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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몬순 Aug 28. 2020

고양이와 문

번거로움을 내 삶의 기본으로 인정하기

문 :

드나들거나 물건을 넣었다 꺼냈다 하기 위하여 틔워 놓은 곳. 또는 그곳에 달아 놓고 여닫게 만든 시설.






나의 집 안에는 모두 몇 개의 문이 존재할까?

문의 사전적 의미를 짚어 보면, 내 생각보다 많은 문이 집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대문, 방문, 창문 등의 사람이 드나드는 문뿐만이 아니라, 옷장이나 수납장 등 가구를 여닫을 때 사용하는 그것들도 ‘문’이라 불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나아가서는 어떤 물체의 뚜껑 등도 문으로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문에 둘러싸여 있고, 그 수많은 문으로부터 보호받고, 무언가를 보호하기도 한다.

이번 장에서는 우리 집에 있는 여러 가지 문들과, 그 문에 얽힌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대문이란 예로부터 활짝 열어 돌아온 가족이나 손님을 맞이하는 문이었다. 우리는 그 누군가를 “어서 오세요”하고 환영하며 바깥을 향해 대문을 활짝 연다. ‘활짝’이라는 수식어와 떼어놓을 수 없는 문이라는 느낌이다. 대문(大門), 그 의미처럼 크게 열려야 하는 문이다.


활짝 열리지 못하는 대문은 보통 불길하고 나쁜 전개에 대한 복선이다. 뭐가 무서워서 당당하게 들어오지 못하지? 또는 어떤 무서운 것이 바깥에 있길래 문을 그렇게 조심스럽게 열어? 하는 등의 느낌을 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우리 집의 대문이 바로 그러한 문이었다. 활짝 열린 우리 집의 대문은 반드시 나쁜 전개가 일어날 가능성을 시사한다.


왜냐, 우리 집엔 고양이가 살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이 고양이는 가출 욕망이 아주 충만한 참치라는 녀석이다.



참치는 언제나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정작 밖에 나가면 쫄아서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 대문 밖 세상에 대한 갈망이 컸다. 사람이 집을 나설 때 항상 쫓아 나오려 했고, 사람이 들어올 때 열린 문틈 사이를 비집고 튀어 나가려 했다. 우리는 집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필사적으로 가출하려는 참치와 싸워야 했다. 대문을 늘 조심스럽게 열어 외출하고, 대문을 빼꼼 열어 현관에 참치가 달려 나와 있는지 확인한 뒤 집에 들어오는 것이 절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녀석이 튀어 나가버린 적도 수없이 많긴 하지만, 당시 거주지 환경이 꽉 막힌 복도식 오피스텔 건물이었던 덕에 참치는 뛰쳐나가도 더 도망칠 길이 없었다. 참치는 새로운 환경을 만난 것이 그저 좋았는지 종종 탈출하면 꼬리를 바르르 떨며 복도를 종횡무진 돌아다니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도망칠 수 없는 환경이라고는 해도 간혹 복도의 창문이 열려 있기도 했고, 말이 많은 우리 고양이가 주변에 끼칠 민폐가 우려되기도 해서, 방묘문 등을 알아본 적도 있었지마는 비용과 감옥 같은 비주얼에 걸려 결국 설치하지 못했다.

다행히 두어 달 후 이사할 집엔 미닫이형 중문이 있어서, 나름의 방묘문 역할을 해줄 것 같아 기대하고 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참치의 꾸준한 가출 시도는 어쩌면 혼자 있는 게 싫어서 인간을 따라나서려다가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치가 처음 왔을 때는 나도 남편도 일이 한창 바쁠 때라 참치 홀로 집에 남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지금도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사람과 단절된 상태를 참지 못하는 참치를 보면, 그 때의 상황이 참치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닌가 생각되어서 많이 미안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다른 집 샴 고양이들 성격을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듯싶지만)







우리 집의 대문이 늘 닫혀있거나 반만큼도 개방하지 못하고 들어와야 하는 문인 반면, 우리 집의 방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는 문이다.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넘어, 닫혀서는 안 되는 문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문이 닫혀 있기라도 할 새면,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참치가 문 건너편에서 서러운 소리로 열어달라 애원한다. 누가 들으면 고양이를 학대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정도의 억울함이 가득 담긴 소리라, 인간은 견디지 못하고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어, 사실 부부로 구성된 2인 가구에서 방문 정도야 매사 열어놓고 생활할 수는 있지.

그러나 그 문이 화장실 문이라면 어떨까?







화장실은 참치가 자주 갇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가끔 일부러 문을 닫고 스스로 몸을 가둔 뒤, 인간을 서럽게 불러제낀다. 우워어어어엉~!(이 또한 남이 들을까 무서운 소리다) 그러면 인간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여 그 문을 열어준다. 심각한 관심종자인 참치가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하는 행동이다.(라고 추측한다)

이런 일련의 불편함 및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일명 도어 스토퍼라고도 하는 문닫힘방지 장치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아무래도 드나드는 횟수도 잦고, 그 횟수와 동일하게 장치를 꽂았다 뺐다 해야 하므로, 매우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자칫 다시 꽂는 것을 잊기라도 하면 참치가 문제의 관심 끌기 행동을 시전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면 인간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후략)


4년 전 어느 날의 일이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참치의 구슬프고 긴 울음소리가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소리가 들린 방향은 화장실 쪽이었다. 머리끝까지 놀란 상태로 소리가 새어 나오는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참치와 살구가 화장실에서 튀어나왔다.

그제야 알아챘다. 아차, 내가 도어 스토퍼를 꽂아두는 것을 잊고 출근했구나. 당시만 해도 고양이들이 덜 컸을 때라 손잡이까지 앞발이 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 마주한, 욕실에 가득 찬 고양이들의 지독한 배설물 냄새에 아연실색했다. 화장실 모래 외 장소에 뿌려진 고양이 배설물 냄새는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나로서는 이전에 맡아 본 적이 없던, 고양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완전히 새롭고도 강력한 냄새다. 큰 응응과 작은 응응의 흔적이 모두 화장실 내에 남겨져 있었고, 그것으로 고양이들이 최소 4시간 이상은 갇혀있었음을 직감했다. 이 굉장한 냄새는 금세 좁은 집 안으로 퍼졌고, 쉽사리 빠지지도 않았다.

누굴 탓하겠는가, 다 내 잘못이다. 속으로 울면서 갇혀 있는 동안 스트레스받았을 고양이들에게 용서를 빌며 맛있는 밥을 챙겨줄 뿐이었다.


지금은 참치가 문을 여는 것이 매우 능숙해져서 갇히더라도 잘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고양이 앞일은 모르는 법. 외출 시에는 항시 모든 방의 문닫힘방지 장치가 잘 걸쳐 있는지 체크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특히 여행 등으로 집을 며칠 비울 때는 두 번 세 번 체크한다.

상황을 개선할 만한 방법이 있을까 골몰하기도 했었지마는 결국 별다른 수는 없다. 닫힘방지 장치를 꽂는 것을 되도록 잊지 않게 머리에 새기는 수밖에.


고양이란 분들은 결코 바뀌는 법이 없으니, 인간과 고양이의 안녕을 위해서는 집사가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방과 화장실의 개수만큼 필요한 문닫힘방지 장치 (도어 스토퍼). 우리 집엔 3개 존재한다.





가끔 고양이들이 있는 곳을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온갖 장소를 다 뒤지고 한참을 헤매다(혼비백산해서 냉장고나 전자레인지나 세탁기 통을 열어본 적 있을 정도로 찾기 힘들다) 겨우 고양이를 찾고 나면,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건가 싶은 장소에 들어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예상치 못한 장소는 대개 특정 가구의 내부다.



우리 집 가구들의 문은 닫혀 있지만, 이미 열려 있는 것과 다름없다. 녀석들은 가구의 문을 너무나도 쉽게 여닫는다. 작은 솜방망이는 어떻게든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주저 없이, 조금의 틈도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그러다 보니 수납공간 내의 물품들이 고양이들에게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고양이에게 노출되었을 때 곤란한 물품의 대표는 비닐로 포장된 식료품이다. 깨끗하게 세탁한 옷이나 이불에 고양이 털이 묻는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려동물과 살기로 한 입장에서 털은 감수해야 하는 기본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식료품들은 비닐 질소 포장이 되어 있고, 조금의 공기라도 통하면 산화가 시작되고 만다. 멀리서 바시락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후다닥 달려올 정도로 비닐 깨물기를 좋아하는 고양이들은, 식료품 수납장에 자주 기어들어 가 포장 비닐에 구멍을 내놓곤 했다.

김이나 과자처럼 바삭한 맛에 먹는 식품들이 공기에 노출되어 눅눅해져 있는 걸 느꼈을 때의 슬픔이란.

결국 우리는 화장실 문에 문닫힘방지 장치를 설치했던 것처럼, 노출되면 곤란한 물건이 들어 있는 몇 군데의 문에 문열림방지 장치를 설치하기로 했다.



문열림방지 장치는 닫힘방지 장치와 마찬가지로, 문 여는 횟수와 동일하게 잠금장치를 뺐다 꽂는 작업을 해야 한다. 과정만큼은 닫힘방지 장치보다 훨씬 번거로웠다.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장치의 존재는 외면한 채, 나는 자연스럽게 눅눅한 과자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같은 집에 있는 것인데 어느 문엔 닫힘방지 장치, 어느 문엔 열림방지 장치를 설치해야만 하는 상황이 웃프기 그지 없다.


문열림방지 장치는 어린이가 있는 집을 타깃으로 만들어졌는지, 아기 사진을 바탕으로 하여 패키지 디자인된 상품들이 많았다. 아마 문닫힘방지 장치도 어린이가 구성원으로 있는 가정의 수요가 많으리라. 아이가 어딘가에 갇히거나 신체 일부가 문틈에 끼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이런 점을 생각하면, 육아와 육묘는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기보다는 고양이가 더 조심성이 있기는 하다)

다만, 아기는 언젠가는 자라기 마련이고, 곧 그 가정에는 이러한 안전 장치들이 필요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고양이를 키우는 우리 집은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은 이 장치들을 계속 필요로 하는 불편한 생활이 계속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 불편함이, 내 남은 인생 내에서 최대한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고양이 참치와 살구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at_chamchi_sal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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