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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몬순 Aug 27. 2020

고양이와 소파

인간의 안락의자가 고양이의 스크래처로 전락하기까지

최근 너덜너덜해진 두 번째 소파를 결국 내다 버렸다.


앞으로 우리 집에 소파는 없을 것이라고, 남편과 나는 잠재적 결론을 내렸다. 어릴 때부터 소파가 없는 집에서 쭉 살아왔고 독립한 이후부터 결혼 전까지도 원룸에서만 살았기에, 소파에 어렴풋한 로망이 있었던 것 같지마는 이제는 다 옛날 일이다.






소파는 현대인들에게 침대보다도 친밀한 가구다. 우리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기도 하고, 소파에 앉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몸을 기대어 앉거나 누워 핸드폰을 탐닉하기도 하고, 소파 위에서 낮잠을 청하기도 한다. 행복한 가정의 풍경에는 늘 소파가 함께 하고 있다. 일에 지친 채로 귀가한 김 대리는 소파에 풀썩 엎어져, 내일의 일은 어찌 되더라도 당장은 안도감을 느낀다. 소파는 안락과 행복을 상징하는 가구라고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의 첫 안락의자는 M하우스에서 구매한 패브릭 재질의 빨간색 소파였다. 신혼집으로 구한 새 복층 오피스텔에 걸맞는 아담한 크기와 깔끔한 디자인. 색깔도 바닥의 어두운 우드 타일과 아주 잘 어울려서, 공간의 포인트 컬러가 되어 주었다.




나는 소파 위에 앉아 책을 읽었고, 게임을 했으며, 커피를 마시기도 했고(소파에 맞춘 사이즈의 원목 티 테이블도 장만했었다. 지금은 테이블만 남았지만), 고주망태가 되어 귀가한 날에는 침대로 가지 못하고 소파 위에서 곯아떨어진 적도 있다. 물론 신혼부부로서의 안락과 행복과 사랑이 넘치는 시절도 소파와 함께했다.


참치가 오기 전의 6개월 동안까지만 말이다.


우리 집에 오자마자 자기 몸에 비해 넓은 소파를 떡하니 차지하더니 그 위에서 하얗고 작은 발을 꼼지락대기 시작한 작은 털뭉치, 참치.


고양이 소파 뜯는 둔탁한 소리가, 층고가 높았던 우리 집의 허공에 매일매일 공허하게 울려퍼졌다.


 이 때까지만 해도 소파는 내가 굉장히 소중히 여기고 예뻐하는 존재였다. 방치할 수는 없었다. 여러가지 방법을 찾았다. 고양이가 싫어하는 레몬즙 등을 소파에 뿌려보라는 인터넷 상의 조언 그대로 실행해 보는 등 여러가지 시도를 했지만, 효과는 전혀 없었다.


다급히 6개월 일찍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한 육묘 선배 지인에게 조언을 구했다.





맙소사, 우리의 패브릭 소파는 참치의 스크래처 버릇도 망쳐버린 물건이었던 것이다. 조기교육 완전 실패. 미리 사 두었던 종이 스크래처는 무용지물이 되었으며, 우리는 우리 집에 존재하는 모든 패브릭이 참치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후 그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 참치는 집의 모든 만만한 천쪼가리들을 ‘조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카펫이 유명을 달리했다. 욕실과 부엌의 발판도 카펫이 간 길을 조용히 뒤따랐다. 이 챕터의 주인공 소파는 오래도록 남긴 했으나, 그 오랜 기간을 참치의 스크래처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견뎌내었다.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어, 보내주자-고 생각했을 정도로 엉망이 되었을 때 즈음에야 소파는 참치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참치는 5년이 지난 지금도 종이 스크래처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후 우리 집은 카펫과 싱크대 발판이 없는 집이 되었으며, 욕실 앞 발판은 보송보송한 극세사에서 규조토 매트로 교체되었다.

또한, 이후 오래도록 우리 집엔 소파가 없었다. 1인용 흔들의자가 소파를 대신할 안락의자 자리를 잠깐 차지한 적이 있었으나, 불의의 사고로(고양이와 흔들의자 챕터를 기대해 주세요) 우리 집에서 그리 오래 자리 잡진 못했다.







첫 번째 소파를 버리고 몇 년 뒤, 참치와 살구가 4살이 되었을 때였다. 우리는 방 2개와 거실이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기존에 거주하던 복층 오피스텔은 옵션이 많았던 집이라, 새로 이사한 집엔 새로 갖추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이제 막 결혼한 사람들처럼 신나서 가구들을 사들이던 와중 인간은 과오를 반복하게 된다. 말인즉슨, 우리가 소파를 또 집에 들였다는 뜻이다.


두번째 소파는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가 본인도 쓰고 있다며 추천해 준 인조 가죽 재질의, 스툴도 딸린 깔끔한 디자인의 회색 소파였다.






참치가 좋아하는 것은 패브릭 재질이니, 가죽 재질은 스크래처로 쓰지 않을지도 몰라 하고 생각했던 것은 역시 오산. 방심하고 있던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참치의 발톱은 야금야금 소파를 좀먹고 있었다.

처음엔 분명 괜찮았다. 우리도 혹여나 고양이들이 소파를 뜯지 않을까 계속 주시하고 있기도 했고, 고양이들도 이전 소파에 비해 소파를 스크래처로 쓰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물꼬를 트기 시작하니,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어졌다. 우리도 처음엔 조금이나마 뜯어말리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소파가 노오란 속살을 게워내기 시작하며 집의 미관을 방해한다는 느낌의 형태가 되었을 즈음엔 그냥 포기해 버렸다. 나중엔 발톱에 긁히든 말든 그 위에서 장난감으로 고양이 회전 점프 놀이도 했으니, 말 다 했지. 이쯤 되면 가구가 아니라 소모품이라고 지칭해야 걸맞는 사용법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런 과정을 거쳐 너덜너덜해진 두 번째 소파를 결국 내다 버렸다.


앞으로 우리 집에 소파는 없을 것이라고, 남편과 나는 잠재적 결론을 내렸다. 어릴 때부터 소파가 없는 집에서 쭉 살아왔고 독립한 이후부터 결혼 전까지도 원룸에서만 살았기에, 소파에 어렴풋한 로망이 있었던 것 같지마는 이제는 다 옛날 일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일이라면, 작별한 우리의 소파들이 고가의 소파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많은 소파가 100만 원 이상을 가볍게 호가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20만 원도 안되었던 우리의 소파는 작은 몸값으로 훌륭한 일을 해내고 떠나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에게 두 번째 소파를 추천해 주었던 친구도 “싼 걸 사서 진짜 다행이었다”라며 그의 고양이가 흔적을 남긴 자신의 소파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다른 친구는 비싼 소파를 산 케이스인데, 늘 소파에 큰 천을 덮어놓고 생활한다. 그 친구의 집에 굉장히 자주 놀러 갔지만, 그 소파가 천 밖으로 드러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생활에는 이토록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오는 일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는 우리의 고양이들과 함께 소파에서 행복하고 유용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에 위안을 갖는다. 비록 엉망진창인 형태이긴 했어도, 안락과 행복의 상징인 소파를 제 역할에 걸맞게 나름대로는 오래 이용하기도 했고(인간뿐만이 아니라, 고양이들도 소파에 앉아있는 것을 참 좋아했다), 고양이들의 과격한 놀이터로 이용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고양이들의 스크래처라는 용도로도, 아주 알차게 골수까지 쪽쪽 빼먹듯 사용했던 것이다. 차라리 소파를 내가 가끔 앉을 수 있는 캣타워로 생각하는 것이 맘 편할 것이라는 글을 인터넷에서 보고 폭소가 터진 적이 있는데, 정말이지 딱 그 말대로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다시 소파를 구입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지만.


최근 작은 아파트 한 채를 매매했다. 신혼부부가 거주했던, 깨끗하게 ‘샷시까지 올 수리’된 집이다. 새로운 집에 새로 들여놓을 가구들을 인터넷으로 미리 구경하다가, 마음에 쏙 드는 소파를 발견했다. 그야말로 군더더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깔끔한 디자인에, 가격도 아주 착하다. 새집에 이 소파가 있으면 얼마나 예쁠까 상상해본다.


하지만 우리 집엔 고양이가 산다. 

소파가 보통의 수명보다 이르게 맞이할 말로를 생각했다.

나는 깔끔하게(사실은 눈물을 머금고) 마음을 접었다.







고양이 참치와 살구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at_chamchi_sal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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