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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리썬 윤정샘 Apr 26. 2020

커피 한 잔이 내게 건네는 위로

육아맘에게 커피란, 카페인 그 이상의 힐링


병원 진료를 마치고 서울역으로 가는 길, 아이는 지하철에서 곤히 잠이 들었다. 서울로 가는 KTX에서도, 병원으로 가는 지하철에서도, 치료를 받는 순간에도 생기가 가득했는데. 먼 길 오가는 여정의 피로를 견뎌내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잠들어 축 처진 아이를 안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에서부터 기차역까지 가는 길은 제법 먼데, 아이를 안고 가자니 그 길이 더더욱 천리만리 길처럼 느껴졌다. 팔에 힘이 풀려 아이가 자꾸 아래로 내려가기에, 잠시 멈추어 서서 심호흡을 하며 아이를 들쳐 올렸다. 그렇게 자세를 가다듬으며 들쳐 올리기를 수차례. 이제 다 왔다 싶으니 또 50개쯤 되는 계단이 눈앞에 나타난다. 다리에 있는 힘껏 힘을 주고 영차영차 계단을 올랐다. 기차 타는 곳에 도착하니 후끈후끈 몸이 달아오르고 땀이 삐질삐질 났다.



정차하여 탑승을 기다리고 있는 기차 앞에는 작은 storyway 샵이 있다. 그곳에 들러 내 커피와 아이 주스를 하나씩 샀다. 그리고 기차에 간신히 올라타 여전히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내 무릎에 눕혔다. 20kg이 넘는 무거운 아이를 안고 그 먼 길을 걸어와서 팔과 다리가 후들거리는 그 와중에 나는 대체 이걸 왜 사야 했을까. 커피를 못 마시면 금단증세가 올 만큼 커피에 중독된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생각해보면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주 아기일 때부터 커피는 카페인 그 이상으로 나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아이 낮잠을 재우고 먹는 커피 한 잔,

유모차 태워 산책하다 아이가 잠들면

테이크아웃해서 벤치에 앉아 마시는 커피 한 잔, 

그 커피 한 잔이 어쩜 그렇게나 위로가 되던지.


모든 것이 처음이라 낯설고 힘이 들 때,

누구 하나 만날 사람 없이 혼자일 때,

혼자서 아기를 어르고 달래고 재우다,

그마저도 방법을 몰라 허둥거리며

나 이만큼 외롭고 힘들었다고 외치고 싶을 때,

그럴 때면 커피 한 잔이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오늘도 많이 힘들었지? 고생했어 토닥토닥..

 지금 만큼은 너만의 시간이야. 이거 마시고      잠시라도 힘내..”라고. 


엄마라는 자리에서 잠시나마
 ‘나’라는 존재로 돌아가는 시간.



커피 한 잔이 갖는 그 상징성이 너무나 커서,

그 한 잔의 위로가 너무 강렬해서,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든 쟁취하려 애썼던 것 같다.

 



병원에서 기차역으로 향하던 그날도 나는 커피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나 보다.

너 정말 수고했다고.

너 정말 대견하다고.

잠시라도 네 시간 마음껏 누리라고.

그렇게 커피 한 잔으로 내가 견뎌온 시간을 보상받고 싶었나 보다.

내 존재에 응답하는 시간. 꿀 같은 시간.


  

기차에 앉아 가쁜 숨 몰아쉬며 지난 하루를 되돌아본다. 나는 아이와 함께 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그랬기에 꽤나 괜찮은 하루였다. 그렇게 수고했다며 토닥여주는 커피와 함께 그 시간을 누릴 수 있음이 참으로 감사하다.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부터 내게 크나큰 위로가 되어준 커피. 카페인 그 이상의 힐링이요 위로가 되어준 커피, 그 존재가 새삼 고맙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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