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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욱 May 01. 2021

창작자의 가장 큰 적은 자존감 상실이다.

꿈 꾸기는 쉽지만 실현하긴 어렵다.


두리뭉실한 아이디어와 감정들을 이리저리 떠올리면서 노는 건 즐겁지만, 그 정확한 형태를 찾아주는 건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기획자나 클라이언트의 콘셉트를 시각화시켜야 하는 디자이너는 항상 피로에 지쳐있다. 최근에 젊은 신입 디자이너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고민거리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그들이 표출하는 이와 같은 좌절감이 느껴져 가슴이 아팠다. 회사에서 갖은 구박과 피드백을 받다 보면 '내가 정말 디자인에 능력이 없는 걸까?' 혹은 '나는 디자인을 그만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와 같은 자기 비하적 생각들에 빠져버리게 된다. 왜냐면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조차 자기의 결과물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또 어떻게 바꿔야 할지 혼란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쪽은 언제나 다른 직원이고 그걸 표현하는 건 디자이너 이기 때문에, 표현을 담당하는 디자이너는 자책에 빠지고 기획자는 답답함을 느낀다. 


하지만 사실 하나의 디자인 결과물이 나오기 위해선, 디자이너의 손뿐만 아니라, 기획자의 탄탄한 콘셉트, 그리고 그것이 시각화 가능한지 또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를 제시할 수 있는 믿음직한 가이드라인, 그리고, 어느 정도 선택과 집중을 위한 텍스트의 절제와 충분한 이미지 소스가 받쳐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디자인 결과물을 뽑아내기 위한 프로세스로 작용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디자인 작업물의 책임에는 그 과정에 관여한 모든 구성원들이 동시에 책임을 지고 협동해야 한다. 


그러나 단지 마지막 과정을 다룬다는 이유로 디자이너는 실패한 디자인 결과물에 대한 독박을 쓰고 그것에 대한 책임도 홀로 묻게 되는데, 그 디자인이 왜 이런 식으로 나왔는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실패 요인을 찾아내기지 못하고 디자인 역량 문제로 쉽게 귀결되는 경향이 있다. 왜냐면 기획자들의 머릿속에는 항상 어느 정도 이상에 빠져있는 디자인 기획이 있기 때문이고, 디자인 결과물은 그것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도 이런 책임이 자신에게 전가되는 것에 대부분 반박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어떻게든 아름답게 시각화하는 것이 자신의 역량이라는 이상한 사명감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난 디자이너들이 모든 결과의 탓을 자신에게 돌릴 필요가 없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디자인은 단지 감각으로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소통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듬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혼자의 역량으로 완성될 순 없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디자인 감각'이라는 것은 허울 좋은 환상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아름다운 이미지란 업계에서 정형화되어있는 기호를 따라 하는 데에 불과한 것일 때가 많다. 나는 현재 상업적인 색깔이 강한 업계에서 디자인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사실은 별거 아니었던 디자이너들이 지켜가는 일종의 법칙들을 스스로 알아내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기 전에는 정말 감각이니, 손재주니 하는 말들에 휘둘려서 자책을 하곤 했었다. 중요한 건 감각이 아니라 흡수력과 유연성인 것 같다. 여러 가지 소위 잘 만들었다는 디자인 작업물을 비교해보면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색깔과 구도, 형태, 서체의 사용방법 등이 무엇인지 탐구해보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힐 것이다. 그런 법칙들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다면, 디자이너가 아닌 협력자들로부터 감각이 좋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전까지는 멘털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패배감의 휩쓸리기보단 언제나 이성적으로 해결책을 강구한다면 분명히 값진 성장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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