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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미령 Sep 14. 2023

누구를 위한 육아인가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두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고, 신생아실의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갓 태어난 아이를 보고 두 번 다 눈물을 흘렸다. 그 때를 짚어본다면 내가 이 예쁜 아이들을 어떻게 '잘' 키울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휩싸였고 어떻게 '잘' 지켜낼 수 있을까? 물음표 속에는 너무 '잘'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내가 부족한 사람이란걸 알기에, 나만큼 부족하지 않으면 좋겠고 예쁘고 밝고 아름다운 세상만을 담아주고 싶었다. 아이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래서 더욱 불안했다. 상처받지 않으면 좋겠고 그저 예쁘고 밝기만을 바랐다. 



두 아이가 태어나고 첫 아이가 8살 둘째가 6살이 되었다. 

그 사이 내 바람은 헛된 것이었음을 수도 없이 깨닫게 되었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 대혼돈의 육아 8년째. 여전히 어렵다. 모두 아이를 위한 마음인데, 그 모든 바람을 아이에게 쏟고 나서 멍하니 돌아보면 결국은 '나'를 채우기 위한 나만의 노력이었다. 미안함. 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끝없이 아이를 채우고 있었다. 그러면 안된다는 건 이미 너무 많이 학습했지만 쉽지 않다. 여전히 나는 초보엄마다. 









어릴 적 우리엄마는 교육에 관심이 많지는 않았지만 누가 좋다더라, 하는 책은 전집으로 많이 사주셨다. 그래서 좋은 책이 많았다. 계몽사 디즈니 시리즈부터 세계명작전집과 브리태니커 사전까지 라인업되어 있었다. 지금 기준 좁은 17평 아파트였지만 당시엔 적당히 네 가족이 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내가 어릴때만해도 아이들이 흔히 하는 예체능은 피아노와 태권도였기에 5층 아파트 복도를 타고 피아노 소리가 울리지 않는 집이 없었다. 덩달아 나도 피아노를 배웠는데 엄청나게 잘 치는 것도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닌 편이었다. 언니가 다니는 속셈학원 봉고차를 타고 쫓아다니며 구구단을 배웠고, 너무 쫓아다녀서 엄마가 등록을 시켜줬다는 후일담도 있다. 둘째라 귀동냥으로 들은 구구단을 다섯 살에 모두 외웠던 나를 기특해하시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나도 내가 똑똑한줄 알았던 때가 있었지. 하지만 그건 그냥 동요를 귀뜸으로 들어 기억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다만, 노래가 <구구단> 일 뿐이었던 것. 우연의 일치랄까. 


언니는 첫째라서, 늦게 얻은 아이라 엄마가 더욱 신경써서 한글과 받아쓰기, 학습에 집중했다고 한다. 원래 생일이 9월인데 동사무소에서 어떻게 고쳐서(?) 1월생으로 바꾸고 거의 6살에 입학을 한 것이나 다름없던 언니를 받아쓰기에서 하나만 틀려와도 문 앞에서 벌벌 떨게했다는 엄마. 나는 그런 기억이 없네? 그냥 적당히 보통의 어린이로 살았다. 나도 9월생인데 정직하게 8살에 입학했고, 엄마와 받아쓰기 연습을 한 기억이 없다. 피아노와 속셈학원에 다닌 경험은 있었고, 그렇게 뛰어나지도 못 따라가지도 않는 진짜 보통의 아이로 자랐다. 




초등학교 3학년, 동네 친구 누군가가 튼튼영어를 시작했다. 나도 하고 싶다고 엄마에게 얘기를 해서 전축에 테이프를 끼워 들으며 영어를 익혔다. 영어발음이 너무 매력적이라서 반했던 어린이는 정말 재미있게 영어를 따라했고, 덕분에 발음은 참 좋았고 재미있게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끈기는 조금 부족했던 덕분에 오래하지는 않았고 흥미는 금방 식었다. 사교육을 해도 엄마가 끌어주는 건 없었고 진짜 내가 스스로 했다. 서툴렀다. 영재도 아니고 정말 보통의 어린이였고, 하고 싶고 흥미로운 건 많은데 조절할 수 있는 힘은 부족했다. 점점 성장하면서 느낀건데 스스로 질문을 참 많이 던지며 컸다. '나는 왜 이렇게 끈기가 없을까? 왜 끝까지 제대로 해 내는게 없을까?' 더불어, 부모님이 그걸 좀 잘 잡아주셨다면 내가 좀 더 멋진 어른으로 크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늘 있었다. 늘 부족하다고 느꼈던 유년기였다.  





그렇다. 내 어린시절엔 <결핍> 이 있었다. 그래서 더 하고 싶어했고, 그 기회가 소중했다. 엄마가 알아서 시켜주지 않으니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먼저 알아보고 요구해야했다. 내 어린 시절은 그렇게 쌓여갔다. 넉넉지는 않았지만 우리 아이가 하고 싶다는 건 시켜주셨다. 사실 의논하지 않고 먼저 저지르고 왔다. 학교에서 학예회에서 발레할 사람~ 선생님께서 수요조사를 하시면 내가 하고 싶으면 그냥 손을 들었다. 그리고 집에와서 나 이거 하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스스로 쌓아갔다. 교내 글짓기 대회에도 지원해보고 글 써서 제출해보는 시도도 누구의 도움없이 혼자서 쓰고 혼자 제출했다. 그렇게 성장했다. 지금도 내가 하고 싶고 궁금한 게 있으면 도움을 요청하기 보다 알아서 찾아서 찾아낼 때까지 디깅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다 보니 서칭하는 범위가 광범위하고 정보의 연결을 잘 하는 편이다. 이 모두가 결핍에서 왔었지. 늘 목말랐고 스스로 채우느라 바빴던 유년기가 내게는 버거웠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 결핍이 채 생기기도 전에 늘 채워주느라 바빴다. 그 모습을 보며 나의 행복을 채우기 바빴지. 아이는 어렸고, 엄마는 아이의 그릇이 비워지기도 전에 항상 채워두었다. 요즘 정서에 결핍이 꼭 필요한가? 라고 생각했는데 적당한 기다림은 필요했다. 욕구를 느끼기도 전에 무언가 아이의 발 앞에, 눈 앞에 와 있던 일상들 덕분에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왜 그것을 원해야 하는지 잘 몰라하는 것 같은 요즘. 어떤 자극을 주어야 아이는 스스로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하는 것을 구분하고 말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가고 있다.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너의 발 밑에 엄마가 가져다 둔 풍성한 열매들을 작은 손에 다 담기도 전에 앞으로 나아가는 데 걸려 넘어지게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픈 요즘이다. 아이야. 너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열매들이 하나같이 엄마가 좋아하는 열매들만 있었던걸까? 너의 마음에 쏙 드는 작고 소중한 열매를 함께 따러 가자. 엄마를 위한 열매는 이제 그만 따다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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