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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몬순 Oct 30. 2020

비자발적 미니멀라이프

고양이 '때문'이 아니라 고양이 '덕분'에

물건을 사기 전 3가지 사항을 고려하여, 물건 구매를 결정하면 좋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고 있다면 응당 거쳐야 하는 뇌내 3중 필터.



비자발적으로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게 된 나는 여기에 1가지 항목을 더 추가한다.


추가된 항목은 하나뿐이지만, 이 마지막 단계에서 꽤 많은 것들이 걸러진다. 물건이 우리 집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꽤 높은 문턱을 넘어야만 한다. 들여놓는 것까지는 어떻게 해볼 수 있다고 치자. 고양이들로부터 물건을 보호하기 위해, 물건으로부터 고양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하고 단단한 수납법이나 공간이 필요하다.

살아가는 데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면, 새 물건을 위해 수납공간을 따로 구매한다는 것은 생활의 사족에 불과한 장치가 된다. 없어서 불편하게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불편하게 사는 것이 맞다. 나는 고양이와 살아가는 사이 소유욕과 쇼핑욕을 과감히 포기하는 법을… 아니, 사실은 미련이 좀 남지만, 어쨌든 배우긴 배우게 되었다.






사실 나는 본래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웠을 정도로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 많았고, 아무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쇼핑을 했으며, 그 물건들도 잘 활용하지 못했다. 맥시멀리스트로 살기엔 치명적으로 센스가 없어서, 물건을 잘 고르지도 못했다. 책이 넘쳐서 혼자 살던 때에는 붙박이장에 수백 권의 책을 쌓아두었지만, 책은 한 번 읽고 말거나 또는 아예 읽지 않은 책들이 꽤 많았다. 모든 맥시멀리스트들의 고민인 입지 않는 옷들도 나에겐 골칫거리였지만, 당시엔 버리지 못해서 전부 끌어안고 살았다. 지금은 어울리는 상의나 바지가 없어서 입지 못 하지만 언젠간 그런 걸 마련해서 입을 수 있을 테니까, 또는 살을 빼면 입을 수 있을 텐데- 하는 기약 없는 미련을 가지고. 작고 귀여운 물건을 좋아해서 일단 사들였지만, 정리를 하지 않아서 없는 것보다도 못한 상태가 된 채로 방치되었던 장식품들도 잔뜩. 거기에 장비병까지. 심지어 청소를 잘 하지 않는 인간이기까지 했으니, 점입가경이라고 할 만한 상황이었다.

엉망인 집을 정리하지 못해 고민하는 이들의 뻔한 레퍼토리다.



이렇게 살다 보니 물건이 많아 청소하기도 힘들고, 물건에 대한 미련이 스트레스가 되어 삶에 점점 지쳐갔다. 집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휴식해야 할 공간일 텐데 왜 이렇게 된 거지? 그러나 당시엔 나의 이런 부담감의 원인이 어디에 있던 건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미니멀리즘’이나 집과 물건을 관리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추세는 나의 그 시절보다 훨씬 늦게 시작되었거든.


그리고 드디어 나에게 그 단어가 찾아왔다. 미니멀라이프. 심플 이즈 베스트.

센스가 없으면 차라리 심플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예쁘게, 그리고 후련하게 사는 방법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미니멀라이프가 유행할 당시, 미니멀리스트의 길을 선택하여 삶이 극적으로 변한 이들의 수기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런 글들을 읽으며 이런 삶이 있을 수 있구나 하는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정말 충격적으로 아무것도 없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았기에)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미니멀리스트로서의 삶이 단번에 찾아오진 않았다. 그러기엔 나는 물건에 너무 미련이 많았던 것이다… 이미 이 ‘고양이와 물건’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들 부터, 나의 지난 물건들에 대한 질척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심지어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해 살림수납법과 인테리어와 집과 관련한 도서를 엄청나게 사 읽었던 통에, 소장 도서의 양이 급속도로 늘기만 했다. 애초에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기엔 글러 먹은 성향의 인간이었던 것이다.(종이책은 대부분 처분했지만, 집과 관련된 전자책은 어쩔 수 없이 10권 넘게 보유하고 있다)






미니멀리스트로의 길에 박차를 가해준 것은 역시나, 결국은, 고양이였다.

이 책에서 내내 이야기했던 것처럼 고양이와 살면서 버려야 하는 물건들, 사지 못하는 물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날 것 그대로 고양이와의 공존이 불가능하다면 방법을 찾았다. 아무리 고려해도 불가능하다면 포기했다.


바닥까지 책이 늘어져 있으면 청소하기가 힘들어서, 고양이 털이 구석에 뭉쳐 굴러다니게 되어버리므로 최대한 책장에 들어갈 만큼의 책만 보유하고 많이 팔아치웠다. 요즘은 전자책을 이용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책뿐만이 아니라 가능하면 다른 물건들도 바닥에 두지 않으려 노력한다.

옷과 고양이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상관관계가 있다. 고양이 털은 옷에 있어 천적인 경우가 많고, 재질에 따라서 고양이 자체가 옷을 공격하는 경우도 꽤 많은 것이다. 다림질, 빨래, 옷 개고 넣기를 철저하고 적절하게 잘 지켜야 남들 보기 반듯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 옷가지가 많은 상태로는 도저히 역부족이었다. 손이 너무 많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옷가지 수를 대폭 줄였다.

유칼립투스, 스킨답서스, 몬스테라 등 예쁜 식물들로 플랜테리어를 하려던 적도 있었지만, 전부 독이 있어 고양이들에게 치명적인 식물이었다. 무심코 씹어먹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최대한 고양이에게 위험하지 않은 식물들을 골라 집에 들여놓았더니, 식물이 고양이에게 위협받는 처지가 되어, 보이지 않는 곳에 대피 시켜 놓은 사이에 시들어 버리기도 했다.


비교적 청소를 많이 하는 인간이 되었다지만, 청소도 한계가 있다. 일을 줄이려면 물건을 줄이는 것이 방법이었다.


자발적인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깨끗하고 예쁘고 후련하게 살고 싶었지만, 육묘에 떠밀려 비자발적으로 미니멀리스트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런데 ‘비자발적’이라는 말은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여지를 주는 표현으로 보인다. 원치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이 길을 선택하게 된 것처럼.

고양이 ‘때문에’ 집의 물건들을 버리고 포기했다고 말할 참인가? 아니, 오히려 고양이 ‘덕분에’ 버리고 비울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물건을 많이 포기하고 집에 두지 못해서 불행해? 아니, 오히려 이 전보다 후련하고 행복하다.


나는 계속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 하는 인간이었다.

나의 지난 물건에 대한 소유욕은 나의 지난 세월에 대한 결핍이다. 가진 것과 배운 것이 부족했던 삶을 물건으로나마 채우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읽지도 않는 소장 도서 중 실용서가 많았던 것도 그러한 추측을 어느 정도 입증하는 것 같다.

그런 물건들에 대한 방치는 나의 20~30대 시절의 무기력함을 대변하고 있다. 나도, 내 주변의 사람들도, 내 물건들 하나도 돌보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에 불과했던 나날. 괴로운 마음을 외면하기 위해서 나를 속이고 전뇌의 세계를 헤엄치기만 했던 무의미했던 일상, 일이 끝나면 노동주를 마시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던 시간들.


지저분한 집을 보면서 늘 생각했었다. 언제까지 미련하게 미련 넘치는 삶을 살 텐가. 그런 와중에 고양이가 우리 집에 오며, 나의 생활이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비록 자발적이진 않았지만, 이것은 체념과 포기가 아니다. 깔끔하지는 못해도 내 나름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었다. 고양이가 살짝 등을 떠밀어주었을 뿐이다.


뭐어, 그럼에도 사실 아직은 미니멀리스트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 그래도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 정도라고 감히 주장해 본다. 그리고 언젠가는 당당하게 나는 미니멀리스트다 하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비자발적임에도 나의 물건에 대한 소유욕과 미련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그에 익숙해져 편안해지고 있으며, 동시에 집도 점점 깨끗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바탕에는 날이 갈수록 커지는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청소하는 습관과 마찬가지로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게 된 것 같다.

나는 이 강을 고양이 강이라 이름 붙여보기로 했다.





고양이 참치와 살구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at_chamchi_sal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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