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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몬순 Oct 20. 2020

고양이와 피규어

덕질의 대상이 고양이가 되었을 뿐


4년 전, 동생과 교토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아케이드 상가를 지나다, 어느 상점 앞에 캡슐 뽑기(일명 가챠 또는 캡슐 토이) 기계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렸을 때 많이 이용하곤 했던 장난감 뽑기 기계 말이다. 어떤 장난감이 들어있을지 알 수 없어서, 캡슐을 열기 전 항상 두근두근했던 기억이 난다. 일본의 가챠 기계는 우리네 추억의 기계와는 달리 300엔으로 상당한 수준의 피규어를 뽑을 수 있어서 내가 매우 좋아하는 기계로,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한국에도 들어와 있는 일본산 가챠 기계 앞에서 자주 멈춰 서곤 했다.(올해부터는 40대가 되어서 좀 자제하고 있다)


교토의 그 가챠 기계는 당시까지만 해도 오타쿠의 혈기가 짙었던 내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물체였다. 뽑기 품목 중에 어릴 때 굉장히 좋아했던 만화, <란마 1/2>의 피규어 뽑기가 있었던 것이다. 어머, 이건 뽑아야 해!


동생의 야유를 받으며 600엔을 투자하여, 피규어 2개를 뽑았다. 조연 여자 캐릭터인 ‘샴푸’와 란마의 ‘아빠 팬더곰’ 피규어가 나왔다. 이왕이면 주인공인 란마를 뽑는 것도 좋았겠지만, 아직까지도 내 책상 위에 올려져 있을 정도로 이 두 피규어는 예쁘고 퀄리티도 좋았기 때문에 당시 나름대로 만족했었다. 이 피규어 2종은 내 교토 여행에서의 의외의 득템이자 소중한 기념품이 되어, 이후 내가 캡슐 토이 기계에 집착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그리고 아직도 후회한다. 그때 돈 좀 더 써서 다른 것도 뽑아볼 걸! 이후 일본에 몇 번을 가도, 같은 가챠 기계는 다시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두근거리는 순간.






나는 포켓몬스터의 이상해씨를 매우 좋아한다. 눈매는 사나워 보이고, 입은 커다랗고, 송곳니도 튀어나와 있지만, 그렇게 순수해 보이고 귀여워 보일 수가 없다. 사랑스럽다. 이상해씨가 방긋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행복해진다. 앙다문 입으로 천연덕스럽게 아장아장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우리 집 고양이 살구가 생각나기도 한다. 거기에 등에 달린 봉오리가 화룡점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마트 안에 늘어서 있는 캡슐 토이 기계 중 <잠자는 포켓몬스터 친구들 XY&Z> 뽑기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개 중, 잠자는 이상해씨도 물론 있었는데, 도톰한 팔에 얼굴을 파묻고 잠든 모습에 심장을 저격당해 버리고 말았다.

참지 못하고, 가지고 있던 만 원짜리 지폐를 천 원짜리로 황급히 바꾼 뒤, 2000원을 넣어 기계를 돌렸다.

꼬부기가 나왔다.

다시 2000원을 넣었다. 이번엔 피카츄가 나왔다.


집에 돌아가 저금통을 털어 8000원을 준비해 갔다. 이번엔 꼬부기 2개와 파이리와 말랑이가 나왔다. 이상해씨 말고는 다 나온 셈이다. 이럴 수가 있나. 일부러가 아니면 정말이지 이럴 수는 없다.

집에 있는 현금을 탈탈 털어 다시 나왔다.(은행에 있는 돈을 인출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을 밝혀둔다) 이렇게 된 이상 끝을 보아야만 한다.

결국 이상해씨를 얻어낼 수 있었지만, 꼬부기를 한 번 더 뽑고 난 다음의 결과였다. 꼬부기가 4개가 있는 셈이다. 다행히 당시 6살이었던 조카가 포켓몬을 매우 좋아했던 덕에, 이상해씨를 제외한 모두는 조카에게 보내주었다.

16000원으로 나름 모두 행복한 결과를 얻은 셈이다.

뽑는 데에 열중하는 도중, “어른이 왜 포켓몬스터를 뽑아?”하는 소리도 들었다. 어린이여, 이런 것을 뽑는 어른도 있답니다. 세상을 널리 보아주세요.





(30대 중후반의 일이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면모가 있는 법이고, 다행히 내 주변엔 이런 면모를 가진 친구들이 꽤 많아서 다들 이 건에 대하여 이해하고 공감해 주었다.)






이 란마1/2과 포켓몬스터 캡슐 토이의 건 이후로, 나는 피규어 캡슐 토이 기계만 보이면 그 앞에 멈춰 섰다. 선물하기 위해 캡슐을 뽑기도 했고, 그냥 의미 없이 뽑아보기도 했다. 피규어가 귀엽기도 했지만, 적은 돈으로 좋은 퀄리티의 제품을 뽑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은 소비를 했다는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물론 결코 합리적인 소비라고 할만한 행위는 아니겠지만, 나에게 기분 좋은 자극을 주었다는 점에서야 좋은 소비라고 할 수 있겠다.

콘텐츠 자체만 소비하는 경향의 오타쿠였던 나지만, 그래도 피규어엔 늘 로망이 있었다. 그러나 가난한 자취생 오타쿠에게 피규어는 너무 비싼 취미 생활이었기에, 이런 작은 피규어들이 소소하게 나의 오타쿠 욕망을 채워주었던 것이다.


이 반복적인 행위가 계속되면서 작은 피규어들이 소소하게 집에 쌓였다. 컵의 후지코라던가, 엉덩이 탐정이라던가, 나츠메 우인장의 냥코센세, 유미의 세포들 등이 집의 여기저기에 진열되었다. 인테리어적인 측면에서 데코를 잘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밋밋한 집에 약간의 아기자기함을 더해줄 정도는 되었으리라.


그러나 내 모든 피규어들은 고양이들의 우다다 한 방에 촤아악-하고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그러고나서 고양이들은 아주 신나게 솜방망이로 피규어를 치고 굴리고 쫓고 흥분했다. 잘 굴러갈만한 모양면에서도 크기면에서도 고양이에게 있어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의도치 않게 고양이에게 복지를 제공한 셈이 되어버린 건에 대해서 나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피규어나 작은 물건들을 장식해 놓고 살면서도 고양이와 별 탈 없이 지내는 집사들도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집 고양이들은 어딘가에 올라가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근육도 불끈불끈하며, 호기심도 지나치게 왕성하고, 집착도 심하다.(두 고양이가 이 조건들을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다) 그야말로 혈기왕성한 녀석들이다. 이제 곧 태어난 지 6년이 다 되어가는 중인데도, 녀석들은 변함이 없다. 아직까지도 여전한 것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정말?)


피규어들 대신 육중한 고양이 두 마리가 TV 아래, 선반 위 등등의 진열장을 차지했다. 이 사고뭉치들은 내가 자기들 대신 피규어에 애정을 주는 모습을 용납할 수 없었던 걸까. 매번 흐트러진 피규어를 곧바로 자리에 돌려놓도록 노력했지만, 결국은 다시 장식하느니만 못한 상태가 되었다. 피규어들은 그냥 널브러져 있거나, 커플인 피규어가 등을 돌리고 있다거나 하는 상태일 때가 많다.

결국 내 작은 피규어들은 자연히 서랍 속이나 연필꽂이 등의 사이에 방치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상해씨.






지금의 남편과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그는 둘이 함께할 취미로 프라모델 조립을 희망했다. 프라모델의 대표 격이며, 남편이 조립하고자 하는 건담이라는 것에 1도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디자인이 뭐가 멋지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조립하는 행위 자체는 즐거웠기 때문에 잠시간은 함께 했다. 건담 시리즈 중, 곰돌이 형태의 로봇인 베앗가이 등의 귀여운 프라모델은 내 취향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건담은 너무나도 약해 빠진 녀석이었다. 고양이의 손길 한 번이면 칼이고 팔이고 쉽게 분해되어 버렸다. 건담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기 짝이 없다.

남편은 애지중지하는 건담들을 회사로 급히 피신시켰다.


우리는 넨도로이드라고 하는 SD형 피규어도 몇 구 보유하고 있다. 넨도로이드는 팔이나 얼굴 부품 등을 갈아 끼워 다양한 포즈와 다양한 표정을 연출할 수 있도록 제작된 귀여운 인형이다. 그 말은, 부품을 쉽게 분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말이지 않겠는가. 이미 고양이 덕에 넨도로이드의 부품 몇 개를 분실한 나로서는 더 이상의 손실을 발생시키고 싶지 않아서 해당 물건들을 상자 째로 보관하고 있는 상태다. 잃어버린 팔이나 다리 등은 이사를 할 때쯤, 가구 아래에서 발견되겠지.


물론 수집가 중엔 상자째로 고이 보관하는 케이스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피규어라면 그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어 뽐내야 하기 마련이다. 유리장을 짜서 그 안에 진열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지만, 이 또한 내가 피규어를 장식하고자 하는 형태는 아니었다. 수집품을 위해 공간을 내어주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존재는 이미 내 집에 있는 수 많은 책들로도 충분했다. 나는 피규어가 우리 집 사이사이에서 무심한 듯 놓여져, 약간의 포인트가 되어주길 원했을 뿐이다.







이 작은 물건들을 이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좋은 곳으로 보내줄 것인가 내내 고민하며 고양이와 함께 산 지도 벌써 6년이 다 되어간다.


모든 고양이가 이렇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집 고양이들은 애석하게도 이런 고양이들이었다.(이 책의 모든 물건들에 대한 에피소드도 개묘차가 있음을 지금에서야 언급한다) 정말이지 지나치게, 정말로 지나치게 활발하다.


오타쿠는 선택해야 했다. 고양이인가 피규어인가. 사실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오타쿠 생활을 일부 정리하게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나는 고양이를 깊게 사랑하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할 때, 독립출판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강사님의 “대개 작가님들의 첫 책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더라”라는 말을 듣고 내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됨과 동시에, 내가 지금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내 고양이들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10대 시절부터 덕질의 연속이었던 내 인생. 어쩌면 이제는 내 덕질의 포커스가 고양이로 옮겨가게 되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덕질이라는 것은 무조건적이고 무한한 사랑이다. 대상이 시답잖은 소리를 해도, 의미 없는 행동을 해도, 그에 과한 의미를 부여하여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는 점에서 나의 고양이에 대한 사랑과도 어느 정도 일치하는 면이 있다.

우리 집 고양이에 대한 내 의미부여는 가끔 너무 지나쳐서, 남편이 좀 진정하라고 말할 정도인 것이다.


“살구가 왠지 기운이 없네. 어디 아픈가?”

“…아까 잘 뛰어다니던데.”


“참치가 요즘 밥을 잘 먹지 않는 것 같아. 어디 아픈가?”

“…요즘 쟤 살찐 것 안 보여?”



이 일방통행의 사랑도 덕질과 비슷할지도.









고양이 참치와 살구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at_chamchi_sal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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