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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고 Feb 03. 2022

한국에서 온 작은 멜로디

외국에 살다 보면 한국에서 가족, 친구들이  놀러 오는 일이 많다. 캐나다에서 적응을 하고 나니 방학  사촌언니와 오빠가 한국에서 놀러 왔다. 당시 중학생이던 사촌언니와 함께 한국에서 딸려온 수많은 물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유승준의 카세트테이프. 언니는 유승준의 열정적인 팬이었고 유승준이 얼마나 멋있고 멋진 가수인지에 대해 나에게 밤새도록 누워 이야기해주곤 했다. 한국 꺼는 일절 접하지 못했던 나는 금기를 깨트리는 아슬아슬함은 짜릿했다. 그렇게 나는 엄마 몰래  호기심을 머릿속에 채워나갔다.


카세트테이프에 흘러나오는 한국말의 음악은 너무 멋지고 힙해서 상상 속에서 유승준이 멋지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의 역동성은 백스트리트 보이즈보다 훨씬 더 뛰어날 거라 의심치 않았다. 사실 백스트리트 보이즈는 멋있기는 하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어떤 다른 행성 속 존재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 학교에 있는 작은 울타리 속 나처럼 말이다. 그렇게 사촌언니를 통해서 얻은 한국으로의 창문은 신비로웠다. 유승준은 내 친구들한테는 공유하지 않는 나만의 비밀 보물상자 같았다. 하지만 나의 이 작고 멋진 창구가 내 친구들의 취향과는 다르다는 것을 육감적으로 알았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만은 저 10시간 넘어 있는 다른 9살들과 연대하고 있었다.


2022년이 된 지금 미국에 사는 내 조카와 그 친구들은 모두 BTS의 팬이다. 내가 스파이스 걸스가 실린 잡지를 사고 동경했던 것처럼 머나먼 나라의 아이들이 멤버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외우고 그 청년들의 멋진 머리를 따라 하고 싶어 하며 눈빛 하나, 손짓 하나를 지켜보며 노래를 열정적으로 따라 부른다. 한국에 있는 내 아이가 좋아하는 BTS의 ‘Fire’,’butter’이란 노래는 내 나라의 문화이기도 하지만 세계의 인기곡이기도 하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언제 생각, 아니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한국에 있는 내 아들의 이 즐거운 감정이 지구에 살고 있는 다소 다른 문화의 수많은 어린이들과 공유가 된다는 생각은 사소 생소하다.


여러 문화의 강세에도 불구하고 국뽕이네 자뻑이네 하며 스스로를 더 의심하는 것이 우리들이다. 내 문화가 주류 인적도 감히 일본을 뛰어넘을 리 없다 하는 생각하는 스스로의 검열을 통해 부풀어 오르는 설렘과 기쁨의 감정을 자제시킨다. 미국의 선진문화와 일본의 선진기술을 쫓아가야만 한다고 느낀 우리다. 우리의 것은 어딘가 어설프고 모자라다고만 생각해온 우리에게는 소화가 잘 되지 않는 현상처럼 느껴지고 뼛속까지 스스로의 부족함을 되새기던 우리로서 조카와 그 친구들의 반응이 부자연스럽고 어딘가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아무런 편견이 없는 아들은 ‘내 문화’가 남에게도 매력적일 수 있다는 이 ‘자연스러움’은 지니고 성장할 것이고 그것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이다. 내가 가질 수 없기에 부러울 뿐이다. 어려서부터 이 작지만 확실한 세계적인 연대감이 그리고 이 자신감이 아이가 자라서 다양한 사람과 교류할 때 서로를 편안하게 연결시켜주는 확실한 끈 중 하나가 될 것 같아 다행스럽다.


돌이켜보면 캐나다의 한 한국인 소녀에게 고향에 대한 연대감을 심어주었던 한 재미교포 가수가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의 이후 행적들이 실망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꼬마 이방인의 삶에 비행기를 타고 빽빽한 가방 속에 실려온 이 작은 멜로디는 확실한 소속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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