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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몬순 Aug 29. 2020

고양이와 흔들의자

무지와 부주의의 대가를 치르다


나의 고양이와 함께 하는 일생에서, 고양이를 24시간 동물병원에 이송해야 하는 응급상황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당시 참치의 나이 1살에 불과했다.


이것은 우리가 첫 번째 소파의 스크래처화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고 소파를 버린 직후의 이야기이다. ‘어라, 소파와 흔들의자는 어느 정도 같은 역할을 하는 가구일 텐데 어째서 따로 챕터를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간단하고 당연한 이유를 설명하자면, 우리가 흔들의자를 포기한 이유가 소파를 포기한 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야기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리클라이너 체어가 슬슬 유행을 타면서 1인용 흔들의자도 함께 유행하기 시작할 때였다. 소파를 버렸으니 거실에 놓을 ‘편하게 앉을 수 있는 가구’가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1인용 흔들의자를 다음 ‘안락의자’로 선택했다.


사실 나에게는 원대한 장래 희망이 하나 있다. 노후엔 유유자적하게 고양이를 키우며 사는 자연 친화적인 수공예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이 희망은 정말이지 원대한 계획이 아닐 수가 없다. 부동산이나 로또를 통해 거액의 금전을 축적해 둔 상태가 아니고서야 현대 사회의 자식도 없는 대한민국의 노인이 저런 여유롭고 아름답기만 한 생활을 즐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므로)

자아, 그렇다면 나의 이 장래 희망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지 않습니까?

동화책, 어느 화가의 저서, 복지가 좋은 유럽 어느 마을의 노인을 소개하는 방송 등을 통해 익히 본 킨포크하고 휘게휘게한 그림들이 머릿속에 라곰라곰 떠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 이미지 안에는 늘 자연스럽게 삽입되어 있는 하나의 가구가 있다. 바로 이 챕터에서 이야기하려는 가구, ‘흔들의자’다.


고양이들과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바람이 지나친 욕심일지라도.


흔들의자에는 어렸을 적부터 소파 이상으로 늘 로망이 있었다. 아마 많은 이들에게도 이 가구가 로망으로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왜, 지나가다 흔들거리는 의자들 보면 꼭 앉아서 의미 없이 한 번씩 흔들어보게 되지 않습니까. 찰나의 안락에 푹 잠겨서 ‘우리 집에도 이런 거 하나 있으면 좋겠네’하고 꿈꾸면서 말이다.




내 오랜 로망의 모습과 유사한, 우리의 새로운 친구 흔들의자. 인터넷 쇼핑몰에서 산 이 간단한 흔들의자는 두터운 면 재질의 커버를 가지고 있어, 우리의 귀여운 가족이 자신의 그릉그릉한 손톱을 갈기 위해 이용할만한 도구는 아니리라는 판단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우리가 이 가구로 인해 문제를 겪을만한 요소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 얼마나 안이한 생각이었던가. 문제는 너무도 빠르게, 무려 흔들의자를 맞이한 첫날에 찾아왔거늘. 그것도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형태로 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는 바로 파악하지 못했다. 참치는 울면서 계속 인간의 주변을 맴돌았지만, 그건 여느 때와 같은 행동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점을 인지할 수 없었다.


참치가 흔들의자에 꼬리를 찧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대략 30분 후. 참치가 세차게 꼬리를 흔들며 핏방울을 주변에 흩뿌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혼비백산한 채 바로 참치를 동물용 캐리어에 태워, 24시간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늦은 시간이라 선택지가 없었다.

진단을 위해서는 상처 부위가 보일 수 있도록 일차적으로 참치의 꼬리털을 일부 밀어야 했다. 꼬리털을 미는 동안 처치실 안쪽에서 괴로워하는 참치의 울음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다. 참치에게서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던 소리였다.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참치의 진단을 끝낸 의사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참치의 꼬리 끝 살점이 떨어지고 뼈가 일부 드러난 상태다, 꼬리 끝을 절단하는 방법의 처치와 피부를 끌어올려 꿰매는 처치가 있는데 어느 쪽 처치를 원하시냐, 꼬리 끝을 절단할 경우 대략 5~6cm의 길이를 자르게 될 것이다, 라는.

지금은 당연히 자르지 않는 방향으로 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당시는 당황해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는지 두 가지 방향 중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잠시 생각한 뒤, 우리는 결정한 내용에 대해 의사에게 처치를 부탁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쏜살같이, 기존에 다니던 동물병원으로 참치를 데리고 갔다. 의사 선생님들이 평소 참치를 참 예뻐해 주어서, 이 곳이라면 고양이들을 잘 봐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다니는 곳이다. 지난밤의 상황을 설명하고 다른 병원에서 응급처치한 부분을 보였다. 항상 긍정적인 진료를 하는 인상 좋은 의사 선생님은, 붕대를 풀어 상처를 살펴본 뒤 이대로면 되겠다고 진단하고 진료비도 받지 않았다.(참치가 이 과정에서 한 엄청난 수의 하악질과 발버둥을 받아내느라 수난을 겪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제서야 꼬리를 자르지 않는 선택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신뢰하는 사람에게 자식의 안위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들어야, 안심하는 이것이 엄마 마음인걸까.


참치의 꼬리가 회복되는 데에는 몇 주가 소요되었다. 그 기간 동안 병원을 꾸준히 다니며 상처를 확인하고, 약을 매일 먹였다. 남편은 고양이 약 먹이는 노하우를 이때 터득해서, 지금은 고양이 약 먹이기 달인이 되었다.

상처가 나은 뒤, 밀었던 꼬리털이 완전히 자라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요상한 모양이 된 참치의 꼬리는 주변인들에게 소소한 웃음을 주었다.




그리고 흔들의자는 결국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우리집에서 빠르게 퇴장했다. 흔들지 않고 앉아있으려니 앉아있는 것이 어정쩡할 수 밖에 없고, 어정쩡하게 앉아있으려니 앉은 자세가 편할 리 없다. 인간은 의자에 앉기보다는 바닥에 눕는 횟수가 더 많아졌다. 흔들의자는 적어도 고양이들이 종종 이용하긴 했으니, 고양이용 의자 역할 정도는 하고 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거면 되었지.


가끔 생각한다.

만약 그때 찧었던 것이 참치의 꼬리 끝이 아니라, 꼬리의 시작 지점이었다면? 앞발이었다면? 살아가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어느 부위였다면?

생각만 해도 오싹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지와 부주의의 대가를 비교적 가볍게 치른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할 뿐이다. 


참치는 요즘 남편으로부터 “꼬리 간수 못 하는 녀석”이라는 핀잔을 듣는다. 인간을 너무 좋아해서, 밥 먹는 인간 근처에서 알짱거리다가 밥상 아래로 곧잘 들어가 버리곤 하는데, 그때마다 꼬리로 수저나 젓가락을 건드려 바닥에 떨어뜨리거나, 꼬리에 음식물을 묻힌다거나 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가 꼬리 간수가 어려울 정도로 긴 꼬리의 고양이로 살아갈 수 있어서, 나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참치야.







그리고 나는 흔들의자 대신 캠핑 의자에 앉아있는 힙한 수공예 할머니가 되기로 했다.







고양이 참치와 살구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at_chamchi_sal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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