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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리썬 윤정샘 Aug 29. 2020

아이가 사라졌다!

아이의 독립 선언과 엄마의 분리 불안이 빚어낸 사건


"엄마, 나 학교 마치면 집에 혼자 와 볼래. 할 수 있을 것 같아."      


학교에 두 번쯤 갔을 때부터 훈이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낯가림이 많고 환경 변화에 적응이 힘든 아이라는, 그동안의 내 판단이 틀렸던 걸까. 아이는 첫날부터 학교가 너무 재밌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고, 급기야 혼자 등하교를 하고 싶다는 선언까지 해버리니. 엄마가 아이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나를 깨닫게 된다.      


훈이에게는 핸드폰이 없으므로 사실 좀 불안했다. 아직은 아이를 놓아주기보다 함께 손을 잡고 다녔으면 했다. 그런데 그건 순전히 내 뜻이고, 독립적으로 일어서겠다는 아이를 내 의지로 다시 앉혀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5일째부터 집에 혼자 와보라 했다. 아이는 신이 났다. 하지만 아이의 첫 시도가 여전히 불안한 엄마는 집에 가만히 앉아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다. 아파트 단지 내, 늘 함께 오가던 길목의 벤치에 앉아서 아이를 기다렸다. 그곳에서 저만치 걸어오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싶었고, 반갑게 아이를 맞이하며 잠깐이나마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었다.

      

5분, 10분 기다렸는데 아이가 오지 않는다. 왜 이렇게 안 오지? 오늘 급식 시간이 좀 길어졌나? 그냥 집에 가서 기다릴까? 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세상에! 신발장 입구에 아이 책가방이 던져져 있고 아이가 없다. 아이코 이를 어째! 집에 왔는데 엄마가 없으니 찾으러 나간 모양이었다.


곧장 달려 나가 아파트 이곳저곳을 마구 뛰어다녔는데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1000세대가 넘는 대단지, 아무리 뛰어다닌다 한들 서로서로 숨바꼭질을 하며 엇갈릴 수밖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이는 어디를 쫓아다니며 엄마를 찾아 헤매고 있을까. 울고 있지나 않을까. 온갖 상상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가슴이 쪼여왔다.     


혼자서 처음 집에 와보는 미션을 당당하게 수행하고 "엄마 나 왔어!" 하며 활짝 웃는 모습으로 집에 들어섰는데, 반겨주는 이가 아무도 없어 당황스러운 그 모습이 상상되면서 너무 마음이 아프고 속상했다. 그냥 집에 있을걸. 집에서 반겨줄걸. 왜 괜히 벤치에 나가 기다려서는 이렇게 길을 엇갈리게 만들어 버린 거야! 스스로에게 채찍도 던져가며 땀이 나도록 쫓아다녔는데 아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행여나 집으로 다시 갔나 싶어 집으로 다시 가 보아도 조금 전 그 상태 그대로다. 다시 뛰어나가 학교 가는 길 쪽으로 가 볼까 하고 있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정훈이 어머님이시죠? 여기 초록마을이에요. 정훈이 여기 와 있어요."      


세상에 언제 거기까지나 간 거니. 우리 집에서 약 1킬로, 20분은 족히 걸어야 하는 곳인데. 아이의 동선이 그려졌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집에 엄마가 없자, 엄마가 자주 가는 이디야커피를 가장 먼저 떠올렸고 그곳에도 엄마가 없으니, 우리가 함께 자주 가던 초록마을로 달려가 본 것이다.


초록마을에 들어서니 아이가 카운터 옆에 다소곳하게 앉아있는데, 그제야 커다란 눈망울에서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이를 와락 안아주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안도했고 대견했다.      


오픈한 지 한 달 밖에 안 된 초록마을에 우리 삼 형제가 갈 때마다, 삼 형제 기다렸다며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시던 점원 분이 계셨다. 마침 그분이 가게 앞에서 서성이던 훈이를 먼저 알아보시고 정황을 물어보셨다고. 놀랐을 법한 아이에게 음료수도 챙겨주시고 아주 편안하게 잘 보살펴주고 계셔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초록마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서로 얼마나 더 엇갈린 길을 헤매고 다녔을까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아이 손을 잡고 집까지 걸어가는 길,      

"정훈이 오늘 다른 길로 갔나 보네. 엄마는 당연히 정훈이가 오던 길로 올 거라고 생각하고 벤치에서 기다렸는데.. 집에 있을 걸 그랬다. 그지? 정훈이 찾으려고 엄청 뛰어다녔어. 그래도 이렇게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엄마 없어서 많이 속상했지? 울지는 않았어?"      


"응 안 울었어. 그냥 엄마가 왠지 카페에 있을 것 같아서 가봤는데 없더라. 그래서 초록마을까지 가봤어."      


"잘했어. 정말 잘했어. 길에서 헤매고 다니지 않고 그렇게 찾아가 본 거 정말 잘했어. 너 길에만 있었으면 우리 계속 못 만났을 거 아냐. 다음부터는 그렇게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아파트 경비아저씨한테 부탁드리면 돼. 엄마한테 전화 좀 걸어달라고. 경비아저씨 안 보이면 우리 아파트 앞에 빵집 같은 곳에 들어가서 부탁드리면 되고. 절대 길 가는 사람한테는 부탁하면 안 돼. 알았지?"      


"응 알아. 예전에 유치원에서도 배웠고, 학교에서도 배웠어."      


"그때 배운 거 우리 오늘 처음으로 경험해봤네. 무섭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그랬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 한 것 같아. 다음에 어떻게 하면 더 좋을지도 배우게 되었으니 말이야. 오늘 정훈이 혼자서 집에 정말 잘 왔는데, 엄마가 반겨주지 못해서 미안해. 다음에는 꼭 집에서 기다릴게. 엄마한테 우리 정훈이 정말 소중한 거 알지?"      


씩 웃으며 끄덕끄덕 하는 아이.     


아이보다 더 불안해하고 더 걱정하고 더 두려움에 떨던 어미는 자꾸만 말이 많아진다. 아이스티 한 잔으로 더위를 식히며 우리 아파트 입구에 다다르자 아이도 그제야,     

"나 오늘은 가게 있는 쪽으로 가 보고 싶어서 이 밑으로 갔어. 그리고 다시 저쪽으로 올라갔는데. 엄마가 이쪽 끝 벤치에 앉아있어서 나도 엄마를 못 봤네. 그래도 오늘 혼자 집에 가 보니까 재미있었어." 한다. 만보계가 이미 5,000보를 넘겼다며 운동 제대로 했다고 함께 웃었다.      




언제 이만큼 훌쩍 자랐니. 내 눈에 그저 어린아이 같은데. 예민함 끝판왕 베이비였고 늘 엄마 곁을 떠나기 힘들어하던 아이였는데. 아이는 생각보다 더 빨리 독립해가고, 엄마가 오히려 분리불안증세를 겪고 있는 꼴이라니 ㅋ  


저녁이 되자 아이는 아빠와 동생들에게 그 사건을 아주 자랑스러운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 동생들이 신기하게 반응하자 더 신이 났다. 당시에는 눈앞이 핑핑 돌았지만, 돌아보니 또 값진 경험이다. 우리는 또 한 뼘 더 자랐다. 그래,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아무런 일 겪지 않고 평탄하게만 자라는 것보단, 이런저런 경험과 감정들 다 겪어보고 느껴보는 것이 이다음 겪어낼 상황에 대한 마음의 면역력 기르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겠나. 우리 부단히 경험하고 다채롭게 느끼며 더욱 단단하게 무럭무럭 자라자. 너 걱정 않고 엄마부터 잘할게 ^^



불안함 보단 믿음으로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언제나 힘껏 응원할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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