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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May 26. 2022

<브로크백 마운틴> - 이데올로기에 금지된 사랑

Brokeback Mountain, 2005 - 이안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기이한’이라는 뜻을 가진 ‘퀴어(Queer)’는 이제 본래의 뜻으로 번역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굳어졌다. 그만큼 용어 자체는 대중에게 익숙해졌지만, 그렇다고 퀴어가 대중에게 친숙해진 것은 아니다. 과거에 비하면 사회적 인식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나 레이시즘, 젠더 이데올로기처럼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퀴어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 영화다. 영화의 시대 배경은 1963년, 미국으로 지금으로부터 6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은 종교(기독교)의 영향 때문에 퀴어 이데올로기에 매우 엄격했고 강한 탄압을 일삼았던 국가다. 영화에도 나오는 것처럼 동성애를 들킨 사람은 성기가 잘리고 맞아 죽기까지 했다. 이러한 시대 배경 안에서 영화는 가상의 공간인 ‘브로크백 마운틴’에 마초적 캐릭터의 대명사인 카우보이 2명, ‘잭 트위스트(제이크 질렌할)’, ‘에니스 델마(히스 레저)’를 데려다 놓고 이데올로기 하의 금지된 사랑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브로크백 마운틴을 찾은 잭과 에니스는 처음부터 서로에게 묘한 끌림을 느꼈다. 만약 이 미묘한 기류를 잘 읽어내지 못하겠다면 영화의 중반쯤에 나오는 로데오 광대를 잠시 보고 오면 된다. 잭이 자신과 일한 사람 중 최고의 광대라며 술을 사려하는 장면이다. 이때 로데오 광대는 잭의 접근과 행동을 자신을 향한 추파로 간주하고 자신에게 술 살 돈이 있으면 이 돈을 다음 로데오 참가비로 쓰라며 차갑게 대응한다. 이를 통해 당시 동성애자를 혐오하던 이성애자들이 조금이라도 미묘한 기류나 낌새를 눈치채면 어떻게 행동했는지 유추해볼 수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잭과 에니스의 만남을 보자. 상대를 신경 쓰며 힐끔거리고 때로는 티가 나게 쳐다보는 데 둘 중 누구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둘은 자신의 과거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 같은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며 빠르게 감정적으로 친해진다. 표면적으로 구분했을 때 잭은 영화 속에서 좀 더 섬세하고 여성적이며 상대적으로 말도 많이 하는 캐릭터다. 반면 에니스는 과묵하고 사격도 잘하는 남성적인 캐릭터다. 물론 단순히 이분법으로 나눌 순 없다. 잭이 거친 로데오 경기를 한다거나 에니스가 요리를 잘하는 걸 보면 이 캐릭터들은 한 가지에 치우치지 않고 어느 정도 복합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표면적인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영화에서 명확하게 밝히진 않았지만, 본인은 잭이 에니스에 비해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추운 날 텐트에서 벌어지는 둘의 성관계는 자신의 정체성을 좀 더 잘 알고 있던 잭이 포문을 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동안 어느 정도 낌새는 느꼈겠지만, 여성과 약혼하는 방식으로 정체성을 애써 부정해온 에니스는 자신을 앎에서 나온 행동력을 지닌 잭의 사랑에 마음을 열게 된다.     


 잭과 에니스의 사랑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둘의 사랑은 진행되면 될수록 서로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예정된 결말로 갈 수밖에 없었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여성과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살고 있어도 마음 한편엔 서로를 향한 그리움과 욕망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4년 뒤 엽서를 보내며 이번에도 먼저 행동한 잭에 의해 둘은 다시 만난다. 쌓인 그리움과 욕망은 예정된 고통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랑에 눈이 멀게 만들었다. 재회하자마자 에니스는 잭을 거칠게 잡아끌고 격렬하게 입을 맞춘다. 그리고 둘은 일 년에 한두 번씩 브로크백에서 만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 둘이 만나지 않는 날은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일 뿐이었고 자연스럽게 각자의 삶과 가정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결국, 예정된 고통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순간이 오고 만다. 20년의 기다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토로하며 차라리 그만 만나고 싶다고 말하는 잭과 나도 너 때문에 이 꼴이고 나한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으니 차라리 그렇게 하자고 울분을 터트리는 에니스의 모습을 보여주는 클라이맥스 신은 퀴어를 용납하지 않는 이데올로기 안에서 그들이 애써 외면했던 사랑의 결말이 찾아왔음을 알린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인상적인 것은 이데올로기 안에서 용납되지 않는 사랑을 한 대상자들 뿐 아니라 그들의 주변인들의 고통 또한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는 점이다. 에니스의 아내인 ‘알마(미셸 윌리엄스)’는 둘의 격렬한 키스를 직접 목격한다. 그리고 큰 충격에 빠진다. 하지만 남편인 에니스를 사랑했기에 타인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혼자서 고통을 감내하다가 이혼을 선택한다. 이혼한 후에 함께한 추수감사절 식사 후, 에니스와 감정적으로 부딪치는 신을 보면 알마도 쉽게 지울 수 없는 고통을 계속 안고 살아갈 것이란 걸 짐작할 수 있다. 잭의 주변 인물들은 알마처럼 밀회를 직접 목격하진 않았다. 대신 잭의 성향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은 한 듯 보인다. 잭의 장인어른은 그를 제대로 된 사위로 대접하지 않는다. 화가 난 잭이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반기를 들자 장인어른이 남성으로서 잭의 권리를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동안 장인어른은 잭이 다소 퀴어적인 면모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를 하대한 것으로 보인다. 잭의 부모님도 아들의 행동을 통해 퀴어 성향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잭의 끔찍한 죽음 앞에서도 아버지는 슬퍼한다기보단 ‘걔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라는 차가운 반응을 보인다. 잭의 아내 ‘루린 뉴섬(앤 해서웨이)’은 사망 경위를 묻는 에니스에게 남편이 타이어 폭파 사고로 사망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영화의 몽타주 신을 통해 관객은 잭이 사실 퀴어임이 탄로 나 끔찍하게 살해당했음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타인에게 바른대로 말하지 못하고 거짓말 해야 하는 루린도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의 죽음을 거짓으로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고통스럽고 눈에는 눈물이 차 있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에니스의 큰딸이 찾아와 자신의 결혼을 알린다. 이때 에니스는 딸에게 ‘그가 너를 사랑하는 거 같은지’ 물어본다. 이때 딸은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한다. 이후 딸을 보낸 뒤 에니스는 죽은 잭이 남긴 '에니스의 셔츠가 레이어드 된 남방'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하게 ‘I swear’라고 말한다. 결혼을 앞둔 딸이 미래 남편에 대한 사랑을 확신했듯 이제야 그도 잭을 깊게 사랑한 자신의 마음을 확신하고 고백한다. 퀴어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이데올로기 하에서는 할 수 없었던 진실한 독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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