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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몬순 Oct 28. 2020

고양이와 침대

인간도 고양이도 만족하는 매트리스의 과학

저렴한 나무판 위에 올려진 도톰한 토퍼를 잠자리 삼아 생활한 지 6년이 지났다.



안방, 일명 침실이라고 하는 공간은 침대가 그 분위기를 결정하는데, 토퍼 하나만으로 부부의 침실 분위기를 내기에 그 모습은 너무나도 초라했다. “우리는 남들처럼 살지 않고, 침대 없이도 개성 있게 꾸며볼 테니까”하고 근거 없는 자신감을 부려보았던 적도 있지만, 멋진 인테리어란 돈과 센스와 부지런함 중 적어도 2가지는 갖춰야 가능한 일이었다. 신혼 초의 우리는 돈, 센스, 부지런함 어느 것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다. 침실을 볼 때마다 속이 쓰렸다. 게다가 나무판 위에 올려진 토퍼는 침대로서의 기능만 따져봐도 최소한의 기능을 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가끔은 허리도 아팠다. 그렇게 자취방 분위기로 꾸며졌던 집에서 우리의 신혼 기간이 막을 내리고 말았다.(나라에서 주택 담보 대출 등을 심사할 때 판단하는 신혼부부의 기간은 5년이다)






최근 매수한 아파트에 입주한 뒤, 이번에야말로 새 깨끗한 집에 어울릴만한 침대를 사겠다 결심했다. 그러나 인테리어 센스가 그닥인 나로서는 어떤 침대를 구매했을 때 만족스러울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어떤 침대가 예쁜 침대인 걸까? 아무리 보아도 침대 프레임 디자인은 다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침대에 누워 TV를 보며 잠들 수 있도록 TV를 침실에 배치해 놓은 상태인데, 지금 TV는 높은 침대가 들어오는 순간 다리를 덮은 이불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만큼의 낮은 위치에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TV나 TV장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그 전처럼 낮은 침대 위에서 TV를 보는 자취방 분위기도 어쩐지 새로운 무드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왠지 괜찮을 것 같았다. 예전보다는 좀 부지런해졌고, 센스도 생겼으니, 어떻게 해 보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그전에 쓰던 구성에 매트리스 하나만 추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아직은 내가 원하는 그 독특한 분위기라는 것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런 것은 개성 있는 침구의 영역이니 천천히 만들어 보기로 하고… 일단은 이 매트리스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새로운 침대와 고양이 이야기를 이제 시작하는 것이다.









새로 들인 매트리스는 한 번 누우면 일어나고 싶지 않아질 정도로 푹신했다. 게다가 한쪽에서 뒤척여도 다른 쪽에는 전혀 흔들림의 영향이 없는 독립형 스프링 매트리스였다. 남편이 신중하게 고른 보람이 있을 만큼, 만족도 높은 제품이었다. 그리고 매트리스란 토퍼와는 달리 두께감이 있다. 침대를 구성하는 최소 70%는 사실 매트리스인 것이다. 그러니 매트리스 하나만으로 꽤 침대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 위에 토퍼를 얹어 더욱 편안한 침대가 완성되었다. 내 생애 최초로 느껴보는 침대의 안락함이었다.


고양이는 침대라는 공간을 좋아한다. 푹신한 감촉 때문일까, 따뜻한 온도 때문일까. 고양이가 자주 머무는 공간은 그 집 안에서 가장 따뜻한 장소라는 설이 있다. 침대에 몸을 말고 잠들어 있는 참치를 볼 때마다, 나도 그 따끈한 털 뭉치를 끌어안고 함께 잠들고 싶지만, 고양이라는 분은 몸을 쉬이 인간에게 맡기지 않는다. 가서 생각한 그대로 행동했다가는 고양이의 단잠을 망치기만 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면 남는 것은 고양이의 잡친 기분과 나의 미안한 마음뿐이다. 참치는 일명 개냥이의 끝을 보여준다고 할 정도로, 사람에게 집착하고 안기기 좋아하는 고양이지만, 개냥이도 고양이는 고양이였던 것이다.


참치는 종종 자고 있는 사람의 발밑에서, 살구는 허리춤에서 잠들곤 한다. 그러나 고양이들의 덩어리가 느껴질 때마다 나는 망부석처럼 굳어있어야만 했다. 이 까탈스러운 생물이 여기 계속 머무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오래 굳어 있다 보면 몸이 저려 조금 뒤척일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 조금의 움직임도 용납하지 않고 고양이는 침대에서 빠져나가 버렸다.(매정한 녀석!)

고양이가 떠나간 자리에 남은 약한 온기를 더듬으며 나는 매번 슬픔을 느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이번에 들인 매트리스 위에서는 고양이들이 꽤 너그러워진 것이다. 어쩐 일인지 자신들이 몸을 붙인 내가 살짝 움직여도 조금은 참아주는 모습을 보였다. 이전보다 침대가 더욱 안락하고 따뜻해서 떠나고 싶지 않아진 것일까 추측도 해 보았으나, 이 매트리스가 독립형 스프링 매트리스여서가 아닌가 하는 결론에 다다랐다. 사람의 뒤척임이 고양이가 누워있는 곳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새 매트리스의 이점이었다. 

매트리스를 깔길 잘했어. 그것도 독립형 스프링 매트리스 말이지. 나는 요즘 아침마다 다리 사이와 허리춤에서 따끈하게 올라오는 작은 생물의 온도를 감지하며 행복을 느낀다.



고양이들의 체온에 취해일어났다가도 다시 잠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아늦잠을 자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아! 그동안 나는, 나의 고양이들이 무조건 내 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근거는 남편과 내가 싸워서 각방에 잠자리를 폈을 때, 내가 침실이 아닌 다른 곳을 잠자리로 삼더라도 늘 고양이들이 내 곁에서 잠들곤 했다는 점이었다.(아침에 일어났을 때 고양이들이 남편이 아닌 내 곁에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겼다’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었다) 그러나 얼마 전 이 새로운 매트리스를 장만한 뒤, 내가 침실이 아닌 차가운 다른 방에서 분을 삭이며 잠들었을 때, 고양이들은 나에게 오지 않았다…

정말이지 놀라운 매트리스의 성능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진심으로 서운했다.





이 글은 독립형 스프링 매트리스를 광고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작성된 것은 아닙니다. 고양이 집사를 대상으로 하는 독립형 스프링 매트리스의 추천일 수는 있겠습니다만,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상태이므로, 구입 시 신중한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고양이 참치와 살구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at_chamchi_sal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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