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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몬순 Aug 30. 2020

고양이와 털실

그 무엇보다 위험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앞서 나의 장래 희망이 ‘유유자적하게 고양이를 키우며 사는 자연 친화적인 수공예 할머니’라는 것을 언급했을 것이다. 이 장래 희망을 위한 장황한 수식어들 중, 이번 챕터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수공예’라는 단어다. 수공예란 무엇인가. 수예와 공예, 손수 만드는 모든 행위를 아우르는 단어, 요즘 말로는 ‘핸드메이드’라고도 한다. 

나에게는 어릴 때부터 흔들의자나 소파 이상으로 ‘내가 손수 만든 것으로 내 주변을 가꾸는 것’이 계속 로망으로 남아있었다.




개중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뜨개질이었다. 학창 시절 많은 학우들이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겨울방학의 목도리 뜨기는, 내 경우 완성품을 만들어낸 적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기 전에는 하고픈 마음도 매우 크지만, 시작하고 나면 이상하게도 빠르게 그 마음이 식어버린다. 뜨개질뿐만이 아닌 많은 분야에서 그러했다.

알고 보니 나는 냄비근성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쉽게 뜨거워졌다가 쉽게 식어버리는, 이른바 냄비중에서도 최악인 양은냄비였다. 우리 집 구석에 쌓여 있는 수많은 수공예 미완성품과 한 페이지만 쓰고 방치되어 있는 수많은 노트가 이 증거였다. 나의 이 근성에 대해서 스스로는 진작부터 인지하고 있었지만, 진실을 외면한 채 무언가를 시작할 때마다 이번만은 잘 해내 보일거야 하는 허튼 기대를 매번 품어왔다.


대바늘로 하는 뜨개질에 매번 실패하다 보니, 코바늘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본인의 성질머리를 인정하지 못하고 코바늘이 좀 더 만만하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대바늘 뜨개질과 비교하자면, 바늘 하나만으로 제작이 가능하니까 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단순하고 바보 같은 이유였다. 그리하여 역시나 이번만은 잘해보겠단 생각으로, 코바늘 뜨개질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했다.

망원동 구석의 공방에서 4시간 동안 코바늘과 털실과 함께 사투를 벌인 끝에 2개의 코스터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내 생애 최초, 뜨개질로 완성한 첫 작품이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무언가를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은 굉장하다. 직접 만든 코스터를 바라보는 내 눈과 마음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번에야말로 무언가를 완성해 낸 것이다.

그 날 집에 돌아가서 바로 클래스에서 사용했던 것과 같은 면사 몇 종류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완성’해서 집도 꾸미고, 지인들에게 작은 소품 선물도 할 생각에 잔뜩 들떠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 1년 동안은 내내 코스터만 뜨게 된다. 코스터 이상의 것을 뜨기엔 나의 인내심이 버텨주지 못했다. 집에 수많은 코스터가 쌓였고, 다양한 코스터를 만들기 위한 털실들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코스터는 작은 소품. 털실 1볼로는 매우 많은 코스터를 만들 수 있지만, 보통은 그 털실을 코스터를 만드는데에 전부 소비하지는 않는다. 그러다보니 남는 털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이 빌어먹을 근성으로 인해 바구니, 모자, 가방이 되려다 만 수많은 미완성품도 털실 상자 안에 함께 남아버렸다.

사용하다 마는 털실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상자 하나로는 수납이 부족했다. 상자가 넘쳐서 결국은 털실을 넣어둔 ‘대충 상자’들이 집 여기저기에 포진해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직후, 우리는 고양이라고 하는 새로운 식구와 함께 살게 된다.







고양이가 털실과 함께 있는 광경은 매우 귀엽다.  실뭉치를 장난감으로 삼아서 노는 고양이의 모습은 그림이나 사진 등의 매체를 통해 자주 볼 수 있는 친숙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털실은 알고 보면 고양이에게 매우 위험한 물건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고양이와 함께 사는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무서운 소리가 두 가지 있다.

옭-옭-옭-

힑-힑-힑-


전자는 고양이가 토하기 직전에 내는 소리(고양이의 토악질은 빈번한 일이지만, 이불이나 신발 등의 위에 토사물을 쏟는 경우가 많기에 고양이가 토할 것 같은 신호를 주면 잽싸게 달려가 그 장소에 있는 물건을 치워야 한다), 후자는 고양이가 이상한 것을 삼키고 있을 때 내는 소리다. 이 소리는 바람이 새는 듯한 소리를 동반한다. 대개 저런 소리가 날 만한 이상한 물건이란 얇고 긴 것에 한정되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실’이다.

실이 고양이의 목에 조금이라도 넘어가는 순간, 누군가 옆에서 빼주지 않는다면 그 실은 고양이의 안쪽으로 완전히 들어가 버리고 만다. 고양이 혀의 돌기가, 삼킨 것을 뱉어내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양이가 짧은 실을 전부 삼키기 직전까지 목격한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빨아들이는 수준이더라.(이때 털실이 고양이에게 위험한 물건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어느 각도로 보아도 안전하다고는 볼 수 없는 현장이었다. 삼킨 실의 양이 많을 경우는 장폐색 등의 위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싶으면 바로 달려가 고양이가 삼키고 있는 것을 빼주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 집에서도 가장 위험한 물건으로 분류하여 단단히 수납하는 물건이 털실이다. 다른 것들은 엔간해선 그 물건이 망가지는 것으로 끝나지만, 털실과의 접촉은 고양이들이 위험해지고 만다.

고양이와 함께 살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털실을 넣어둔 대충 상자들의 수를 대폭 줄이고, 절대 고양이의 손이 닿지 않도록 털실의 보관 장소와 보관 방법에 신경을 썼다. 그럼에도 그중에 고양이가 뚜껑을 열기 쉬운 털실 보관함이 하나 있어, 그것은 문닫힘방지 장치를 채워두기까지 했다.(고양이와 문 챕터 참고)








어느 날의 일이다. 집에 돌아왔는데 쓰레기통의 뚜껑이 열려 있었다. 고양이들이 쓰레기통만은 좀처럼 뒤지지 않아 안심하고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그날은 고양이가 쓰레기통을 열어 뒤진 흔적이 있었다. 퍼뜩 생각났다. ‘안돼! 그 안에는 어제 버린 털실이 있는데!’

황급히 쓰레기통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버린 털실의 잔해가 보였다. 어제 꼬일 대로 꼬인 것을 도저히 풀지 못해서, 짜증을 내면서 이 안에 던져버렸던 털실이다. 털실이 남아있는 걸 보니, 고양이가 털실을 건드리지는 않았나보다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중에, 참치가 (관심을 갈구하며) 내 옆을 스윽- 스쳐 지나갔다.


어어라, 그런데 참치의 엉덩이 부근에서 무언가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가볍게 흔들리는 그것의 정체를, 첫눈엔 파악하지 못했다.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상황 파악 완료.


급히 상황을 수습했다.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고양이의 은밀한 그곳에서 튀어나온 실을 조심스럽게 뽑았다. 뽑혀 나온 실의 길이는 약 20cm 정도였다. 혹여나 고양이의 안에 남은 실이 있을까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 이후 참치는 탈이 나지 않았다. 천만다행으로 20cm 정도의 실만 삼켰던 모양이었다.

앞으로는 털실을 보관하는 것 말고도 버리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구나. 이렇게 여러 사건을 겪어가며 계속 주의에 주의를 거듭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뽑을 때도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이 사건은 두고두고 우리집 고양이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어느 친구는 난색을 표하며 ‘고양이들에 관한 예쁘고 좋은 이야기만 듣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쯧쯧, 고양이에 대해 1도 모르는 친구여, 이것이 바로 고양이의 진정한 모습이며, 고양이와 함께 사는 현실적인 집사의 삶이랍니다. 고양이가 예쁘고 귀여운 생물이기만 한 것은 아니란 말이지요. 물론 고양이가 예쁘고 귀여운 생물임은 분명한 사실입니다만.






나에게는 취미에 관련하여 냄비근성 외에도 못된 성질이 하나 있다.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장비병이라고 하는 녀석이다.

뜨개의 세계에는, 알고 보니 바늘 말고도 많은 도구들이 있었다. 

 스스로의 미숙함을 장비의 부재로 돌리고, 나는 그간 많은 장비들을 구매했더랬다.




이 중, 고양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물건은 위빙틀이라는 도구다. 일종의 간이베틀이라고 할 수 있는 위빙틀은 씨실과 날실을 엮어 직물을 만드는 도구로, 보통은 태피스트리 등을 만드는 데에 사용한다.


내 경우 국내 J사에서 제작한 사이즈 50cm×70cm의 커다란 위빙틀을 구매했었다. 작은 것도 있었지만, 이번에야말로 코스터를 뛰어넘어, 테이블 매트 같은 것을 뜨고 싶은 마음에 호기롭게 큰 것으로 주문해 보았다. 결국은 이것마저도 코스터를 제작하는 데에 사용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예상했겠지만 이 도구는 쉽게 고양이들의 놀잇감으로 전락했다. 작업을 시작해 버리면 걸린 실을 도중에 걷어낼 수가 없기 때문에, 넓은 직물을 짜려면 그를 짜는 며칠 동안은 늘 실이 걸려있는 상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금만 방심하면 어느새 위빙틀에 걸린 날실로 하프를 다루듯, 고양이가 연주를 시작하고 있다. 발톱만이 아니라 이빨로도 현을 튕기는 이 연주는, 소리가 없는, 퍼포먼스만 존재하는 공연이다. 이 현란하고 요란하지만 조용하기도 한 공연은 금세 악기의 현이 끊어지며 엉망진창으로 끝나버려서, 관객은 그제야 이 공연이 코미디였음을 알아채게 된다.

이 정도면 위빙틀이란 물건이 애초에 고양이를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위빙틀은 집 어딘가의 잘 보이지 않는 틈새에 자리를 잡았고, 이후 여기에 실이 걸리는 일도 다시 없었다. 그래도 여즉까지 처분하지는 않았다. 꽤 비싼 값을 치른 도구라 버리고 싶지 않았고, 중고로 판매하자니, 이미 상할 대로 상해서 값을 매기기도 애매하다.


고양님들의 손길이 닿은 흔적들.


그렇담 언젠가 쓰기라도 하게 될까 하고 놔두고는 있었지만, 아마도 다시 사용할 일은 요원하다.

놔두면 언젠가는 쓴다-며 어르신들이 살림살이 발 디딜 틈 없이 쟁여두고 사는 걸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물건을 잘 버리는 나지만, 취미용품들 만큼은 쉽게 버리지 못했다. 정말로다가 놔두면 언젠가는 쓸 것 같단 말이지.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와중에도 나의 냄비근성과 장비병은 멈추지 않아서, 최근엔 자수에도 손을 뻗쳤다. 자수용 실은 털실과는 다른 아기자기함과 다양함이 있다. 나는 동대문의 수예용품점에서 이성을 잃고 집에 그 다채로움들을 잔뜩 모셔두고야 말았다. 그러나 자수 도구들은 실은 차치하고라도 바늘이 위험해서(바늘 수가 하나 부족한 것 같으면 계속 불안하다)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나로서는 늘 도구관리에 집중하며 자수를 놓게 된다.

심지어 자수 이후에는 바느질을 시작했는데, 손바느질을 해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작업도 힘들어서, 미싱을 살 무시무시한 계획도 세우고 있다.


나의 이 근성과 장비병은 불치병이다. 얉고 넓게 살아온 나로서는 좁고 깊은 세계를 가진 이들이 늘 부러웠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고양이에게도 나에게도 도움이 될 법한 삶이 저 너머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좀처럼 그쪽으로 발길이 닿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처럼, 나의 이 특질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참고 살 수야 있겠다마는, 너무 참기만 하는 인생이 어찌 행복할 수 있을까. 인간이 행복해야 고양이도 함께 행복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되,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아내는 것, 타협하는 것, 그것이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기로 한 나의 생활이다.







고양이 참치와 살구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at_chamchi_sal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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