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몬순 Aug 27. 2020

고양이와 우리 집의 물건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갑자기 내 삶에 끼어든 고양이는 우리 집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5년 전, 결혼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던 시기였다. 우리 부부는 결혼 전 이미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고, 우리 둘만 신경 쓰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반려동물을 들이는 일은 신중히 판단하고 결정해야 마땅했다.

당시의 난 스스로를 꽤나 현명한 인간이라고 착각하던 경향이 있었으므로, 내가 이 건에 대해 오래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한 뒤 아주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고주망태의 모습. 이 시점에서 분명히, '신중한 나'에 취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일이 너무 바쁘고 고되어 매일 노동주를 마시느라 몸과 마음이 흥청망청 망가져 가던 중이었다. 일과 술 외의 다른 일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 두뇌 속 회의실에서 고양이 입양에 대한 안건은 수많은 다른 안건들에 밀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당시 내 뇌내 현황. 구석에서 조그맣게 울고 있는 아기 고양이 안건.




신경도 쓰지 않고 방치해 두었던 일이란, 높으신 분이 갑자기 등장해서 “박 실장, 그 일은 잘되고 있어?”라는 식으로 한 마디 건네기라도 하면 “어이쿠”하면서 그때서야 허둥지둥 급하게 수습하느라 엉망진창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회사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걸 보고 쯧쯧 하고 혀를 차 본 경험,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물론 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내가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지) 나는 남편의 기습 질문에 얼떨떨하게 “어, 어어, 그럼 데려올까?”하고 대답했다.


이것이 상황에 쫓겨 대충 생각하고 쉽게 결정하고 말았던 나의 고양이 입양 건이었다.

남편은 고양이를 대학 때 동아리방에서 키운 경험이 있다고 했고, 고양이를 좋아했다. 그래서 고양이를 키우지 않겠냐는 제안에 아마도 마음이 쉽게 기울었을 것이다. 반면 나는 고양이를 키운 적도 없고, 굳이 따지자면 고양이 보다는 개 파였다. 언젠가 반려동물을 키운다면 아마 개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을 정도다. 고양이는 내 인생에 기록될 예정이 없던 존재였다.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생각해 볼 기회도 놓쳤으니, 고양이를 키우겠냐는 질문에 어물댈 수밖에.


나는 그렇게 얼떨결에 고양이, 참치와 만났다.



하얗고 작은 털뭉치… 아니, 사고뭉치



그리고 신중하지 못했던 것의 대가는 고양이를 입양한 순간부터 찾아왔다. 고양이와의 만남도 그랬지만, 고양이라는 존재 자체가 예측불허의 생물이었다. 특히 아기 고양이의 행동은 상상을 초월할 때가 많았다.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고를 쳐놓기도 하고, 제 흥분에 겨워 주변을 보지 않고 폭주하곤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기물파손이 발생했고, 인간들은 자잘한 상처를 입었다. 참치가 우리 집에 온 직후에는 녀석이 저지른 일들의 뒷수습과 고양이 사고 방지에 대한 대비를 하느라 직장에 늦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겨우 적응했을까 싶었던 참치와의 동거 3개월 째, 우리는 둘째 고양이 살구를 만나게 된다.

오랜 고민 끝에 결정했던 둘째 입양이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가 있었다. 살구의 성격과 취향이 참치와 너무나도 정반대였던 것이다. 우리는 한 번 더 참치 때와는 다른 스타일로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새 고양이에게 적응해야만 했다. 고양이를 쉽게 생각했던 이가 응당 받을만한 응보였다.




그렇게 우리의 생활은 고양이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바뀌었다.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것은 집 안에 들여놓은 물건들이었다. 나는 고양이로 인해 많은 물건을 버리거나 물건의 사용을 포기했다. 우리 집의 많은 물건들의 형태와 배치가 달라졌다. 나는 본래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미니멀리스트에 조금 가까워졌다.(아직 물건은 많지만, 채우기보다는 비우기에 집중하고 있으니까 미니멀리스트라고 우겨본다)


어쩌다 보니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을 선택했고 덕분에 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야 했지만, 고양이와 함께 살기로 한 것을 한 점 후회하지 않는다. 이제는 고양이가 없는 나의 삶을 상상할 수 없다.


다만 고양이로 인해 버려지고 포기한 물건들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늘 남았다. 사실 애착이 있던 물건들도 많긴 했지만, 포기하기 쉬웠던 물건도 있다 (기회만 엿보다가 이때다 싶어서 처분해버린 것도 꽤 많다).


그렇지만 어떤 물건이든 고양이와 물건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면 그 사물에 대한 기억은 사랑스럽고 귀여운 추억으로 변모한다. 이야기가 아로새겨진 물건들은 하나하나가 고양이와 살아왔던 시간을 의미한다. 이 책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나와, 그리고 고양이와 함께했던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고양이에 대해 1도 모르던 내가, 많은 랜선 집사님들과 서적의 도움을 받아 그럭저럭 숙련된 집사가 될 수 있었다. 이 시리즈도 고양이를 가족으로 맞이하려는 누군가에게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리고 지금도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에게 소소한 공감을 형성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을 담아 작성해 나갔다.






고양이 참치와 살구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at_chamchi_salgu/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