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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균 Aug 02. 2024

2. 이케아: 가구 장만하기

1. 이케아로 놀러 가기   

“우리는 이케아를 소풍의 목적지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 <이케아, 불편을 팔다>, 미래의창, 215P   

신혼집을 꾸미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가구 살 일이 많았다. 다행히 이케아가 그리 집에서 멀지 않았다.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몰고 조금만 나가면, 파란색과 노란색의 거대한 건물이 반겨준다. 이케아 고양점이다. 보통 사야 할 것들은 많지 않지만, 구경만은 잔뜩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케아를 가는 날은 신이 난다.   

이케아는 스웨덴에서 시작된 전 세계적인 가구업체다. 나는 십여 년 전 이케아를 신문기사로 처음 접했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이케아가 한국에 처음 진출했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당시에 이에 대해 사회적 반향도 있었다. 뉴스 중 절반 정도는 한국의 기존 가구업체와 소상공인들을 걱정했다. 또 다른 절반의 뉴스는 이케아의 세계적 성공을 치켜세웠다. 양쪽 뉴스 모두를 읽으면서 그때 나는 이케아가 한국에 들어온다면 한번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고양에 이사를 오고 나서 그 목표를 이뤘다. 첫 방문은 새로운 탁자를 사기 위해서였다. 나의 20대 동안 모든 가구는 당연히 1인용이었다. 그동안 살았던 작은 방은 의자에 책상 겸 식탁 하나 놓여있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 결혼해서 작은 가족을 이루게 되었다. 이제 거기에 맞는 가구들로 모두 업그레이드가 필요했다.    

이케아에 처음 가본 날, 그 규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크기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가구업체가 아닌 일종의 테마파크에 온 듯한 기분마저 든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정문으로 들어가면 방 하나를 이케아 가구들로 꾸며놓은 진열실들이 반겨준다. 각각의 방들은 주제가 있는데, 예를 들어 ‘고풍스러운 취향을 가진 가족의 방’이거나 ‘혼자 사는 즐거움’ 이런 식이다. 그렇게 구경하다 보면 마치 다른 이의 집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 기분 마저 든다.   

고양이란 도시의 특색인 듯하다. 나처럼 신혼부부나 혹은 이제 아이를 키우는 집이 많다. 생각해보니 우리 동네에도 어린이들이 많다. 대한민국은 이제 저출산이라고 난리인데, 이 도시만은 예외 같은 착각마저 든다. 그래서인지 이케아 고양점도 그런 수요에 맞게 제품들이 구성되어 있다. 구경을 하는 사람들도 내 또래가 눈에 많이 띄어 마치 신혼부부를 위한 맞춤 가게처럼도 보인다.

이케아 진열실 @촬영

그런 점에서 이케아가 파는 것이 단순히 가구가 아닌 생활양식이라는 생각도 든다. 누구나 갖지 못한 생활양식을 동경한다. 진열실들을 둘러보면 내 정리되지 못한 방이 부끄러워지면서, 현대적으로 꾸며진 이런 방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자연스레 들기 마련이다. 진열실 방바닥에는 카펫을 깔려있다. 침대 옆에는 작은 협탁, 그 위에는 양장 된 책 한 권. 꿈꿔 볼 만한 강렬한 이미지다.   

이케아가 처음 독일에 진출했을 때, 가구에 대해 인식의 전환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가구란 더 이상 부모님께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방을 꾸미기 위한 것이 되었다. 쉽게 말해 당시 젊은 세대의 취향을 공략했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이케아에 가면 사고자 하는 물건이 없더라도 구경하는 맛이 있다.    

어느새 나는 이케아의 팬이 되었다. 심지어 양가 부모님이 고양 신혼집에 구경 오셨을 적에, 고민하다가 이케아로 모시고 갔다. 다행히 이미 고양에서는 이케아가 나름 관광지처럼 알려져 그리 어색하지는 않았다. 부모님의 만족도도 높았다. 이제는 가끔 살 물건이 없어도 방문해본다. 새로운 신상품들을 둘러보고 식당에서 스웨덴식 음식을 먹으면서 그날을 즐겁게 보낸다.   


2. 스웨덴 체험하기   

세계 어디서나 이케아의 색은 파랑과 노랑이다. 그것은 스웨덴 국가의 색깔이기도 하다. 로고와 상자 모양의 매장 외벽 역시 이케아는 곧 스웨덴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매장에서 직원들은 노란색 폴로셔츠와 파란색 바지를 입는다. 벽을 장식하고 있는 사진들 모두는 보후슬렌, 베름란드, 블레킹에 같은 스웨덴의 풍광을 보여준다. 같은 책, P.207   

사실 이케아의 성공 공식이 무엇인지 분석한 기사는 예전부터 적지 않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제는 역사가 오래된 기업이다. 많은 분석이 가격 전략, 북유럽 스타일의 실용적인 디자인, 물류 혁신 등을 이케아가 성공적인 이유로 꼽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케아가 매력적인 브랜드로 나에게 다가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자면, 아무래도 스웨덴이란 이국(異國)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 때문이다.   

나는 외국을 선망하고 그래서 여행을 애호한다. 그런데 이케아는 나에게 일종의 짧은 북유럽을 여행하고 온 것 같은 유쾌한 착각을 준다. 흔히 세계적인 기업일수록 그 출신 나라를 숨기고 문화적으로 일종의 ‘중립’을 추구하는 것과 달리, 이케아는 이곳저곳에서 자신을 스웨덴 출신이라고 강렬하게 외치고 있다. 당장 처음 출입구에서부터 이케아는 말을 건다.   

“Hej”   

“헤이”라고 발음하며 스웨덴어로 안녕이란 뜻이라고 한다. 아마도 바이킹의 영향인지 영어와 비슷한 부분일 것이다. 이곳저곳 벽에는 스웨덴 풍경 사진들이 붙어있고, 상품명들은 모두 북유럽 지명이나 인명에서 따왔다. 이렇듯 계속해서 손님들에게 자신들이 스웨덴 기업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 나는 우습게도 시쳇말로 ‘맛집’으로서 이케아 식당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저 쇼핑몰에 딸린 식당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식당의 콘셉트가 훌륭하다. 여기서는 단순한 완자도 ‘스웨디시 미트볼’이라는 이름으로 제공한다. 얼마나 조리법이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그 나름의 건강하고 향이 강하지 않은 느낌만은 전해진다. 즉, 이케아 식당을 체험하면서 아마도 먹어본 적은 없어도 북유럽 음식을 상상하게 된다.   

이케아 식당에 앉아 연어 필레를 먹고 있다 보면, 이 가구회사는 왜 이렇게 스웨덴을 강조하는지 의문이 든다. 물론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주는 인상이 브랜딩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케아는 개발도상국에서 생산된 저렴한 물건들을 판매한다. 하지만 거기에 선진국이자 깨끗하고 친환경적인 스웨덴의 환상을 덧씌우는 것이다. 실로 현명한 전략이지 않을 수 없다.

이케아 식당 벽면 "스웨덴, 우리의 고향"이라 쓰여있다. @촬영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가구업체가 판매하는 것이 국가와 문화라는 점은 그래도 역시 특별하다. 고객들은 동경하는 나라를 만나는 경험을 산다. 크리스마스 무렵 이케아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이케아에서는 생강 과자로 만드는 집 모형을 소개하고 있었다. 스웨덴의 풍습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쓸모없는 과자를 사면서 마치 여행 기념품을 산 것 같은 즐거움을 느꼈다.   


3. 불편하게 가구 사기   

식당과 소품 진열대를 지나 계산대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도달하게 되는 곳은 창고다. 놀랍게도 이케아는 손님에게 직접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어 힘겹게 자동차에 싣도록 하고 있다. 친절한 회사가 절대 아니다. 사실 그 점이 지금의 이케아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엄청난 규모의 이케아 창고. 고객들이 직접 물건을 찾아 들고 와야 한다. @촬영

옷장이든 침대든 제품들은 ‘플랫팩’이라 불리는 납작한 형태로 포장된다. 당연히 이는 물류비를 아끼기 위함이다. 그러다 보니 고객들은 싼 가격에 가구를 살 수 있는 대신 직접 가구를 조립해야만 한다. 어느 연구에 따르면 이케아는 유통에 필요한 노동의 80%를 직접 고객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설명서를 보고 직접 공구를 사용해 가구를 만드는 이 ‘이케아식 조립’은 꽤 악명 높다. 플라스틱 모델처럼 최초에 2차원으로 펼쳐진 물건을 3차원으로 다시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도 불만이 많은 모양이다.   

많은 이케아 고객들은 이케아에 대해 미움과 애정을 동시에 느낀다. 이케아는 고객들에게 일종의 초등학교 같은 곳이다. 그곳이 주는 교훈이라면, “살아가면서 힘들이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는 사실이다. 요리 전문가 볼프람 지벡은 주간지 <디 차이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번은 이케아에서 작은 책상을 사서 조립했습니다. 꼬박 이틀 낮, 이틀 밤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에 2킬로그램의 체중을 잃었고, 아내의 신뢰를 잃었고, 아이들의 존경심을 잃었습니다.” 같은 책, p.224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 조립과정을 싫어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내가 이케아에서 가구를 사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다. 포장을 풀고 합판으로 이루어진 부품들을 내려다보며 공구를 들고 있으면, 무언가 내 안 깊은 곳에 감춰져 있었던 남성성이 깨어나는 것을 느낀다. 전구를 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 되어야지 했던 어린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사실 나사를 낑낑거리며 돌리고 있으면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결국 그 과업을 끝내고 완성품을 보고 있으면 뿌듯함이 밀려온다. 특히 나의 작품을 직접 사용한다면 더 그렇다.   

한때 장난감 플라스틱 모델을 조립하는 것에 푹 빠졌을 때가 있다. 한참 회사에서 복잡한 일로 머리를 쓸 무렵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라디오 방송을 틀어놓은 채 새로 산 장난감을 늘어놓아 니퍼로 자르고 접착제로 붙였다. 무언가를 직접 손으로 만드는 행위가 오히려 휴식처럼 느껴졌다.   

이케아 가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간접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나를 살게 해주는 많은 것들이 모두 이미 어딘가에서 가공되어 택배를 통해 매일 아침 집 앞에 도착해있다. 물론 너무나도 편안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우리 뇌는 원시인의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의 원시인 뇌는 직접 무언가를 두 손으로 직접 노동하고 싶어 한다.   

어느 철학자가 우리는 앞으로 머리를 쓰는 직업과 손을 쓰는 직업 두 개를 동시에 가져야만 한다고 주장했던 글을 읽었던 적 있다. 글쎄, 그게 우리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일지라도 분명 비현실적일 것이다. 그러나 내 삶에서 그 규칙을 작게나마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나의 신혼집을 살펴보면 이곳저곳에 이케아 가구들이 놓여있다. 한때 내 열심의 흔적이다. 고양을 다루면서 제일 먼저 쓰고 싶었던 곳이 이케아 가구점이었다. 어쩌면 먼 훗날 내가 고양을 떠나게 되어 다른 곳으로 이사하더라도, 지금의 신혼 시절을 떠올리면 두근거리며 가구를 둘러보았던 그 모습은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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