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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미령 Jan 05. 2022

육아 말고 뭐라도,

육아에서 탈출해 나만의 <비상구>를 찾는 엄마의 이야기



나는 평범한 두 아이의 엄마다.




엄마가 되어버렸다.

첫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했었고, 아이가 10개월이 되던 무렵 나는 복직을 했었다.

매일 아침 6시면 잠든 아이의 옆자리에서 살그머니 고양이 걸음으로 침대에서 기어 나와 욕실로 가서 씻고,

드라이기 소리에 아이가 깰까 봐 최대한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고, 아이가 자고 있는 방에서 가장 먼 방으로 가서 문을 꼭 닫고 후다닥 말렸다. 급히 바탕 화장만 하고 뛰어 나가던 워킹맘이었다.







아이와 함께 한 시간도 소중했지만 10개월 만의 혼자만의 외출이라니 발걸음이 너무 가벼웠다.

일하러 갈 수 있음에 감사했고, 나를 나로서 봐주는 어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할 수 있고 내가 10년간 일해왔던 손에 익은 업무를 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내 자리에 앉아 식지 않은 커피를 마시며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아이가 걱정되고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한동안은 그 기쁨이 너무나 좋았다.






내가 나로서 살 수 있는 그 시간이..










그리고,

복직 후 3개월이 지났을 무렵 나는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 계획했던 일이었고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육아는 계속하고 있었지만, 이 즐거운 회사에 나오지 못할 생각을 하니 또 집으로 돌아가 식은 커피를 마실 생각을 하니 아쉬웠다.

 


물론,

일을 하다 보면 사람에, 일에 부대끼는 순간들이 올 때엔 "이럴 거면 내가 왜 핏덩이를 두고 나와서 일을 하고 있나."라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들은 만족스러웠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살아있음을 느끼니까





그래도 남은 기간 동안 직원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다지며 배려 속에 잘 지낼 수 있었다.

마지막 출산휴가일까지 나는 회사에 대한 끈을 놓지 못했다. 미련이었다. 내심, 회사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끈을 놓지 않겠노라 발버둥 쳤던 것 같다. 돌아오겠다는 여지를 남기고 출산휴가를 들어갔지만, 나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고 나의 본업은 <육아>가 되었다.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육아휴직 기간은 아이 한 명당 12개월이다.

나는 사실 그 기간 내내 나 혼자 둥둥 떠다니며 회사와 육아 사이를 오갔다.

시댁과 친정 부모님은 지방에 살고 계셔서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남편은 진정으로 내가 일을 하고 싶다면 육아도우미 선생님을 구인해서 맡겨보라고도 했다.

하지만 아이 하나를 맡기는 것도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두 아이를 맡기게 되면 그 비용은 나의 월급만큼 지출해야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큰 고민을 하고 퇴사를 결정하게 되는 듯했다. 그 시기에 나는 수없이 많은 고민의 글들을 찾아 검색하고 검색하고, 어떤 결정이 최선일 것인지 밤새 고민했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글을 찾아봤자, 의미가 없었다.

그 어떤 것도 내 상황과 같을 순 없었으니까.

결국 내가 우리 가정 안에서 우리의 상황에 비추어 최선을 다해 고민해 보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최상의 선택인 것이었다.




나의 내적 갈등이 지속되는 동안 본사에서는 지속적으로 연락이 왔었다. 일할 사람이 필요하니 조기복직을 할 수 있는지 인사팀 담당자의 러브콜 아닌 러브콜이 왔던 것. 처음엔 너무나 감사했다. 나를 잊지 않고 나를 원하는 회사에게. 그러나 아직 아이들의 육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결국 미루고 미루다가 육아휴직의 끝까지 오게 되었다.





왜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만 했던 것일까?



내가 계속되는 고민만 지속하자, 직관적이고 팩트 폭격을 잘하는 남편과의 면담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대놓고 아래의 질문들을 했다.



왜 일을 계속하고 싶은지?

복직을 해서 일을 할 생각이면, 정년까지 일을 할 마음으로 임원까지 할 생각으로 복직을 해라.

회사로 돌아가서 내가 원하는 목표는 무엇인지?

복직을 진심으로 하겠다면, 육아비용은 얼마가 들어가든지 상관없다. (남편의 생각) 어차피 미래가치로 따지면 지금부터 일을 해서 연봉은 계속 오를 것이고, 아이들의 육아비용은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줄어들 것이니까.

단지, 나(남편)는 지금 아이들이 지금 엄마의 손이 한창 많이 필요할 때인데 네(나)가 회사에 가서 일을 시작했다가 나중에 아이들이 학교 갈 때 그만두게 되면 아이들의 빛나는 시간이 다 지나가버린 후인데, 그런 일이 생기는 건 원치 않는다. (보통 아이들의 학령기가 되면 적극적인 서포트를 위해 엄마가 퇴사하는 경우가 많고 맘 카페에 초등 입학을 앞두고 고민 글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올라온다.)



남편의 질문을 듣자마자,

나는 <현실의 육아 세계에서 탈출하고 싶어 발버둥 치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저 위의 질문들에 대해 대답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남편의 말이 다 옳았다.


내 목표는 불투명했고, 나는 회사라는 <비상구>를 만들어놓고 육아를 하면서도 비상구로 탈출할 생각만 했으니까 말이다. 너무 부끄러웠다. 미안해졌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그렇게 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회사>로 다시 나갈 수 있는

나만의 희망이자 비상구는 닫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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