읽어라” 해도, 아이가 스스로 원하지 않으면 그 말은 공기처럼 흘러가 버리죠. 그런데 아이 스스로 깨닫는 순간, 그 마음은 훨씬 오래갑니다.
제가 자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환경 설정’입니다. 아이를 바꾸려 하기보다, 아이가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늘 아이 옆에서 책을 읽으며 본보기를 보이려 했습니다. 말보다 행동이 더 큰 울림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점점 부모보다 친구들의 영향을 더 받는 나이가 되었네요. 하지만 그 또한 성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방금 둘째가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도 형아 따라 미디어랑 게임 안 할 거야. 형이 안 하니까 나도 안 하는 거지.” 제가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왜 따라 해?” 그러자 둘째가 대답했습니다. “응? 그냥... 그건 당연한 거야.”
둘째는 그렇게 말하고, 형 옆에 앉아 과학책을 펼쳤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잘 안 되던 일을, 형의 행동 하나가 자연스럽게 바꾸어놓는 순간이었으니까요.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아이들의 세계는 이렇게 전해집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서로의 마음에 파문을 남기죠. 그래서 결국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영향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돕는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이를 통제하려 하기보다, 좋은 자극이 오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 그것이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걸 요즘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