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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몬순 Oct 29. 2020

고양이 집사의 청소하는 습관

고양이 털에는 상상 이상의 위력이 있다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던 20대 중반 무렵의 어느 날, 아빠가 날 불러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정확한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아빠는 “방이 너무 더럽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휴일과 휴식이 거의 없던 직업, 엄마와의 불화, 집에 오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게임 <마비노기>만 하던 방구석 폐인 같은 생활, 게으른 천성, 이 모든 요소가 겹쳐서 그 당시 동생과 함께 쓰던 우리의 방은 소위 말하는 쓰레기 방이 되어 가고 있었다. (변명을 좀 해 보자면, 과자봉지와 머리카락과 잡동사니들이 사방에 널린 정도의 수준이고, TV에 방영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당시, 나도 나지만 동생도 왜 방을 전혀 치우지 않았던 거지?)


위에서 방을 더럽게 쓰고 있었던 이유를 구구절절 늘어놓긴 했지만, 사실 쓰레기 방을 만들고 말았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게으름’이었다. 게으른 천성의 나는 정말 지독히도 청소를 안 하는 인간이었다. 청소뿐이랴, 설거지도 싫어한다. 왜 인간은 먹고 나면 치워야 하는 걸까요. 왜 인간은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이렇게나 많은 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걸까요? 설거지하기가 너무 싫은 나머지, 혼자 살고 있었던 어느 시기엔 일주일이나 설거지를 미뤄놓았던 적도 있다. 설거지는 하기도 싫지만 하지 않아도 그 나름대로 스트레스라 일주일 내내 스트레스받아가며 주방을 지나갔던 경험이 있다. 정말이지 바보 같고 게으르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지금 그때의 내 생활을 생각해보면, 당시 아빠가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었던 것이 이해가 된다.






청소하고 설거지하는 습관은 지금의 남편을 만나 동거하기 시작했을 때도 그리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매일매일 쓸고 닦고 바로바로 설거지하는 인간이 되었는데, 이 습관을 만들어준 것은 바로 고양이였다.


고양이가 분명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무언가를 집어먹은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을 때의 공포(그러나 고양이가 탈이 나지 않고서는 그게 무엇인지 영원히 알 수 없다), 무한히 뿜어내는 고양이들의 털, 고양이와 동시에 촤아악- 하며 튀어나와 산산이 흩어지는 고양이 화장실의 모래들…

이전에 살던 스타일을 고수한다면 나도 고양이도 일찍 죽을지도 모른다- 하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청소기를 언제 돌렸는지 잊을 정도로 청소를 하지 않았던 내가,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매일매일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무선 청소기가 상용화되어서 정말로 다행이야. 집의 모든 가전 중 가장 잘 샀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무선 청소기다. 청소하기 전의 꾸물거리는 시간을 확 단축시켜 준 편리한 물건.



청소기를 돌릴 때 볼 수 있는 소소한 귀여움.



물걸레질도 가능한 때에는 반드시 했다. 신기하게도 청소기를 꼼꼼히 돌렸는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털과 먼지가 물걸레에 계속 묻어 나왔다. 최근 그간 사용하던 조악한 물걸레 밀대를 내다 버리고, 성능이 좋다고 하는 물걸레 밀대를 주문했는데, 우리 집의 먼지를 얼마나 걷어낼지 기대가 될 정도다.(나의 장비병은 청소 분야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새집에 이사 온 이후에는 사용했던 물티슈로 벽면의 모서리 틈새와 걸레받이의 위아래를 닦는 습관도 생겼다. 이전 집에서,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청소하는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더니 막판에 몇 겹의 먼지를 닦아내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매일 청소하는 사람이라도 이곳까지 완벽하게 매번 청소하기는 쉽지 않다. 생각날 때마다 닦아서라도 관리를 하면, 나중에 뭉쳐서 벽면까지 더럽힐 정도까지는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다.(살구는 벽을 밟고 뛰어다니는 날렵한 고양이다.)

우리 고양이들은 창가에 앉아 바람을 쐬며 바깥 구경을 하는 것을 좋아해서, 창문을 자주 열어주는 편이다. 그러나 이 창문이라는 것은 먼지가 쌓이기 쉬운 장소가 아니던가. 밖의 시꺼먼 먼지들이 잔뜩 앉은 창틀을 밟은, 새까만 발바닥으로 고양이들이 방안을 돌아다니는 것은 그래도 괜찮다 치자. 깔끔하게 단장하겠답시고 발가락을 잔뜩 벌려 발을 열심히 핥아대는 고양이의 습성을 생각하면, 창틀을 닦아 두든 고양이 발바닥을 매번 쫓아다니며 닦아주든 해야만 했다. 그나마 창틀을 닦아두는 것이 덜 번거로운 것이 당연했다.

살구가 종이로 된 달걀 패키지를 씹다가 잔뜩 먹어 치워 배탈이 난 이후, 스티로폼 박스를 긁어서 분해한 뒤 그 조각들을 먹어 치우는 것을 본 이후로는 재활용 쓰레기도 제때 버리려 노력한다.

사실 고양이가 없어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선이었는데, 나는 생활에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고양이가 없었다면 평생 더럽게 살았을지도 사실은 모르는 일이다. (아, 근데 인간적으로 인간답게 살기 너무 힘든 거 아닙니까. 할 일이 왜 이렇게 많은지.)


가끔 투덜거리긴 해도 어쨌든 나는 그렇게 부지런한 고양이 집사 청소꾼이 되어가고 있었다.

…고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는.






2020년 10월 초, 이사를 위해 그동안 살던 곳의 짐을 빼는 날이었다. 노련하신 이삿짐센터 분들께서 척척 짐을 빼주시는 덕에 할 일이 없어 주변을 서성이며 쓰레기만 줍고 있었는데, “고객님, 이쪽으로 와서 이거 한 번 보시겠어요?”하고 센터 직원분이 나를 불러 냉장고의 측면과 후면을 보여주셨다.

“여기, 이거 보셨어요? 고양이 털이예요.”

“이러면 큰일 나요. 불나요”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가 가리킨 곳에는 고양이 털로 수북이 가려진 냉장고의 환풍구가 있었다.



환풍구를 빼곡하게 가렸던 고양이 털 뭉치들.



히이이이익, 그야말로 충격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2년 전에 산 새 냉장고인데, 그사이 이렇게까지 되다니, 내 눈을 부정하고 싶었다. 

나는 이후, 약간의 공익적인 마음을 담아 이 에피소드를 트○터에 올렸다. 트○터 생활 11년 동안 리트윗 수 50건을 넘긴 적이 없던 나의 트○터 계정. 몇 안 되는 고양이를 키우는 온라인 지인들에게 이런 주의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 글은 흐름을 타고 엄청나게 퍼지기 시작하더니 최종적으로는 리트윗 14000건과 650000뷰를 찍었다.

우리 집의 부끄러운 부분이 65만 명에게 낱낱이 보여진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경악하는 반응을 보여주었지만, 그 와중에 좋은 정보를 알려준 이들도 있었는데, 냉장고뿐만이 아니라 컴퓨터 등의 환기구도 조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생각해보면 고작 여름 1달 사용했던 서큘레이터와 선풍기의 날개에 고양이 털이 빼곡하게 낄 정도였고, 컴퓨터의 환기구에 털이 들어찬 모습도 본 적이 있었는데, 왜 냉장고가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이 정도로 환풍구가 막혀 있었다면, 냉장고가 제 온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을 거라는 예측을 한 이도 있었다. 이 또한 생각해보면, 나는 그동안 냉동실의 얼음이 꽤 늦게 얼어서 우리 집의 비교적 새 냉장고에 불만을 가지곤 했던 것이다.


이사를 오고 나서 혹시나 하여 에어컨 뒤를 체크해 보았는데, 역시나 이 가전도 제 역할이나 하고 있었을까 할 정도로 환기구에 털이 잔뜩 붙어있었다.

먼지는 전기에 붙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잘 들여다보면 콘센트에도 고양이 털이 잔뜩 붙어있다. 냉장고 사건을 겪고 난 이후, 콘센트의 구멍마다 한 자리 차지하고 계시는 고양이님들의 털을 모두 쓸어내렸다. 이삿짐센터 직원분의 “이대로 두면 불난다”라는 말이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전문 청소꾼 고양이 집사가 되려면 나는 아직 멀었던 것 같다. 앞으로는 보이는 부분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도 종종 체크해서 청소해야겠다 결심했다.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이토록 고양이 털과의 끝없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 이후, 눈에 알레르기성 결막염이 발생하기도 해서 이따금씩 안약을 사용해야 하는 몸이 되었는데, 새집에 이사 온 이후엔 안약을 넣는 빈도가 확 줄어들었다. 여기가 아직은 새집이라 묵은 먼지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집 청소를 더욱 열심히 해야지.


인간이 인간답게, 집고양이가 집고양이답게 살기 위해서는 이런 자잘하고 꾸준한 노력들이 필요하다. 게을러서는 안 된다. 나의 천성에 있어, 이런 생활과 습관들이 귀찮지 않은 요소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제 집을 청결하게 유지했을 때의 만족을 안다. 쾌적하고 반짝거리는 집에서 고양이들과 뒹구는 나날들만큼 행복한 것도 없으며, 이런 편안한 마음이 계속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결코 이전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고양이 참치와 살구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at_chamchi_sal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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