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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리썬 윤정샘 Jun 21. 2023

자꾸만 멈춰버리는 아이, 무기력한 아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아이는 분명 기분이 무척 좋았다. 세상 흥겨움을 다 가진 듯 깔깔 웃고 빙글빙글 돌고 방방 뛰며 즐거움을 있는 힘껏 표출했다. 기분이 좋을 때는 복도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텐션이 하늘을 찌른다.

"선생님 저 밖에서 놀아도 돼요?"


"아니, 지금은 무용 시간이니까 밖에서 놀다가 3층까지 올라가면 땀 뻘뻘 나서 수업 시작할 때 힘들어. 친구들처럼 물만 마시고 다시 무용실로 가면 좋겠어."


잠깐 쉬는 타이밍에 물을 마시러 내려온 거였다. 평소에는 늘 쉬는 시간마다 밖에 나가서 노는 것을 허락해 주지만, 다른 선생님께서 수업하시는 시간을 내 마음대로 침해할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기준에서 최대한 다정한 말투로 안 된다는 말을 전했다. 그런데 그 말 한마디에 아이는 급격한 속도로 흥겨움 버튼을 꺼버렸다. 그 자리에 선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한.참.동.안.


이미 친구들은 물만 챙겨서 무용실로 가고 없는 상황이다. 나와 그 아이 둘만 있는 교실에는 참기 힘든 정적이 흘렀다.


하... 어쩌라고...


이런 상황이 거듭 반복되다 보니 그럴 때마다 내 마음도 녹초가 된다. 매번 달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진짜. ​​




며칠 전 미덕 교육을 시작하며 나는 이 아이로부터 큰 감동을 받았던 참이었다.


"우리 J가요. 우리 반 아이들 중에 미덕 교육 효과가 최고 좋아요. 미덕을 처음 읽어주는데 눈빛이 반짝반짝하더니 그날은 이렇게 바른 자세로 앉아서 수업을 얼마나 열심히 잘 듣는지 깜짝 놀랐어요." 하며 선생님들께도 J 칭찬을 마구 했다.


실제로 그날은 '버츄 프로젝트 수업: 미덕교육' 만한 인성교육이 없다는 걸 온마음으로 느끼고 가슴이 뜨거워진 날이었다. 산만하고 수업 시간에 수도 없이 툭툭 끼어들며 전 학년 단체 활동에서는 더욱 제어가 안되어서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ADHD 검사 한 번 받아봐야 되는 거 아니냐"는 걱정을 많이 듣던, 이 아이도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를 깨닫게 된 날. 앞으로 미덕을 중심에 두고 정말로 제대로 잘 실천해 보자 마음먹게 된 날.


며칠 뒤 동료장학 공개수업에 들어와 보신 교감선생님과 연구부장님도 아이가 수업을 너무 잘 듣는 모습에 깜짝 놀라셨다고.


그런데 이 아이에게 수시로 찾아오는 '무기력'이란 녀석은 도무지 내 힘으로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학교에서 단체 생활을 하다 보면 당연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더라도 조금 참고 견뎌야 할 때가 있고, 당장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아이는 어떤 제지를 당하는 순간 '매우 자주' 온몸의 힘을 다 빼버리고 '멈춤'을 선택해 버린다.


칭찬이나 미덕의 언어 같은 것에도 크게 반응해서 친구들보다 큰 효과를 보이는 반면, 제지당하는 상황에서도 매우 크게 반응하여 심하게 무기력해지는 아이. 무기력해지는 순간부터는 몸이 '그대로 멈춰라!' 하듯 멈춰버리는 아이.


어떤 충동성이나 산만함 같은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 '무기력'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나는, 이 아이의 뜬금없는 무기력을 마주할 때마다 맥이 탁 풀려버린다. ​​




그날도 그랬다. 버츄카드 더미에서 '정돈' 카드를 뽑아 읽어주는데, "하잉 오늘 내가 뽑고 싶었는데." 하며 멈춤 시작. 교실에는 그 아이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줄 수도 없을뿐더러, 이렇게 또 흐름이 끊기는 것이 싫어서 계속 읽어 내려갈 수밖에 없었는데, 아무리 흐린 눈을 하려 해도 무기력해진 표정으로 내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을게 분명한 아이가 자꾸 눈에 들어와 마음이 몹시도 불편했다.​


이 마음으로 이 미덕을 읽고 있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미덕 읽어주기를 멈추고 텃밭에 나가보기를 제안했다. 다른 아이들은 신나게 따라나서는데 그 아이는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앉아있다. 움직이지 않는 아이를 억지로 끌고 나가는 건 위험한 행위다. 몇 번 권유했지만 듣지 않았고, 친구들이 가서 같이 나가자고 제안했지만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 아이는 텃밭에 가지 않았다. 다행히 텃밭에는 수확할만한 것이 거의 없어서 고추 몇 개만 따고 교실로 돌아왔다. 그 후 국어수업을 시작했고 신나게 퀴즈를 풀고 재미있는 학습지 공부도 했다.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던 아이는, 멈춤을 선택한 지 딱 한 시간 만에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 이제 결정했어요."


"뭘 결정했어?"


"이제부터 공부 열심히 하기로요."


"그래그래, 잘 생각했어. ○○는 마음만 먹으면 잘하니까 열심히 해보자."


아이는 나의 무력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에너지 넘치는 아이로 돌아왔다. 자리에 한 시간 동안 꼼짝없이 앉아있던 그 시간이 어쩌면 '생각하는 의자'의 효과를 가져다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날 내가 한 것은 아이가 무기력해진 상황을 애써 모른척하며 "마음의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돌아와라."는 메시지와 함께 평소와 다름없는 수업을 한 것뿐이다. ​




이 아이에 대한 대응법으로 내가 택한 방법은 아이의 행동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무기력해지는 상황에서 일일이 반응하여 아이를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해 애쓰는 것은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 과정에서 나는 몹시 지치고 부글부글 답답한 마음과 화가 끓어올라 견디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여러 차례 학습했기 때문이다.


여러 장의 색종이를 접고 풀로 이어 붙여 왕관을 만드는 활동을 할 때, 자기는 풀 말고 찍찍이로 붙이고 싶다고 해서 교실에는 찍찍이가 없으니 풀로 하자고 하면 또 멈춰버리는(멈출 때의 특유의 표정이 있다), 자기 주관이 매우 매우 뚜렷한 이 아이를 보며,


'그래, 이런 주관이 결코 나쁜 게 아닌데. 모든 것에 순응하는 아이보다 너처럼 확실한 주관을 가진 아이가 어쩌면 더 큰 인물이 될 수도 있는 건데. 계속 같은 길로 따라가자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선생님도 안타깝고 또 뭐가 맞는지 헷갈린다.'는 생각이 차올라 마음이 고구마를 욱여넣은 듯 답답해졌다. ​




그래도 가르칠 건 가르쳐야지. 아이가 기분 좋게 집중하는 타이밍에 '자율' 카드를 뽑아 들고 읽어주며 <단순히 수동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대목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을 해주었다.(가르침은 아이가 차분해진 상태에서, 들을 준비가 되어있을 때 행해야 비로소 효과가 있다.)


"J는 기분이 나쁘거나 뭔가를 못하게 하는 상황에서 그냥 누워버리거나 그 자리에 꼼짝 않고 가만히 있는 걸 선택해 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지. 그런데 그건 널 위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옳은 선택이 아니야.


아까도 무용 시간에 ◇◇이 누나가 너 팔 잡아당겼다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누워있었다고 했지? 그럼 너도 재미있는 수업을 놓치고 다른 사람들도 불편해지잖아. 그럴 때는 "누나, 팔 잡아당기면 아파. 안 그랬으면 좋겠어." 하면서 네 생각을 분명히 전하고 무용 수업을 계속 함께 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서 좋아.


어떤 불편한 감정이 생겼을 때 아무것도 안 하고 멈춰버리는 것보다, 솔직한 마음을 뚜렷하게 표현하고 하던 공부나 놀이를 계속하는 것이 너를 위해서도 더 좋은 선택이겠지? 이렇게 너에게 더 좋은 행동을 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게 바로 자율이야. 오늘 하루 자율의 미덕을 더 깨워볼 수 있겠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기복이 심해서 이렇게 잘 수긍을 하다가도 한 시간 뒤에 바로 드러눕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아이 마음속에 가랑비 옷 젖듯 미덕의 언어들이 스며들어 아이를 조금씩 조금씩 성장시켜 가리라는 걸 나는 또 한 번 믿어본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도 이런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나도 여전히 많이 부족하여 바람에 흔들리는 잎처럼 그때그때의 상황에 반응하며 파르르 떨릴 때가 많지만, 하나씩 시행착오를 거저 가며 조금씩 발전해가고 있음을 한번 더 믿어보자. ​


내가 처음 이 길을 선택했을 때의 마음을 다시 돌아본다. 내가 선택한 이유에 돈과 명예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요즘의 교직 상황에 돈과 명예가 따르지 않는다고 하여 한탄만 하고 있는 행동은 나를 위해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다.


한 아이를 성장시킨다는 보람 안에 내 직업의 진짜 쾌(快)가 있음을 자각하며, 그 쾌(快)에 더욱 몰입해 보리라. 아이와의 한해살이가 끝나는 2월 말, 내가 더 노력하지 못했다는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음 주의 만남 속에도 허망함보다 충만함이 가득 차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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