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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욱 Apr 20. 2023

디자인과 도덕

디자인의 주관성을 어떻게 이해할까?



예전 회사에서 일하면서 이런저런 디자인적 견해 차이로 회사 사람들과 많이 싸우곤 했다. 어느 날은 한 직원 분과 한참 싸우다가 머리를 식힐 겸 담배 존으로 나와 대화를 이어가던 중, 왜 우리 사이에 계속 이런 논쟁이 지속될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우리가 합의한 공통 결론은 ‘디자인이란 논리적이지만, 수열적 논리가 아닌 감성의 논리로 작동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논리적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다.’라는 다소 추상적인 문장이었다.


그렇다면 감성의 논리란 도대체 무슨 말일까? 논리와 감성은 서로 충돌되는 성질의 것 아닐까? 논리는 규칙적이고 명확한 답안을 가져야 할 것 같고, 감성이란 공유하기 어려운 온전히 주관적인 성질의 것인데… 이것을 이해해 보기 위해 나는 디자인과 도덕을 비교해서 설명해보고 싶다. 


디자인과 도덕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실천적이고 사회적인 행위이다. 웃어른께 인사드리는 예의범절이든 낯선 외지인과 만나 서로 합의가능한 매너를 지키든, 도덕은 상호 간 관계 내에서 발생한다. 의지와 감정을 마음속에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통해 실제로 특정한 동작을 수행하고 (인사) 언어를 발설해서 신호를 주어야 비로소 작동한다. 어렸을 때 예의 바른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내면의 주관적 감성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회적 신호체계를 조금은 강압적으로 주입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도덕은 엄격하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규칙들이 정엄하게 나열되어 있다. 웃어른을 보면 인사해야 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면 안 되며, 술잔이 비었을 땐 따라드려야 한다. 


실천적 성격의 창작행위인 디자인에서도 마찬가지로 해야 한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법칙들이 존재한다. 

어떤 색의 조합은 더 좋은 효과를 발생시키고, 어떤 타이포그래피는 안 쓰는 게 좋다. 이런 법칙들은 문화, 사회, 개인에 따라 기준이 상이하다.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다양한 의견차가 존재할 수 있다. ‘깻잎 논쟁'처럼 완전히 의견이 반반으로 갈리는 주제가 있을 수 있고, 많은 이가 동의하는 디자인 언어가 존재할 수 있다.


다수가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있지만 이 것이 개인의 감성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 사회에 의해 강제되지 않는다는 점이 디자인과 도덕의 공통분모를 형성한다. 즉 감성의 논리란, 암묵적 합의라고 볼 수 있다는 것.

이 모호한 디자인의 개념을 가장 편리(?)하게 습득하는 방법은 도덕이 국가의 법을 수립하듯, 디자인 방법론에서도 절대적인 법칙을 설정하는 것인데, 디자인에 절대적 법칙이란 절대적으로 있을 수 없다. 


디자인은 개인 주체의 미감적 활동에서 벌어지는 즐거움이 동력이 되는 행위이다. 도덕이 실천적 자유를 지향한다면, 디자인은 감성적 자유를 지향한다. 엄격한 법이 자유를 제한하는 것처럼, 디자인의 엄격한 법칙수립은 결국 디자이너의 창작동력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도덕은 가장 외면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가장 내면적인 곳으로 향하는 운동성이다. 강제적인 어떤 법칙들을 수용하고 판단하고 정제하고 변형하고 응용하며 개인은 자유로운 주체를 발견한다. 점차 강제적인 성질의 것들에서 벗어나며, 도덕행위의 논리를 스스로 발견하고 설득하는 힘이 곧 양심이다. 디자인은 이런 도덕적 주체의 발견을 미감적 형태로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디자인의 행위와 결과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재정립은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려는 목적을 넘어서서 도덕으로 귀결된다.


민주적 사회에서 법은 도덕에 근거한 사회계약으로 성립되어야 한다. 하지만, 개인의 도덕적 판단력이 미숙한 사회에선 법에 근거한 도덕법칙이 관계를 지배한다. 디자인에 필요한 것은 더 정밀하고 엄밀한 디자인 교육이 아니라, 디자인이 스스로의 자율성을 발견하는 개인의 실천 행위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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