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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밍고 Feb 05. 2020

집에 가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살 집 찾기

일생이 집 찾는 데 혈안이 된 것 같다. 20대 이후로 1년, 혹은 2년마다 집을 옮겨 다녔다. 그 형태는 기숙사, 고시원, 월세, 전세, 임대주택까지 다양했는데 조건이 괜찮다 싶으면 집이 좁고, 조건이 후지다 싶으면 전용면적만 휑뎅그렁하니 넓은 그런 집이었다.



흔히 인간 생활의 필수 요건을 의식주라고 말하지만 의와 식이 이뤄지는 공간이 '주'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건 집이다, 집. 여러 집을 전전하고 보니 집을 볼 때 개인적으로 중시하게 되는 것들이 생겨났다. 제1은 채광, 제2는 전용면적과 구조, 제3은 위치, 제4는 환기, 제5는 난방의 안정성, 제6는 집주인이다. 



채광은 인간 생활의 사이클을 좌지우지한다. 해가 들지 않으면 아침에 일어나기 쉽지 않다. 그리고 해가 '오래' 들지 않으면 난방비가 많이 나간다. 누구라도 그렇듯이 나도 남향을 선호하는데 가장 선호하는 것은 남동향, 그 후순위로 정남향, 남서향이다. 그 외 방향은 관심도 없다. 나는 해가 오래 드는 것보다 아침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이 직사광선으로다가 집안을 때리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남동향을 좋아하지만 아직까지 남동향을 만난 적은 없다.



전용면적과 구조, 이것은 집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모두들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지 좁은 집에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신축 건물에 비해 구축(구옥)이 전용면적이 넓다 한다. 아마 붙박이나 가전제품 옵션 같은 걸 미리 넣지 않았기 때문이고 눈속임할 만한 베란다 없이 방을 넓게 빼기 때문일 거다. 구조는 동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위치는 당연히 중요하다. 우선은 안전한지 아닌지 그 여부가 위치에 달려 있고, 지하철, 버스터미널 등의 교통편과 시장, 마트 등 편의시설이 근처에 있는지, 자녀가 있다면 학교 부근인지 등. 어찌 보면 집을 구할 때 외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위치일 수도 있다. 너무 구석에 있어서도 안 되고 너무 교통량이 많은 왕복 몇 차선 대로변이어도 안 된다. 유흥시설과는 거리가 멀수록 좋다. 



환기는 집안 내부의 공기질과 곰팡이 발생 유무에 영향을 미치기에 매우 중요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중요성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 어차피 미세먼지 아니면 강추위가 반복되는 한국에서 환기가 무슨 소용? 빨래도 하고서 건조기를 돌리는 마당이다. 옷 터는 가전도 나왔고, 공기가 걱정된다면 차라리 똑똑한 공기청정기를 가동하는 편이 오히려 나은 상황이다.



(바닥) 난방은 사계절이 있는 한국에서 필수불가결 조건이다. 특히 나는 바닥이 뜨끈뜨끈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과거에 미국에 잠깐 체류할 때 히터 난방으로만 살았는데 집에서 전혀 이동을 못 했다. 그냥 전기장판 깔린 침대에서 먹고 자고 놀고를 다 했다. 내가 말하는 난방의 안정성이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보일러의 고장 빈도가 낮은 것을 말한다. 겨울철에 보일러가 고장 나면 정말 난감하다. 그 바쁜 아침에 물을 끓여서 머리를 감아야 한다고 생각해 봐라. 정말 죽을 맛이다. 게다가 한파에는 하루만 보일러를 못 돌려도 동파되기 십상. 보일러는 돈이 들어도 좋은 걸 쓰는 게 맞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말이다.



집주인은 스트레스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집주인(이 돼 본 적은 없지만 감히 예상해 보자면) 입장에서도 임차인을 잘못 들이면 매우 스트레스받을 거다. 피차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사실 세상이 그렇게 녹록지가 않다. 나야 신용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고, 금전거래에 대해 결벽증이 있는 편이라 금전적인 다툼이 있어본 적은 없지만 집주인들 하는 얘기 들어보면 세 받아먹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한다. 임차인 입장에서도 내가 내 돈 내고 빌려서 사는 집인데 집에 손 하나 못 대게 하는 주인이라... 생각만 해도 고통이다.



예전에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건 신축인지의 여부, 예쁜 벽지, 풀옵션, 거슬리지 않는 몰딩, 샤워장의 여부, 예쁜 테라스 등등... 미관에 매우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물론 현재도 그런 조건들이 갖춰졌다면 좋겠다. 근데 A와 B를 모두 충족시키기엔 총알이 매우 부족한 것이다. 언제쯤 조건이 갖춰질까. 최근 집을 구하면서 부쩍 그런 생각들을 한다. 근데 진짜로 좁은 집에 살다가 보니 사계절 입을 옷 수납이 다 갖춰진 공간에서 살고 싶어 졌다. 계절마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옷들을 찾아 헤매는 건 정말 고통스럽다. 본가에 가져다 놨는지 저 상자에 있는지. 아무것도 오가나이징 못 한 채로 떠밀린 채 사는 느낌. 어우, 지긋지긋하다.



아주 오랜만에 집을 새로 구하게 됐다. 집은 오래 있는 공간인 동시에 나가서 일하는 동안에는 아주 비워져 있는 공간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서 집의 역할을 생각했다. 분명 나는 주말에나 집 안팎의 퍼실리티를 만끽할 거다. 그러니 집은 주말에 나가서 놀기 좋은 데에 있어야 하고, 집 안에 내가 가지고 있는 홈씨어터 시스템(이라기엔 많이 미흡하지만)을 두고 영화라도 볼 만한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가구는 많이 없지만 생활가전이 이미 구비돼 있어서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가진 책도 꽤 된다. 그리고 사계절 옷이 모두 수납 가능한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방 하나쯤은 드레스룸 및 서재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넓어야 한단 말이다. 그리고 신축일 필요가 없다. 신축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중 하나인 '튼튼한 재료를 쓰지 않았다'는 것을 나도 꽤 신봉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전용이 넓고 층간 소음 문제가 덜한 구옥이 좋다.



그런 기준을 가지고 집을 찾다가 여러 가지 조건에 합치하는 옛날 집을 발견했다. 신축도 꽤 많이 돌아다녔는데 너무 좁고 터무니없이 비쌌다. 그래서 그 옛날 집을 얻기로 했다. 자금이 될는지 사실 미지수지만 어떻게든 됐으면 좋겠다. 제발... <구해줘 홈즈>에라도 나가 볼 걸 그랬나. 최종 잔금을 넣을 때까진 내 집이 아니기에 구했다고도 말할 수 없다만... 음, 정말이지 '집에 가는 길은 때론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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