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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리썬 윤정샘 Apr 17. 2020

아들아, 힘이 들 땐 쉬었다 가자

엄마를 울려 버린 26개월 형아의 한 마디  

  어느덧 육아 8년 차, 짧은 기간에 세 아이가 복스럽게 찾아와 주어 정말 감사하고 행복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만큼 시리게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도 참 많았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기간을 꼽으라면 둘째가 말 못 하는 아기이고, 첫째도 역시 아기이던 그 시절, 첫째가 단지 동생보다 19개월 더 일찍 태어나고 말 조금 더 잘한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양보해야만 했던 그 시절, 첫째도 아프고 나도 아팠던 그 시절일 게다. 그때를 떠올리면 첫째에게도 나에게도 참 애잔한 마음이 들어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곤 한다.


  둘째가 조금 덜 예민했더라면 첫째에게 관심을 조금 더 쏟아줄 수도 있었을 텐데. 둘째는 유모차를 지독하게 거부하여 늘 아기띠 또는 포대기로 나에게 안겨 다녀야 했다. 잠에도 예민하여 눕혀놓으면 낮잠을 길게 자지 못하고 자꾸만 깨어 첫째와 놀다가도 달려가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3살이었던 첫째는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고 있었기에 온종일 두 아이와 붙어있는 셈이었는데, 그런 여건 속에서 첫째와 둘째의 욕구를 모두 만족시켜 줄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해답으로 찾은 것이 둘째의 낮잠 타이밍 산책이었다. 둘째는 안고 다니며 품속에서 실컷 재우고, 첫째는 산책하며 엄마랑 둘이서 노는 기쁨을 만끽하고.


  둘째가 잠 오는 신호를 보내면 늘 아기띠로 안고 밖으로 나갔다. 살랑살랑 바깥공기에 아기는 이내 잠이 들었다. 잠에 아무리 예민한 아기라도 엄마 품에서는 2시간도 거뜬히 자기에, 둘째가 아기띠 속에서 곤히 자는 동안 첫째 손을 잡고 동네 이곳저곳을 놀러 다녔다. 집 앞 공원, 놀이터, 모래사장, 자연드림, 서점 등이 우리가 다니는 주요 코스였다.


  “오늘은 우리 어디로 가 볼까?” 하며 주로 첫째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편이었다. 웬만하면 아이가 가자는 곳으로 가주고, 길에서 무언가를 발견하여 한참을 구경하고 있으면 최대한 기다려 주었다. 모래 놀이를 한 시간씩 해도 옆자리를 묵묵히 지켜주었다. 동생 때문에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만 했던 아이,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누릴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는 날이 더우나 추우나 그렇게 산책을 다니고 놀이터 투어를 다녔다. 안고 있는 아기 때문에 함께 뛰거나 미끄럼틀을 함께 타거나 하는 등의 놀이는 못 하였지만, 둘째의 존재는 잠시 잊고 첫째에게 집중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모두 즐거운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너무 짠해서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차오르는 그런 날도 있다. 첫째가 26개월, 둘째가 7개월쯤 되던 어느 날 아이가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갖고 싶다고 해서 큰 문구점에 함께 가기로 했다. 집에서 제법 걸어가야 하는 거리에 있었는데, 첫째가 손을 잡고 잘 걸어가다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혼잣말처럼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밖에서는 안아줘 못하지.”


 “정훈이 엄마 안고 싶어?”

 “안고 싶어.”

 “걷기 힘들어?”

 “힘들어.”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힘든 걸 꾹꾹 참다가 내뱉은 말이 “안아줘 못하지” 라니. 이제 두 돌 갓 지난 아기가 말이다. 둘째를 안은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첫째를 꼭 안아 주었다. 짠한 우리 아기, 너도 한참 아기인데 안기고 싶은 엄마 품 동생에게 양보하고 힘들다 울지도 떼쓰지도 않고 그리 견디고 있으니 그 허전함 오죽하랴. 마음 한구석이 날카로운 송곳으로 찌르듯 콕콕 쑤셨다.      


 “우리 어디 좀 앉아서 쉬었다 갈까?”

 “(씩 웃으며) 좋아.”

 “그래, 근처에 벤치가 있나 찾아보자.”     



 다행히 조금만 더 걸으니 벤치가 있었다. 두유 하나 꺼내어 먹으며 좀 쉬고 나니 다시 생기가 돌아온다. 아이가 먼저 “이제 안 힘들어. 가 보자.” 한다.


 큰 문구점에 가서 이것저것 신나게 구경도 하고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도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아까 쉬었던 그 벤치에 다시 앉고 싶다고 해서 우리는 그 벤치에 앉아,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솔솔 시원한 바람이 피부를 살랑살랑 기분 좋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그런 평화로움도 잠시, 갑자기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산도 없는데 어쩌지? 우리는 “엄마야” 하며 함께 손을 잡고 옆에 있는 홈플러스로 후다닥 뛰어들어갔다.


  아이 손을 잡고 비를 피해 홈플러스로 마구 뛰어가던 그 느낌, 홈플러스에 도착해서는 아이와 마주 웃으며 “휴 살았다”하고 좋아하던 그 느낌, 그때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그곳의 공기 하나하나가 아련한 그리움으로 내 마음속에 남아 살아 숨 쉰다. 아이도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 함께 마주 보고 웃음 지으며 좋아했던 그 느낌을.


  우리는 홈플러스에서 장을 보고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밥도 먹으며 또 한 번의 쉬어감을 택했다. 그렇게 우리의 버라이어티 했던 하루도 평화롭게 저물어갔다.   


   

  아들아, 많이 힘들었지? 엄마에게 안기고 싶은 마음 꾹꾹 누르며 얼마나 아프고 속상했을까, 우리 아가. 그럴 땐 엄마에게 꼭 말해주렴. 앞으로도 우리 앞엔 거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일들이 참으로 많을 거야.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에 힘이 다 빠져 기운이 없는 날도 있겠지. 엉엉 울고 싶을 만큼 슬픈 일도 있을 테고 말이야. 그럴 땐 우리 그냥 쉬었다 가자. 참지 말고 마음속으로 삼키지 말고. 힘들다고 이야기도 하고 맘껏 울기도 하고 아무 곳에나 주저앉아 쉬기도 하면서, 그렇게 쉬엄쉬엄 천천히 쉬었다 가자.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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