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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자까 Jun 14. 2023

호주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삶이란?

투잡의 시작



"누나, 나 일하는 카페에서 일해 볼래?"



어느날 필렉스가 제안했다. 캐나다 시민권자인 필렉스는 멜버른 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었고  플린더스역 안에 있는 Coffee HQ라는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마침 호텔 아르바이트 만으로는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충당하기는 어려워 보였는데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투잡을 할 때가 온 것이다.


매니저와의 면접이 있던 날 카페 앞 벤치에서 캐쥬얼하게 면접이 진행 되었다. 그 동안 갈고 닦은 영어 실력을 마음껏 뽐내며 면접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나는 Coffee HQ의 바리스타가 되었다. 금토일 오후 5시부터 새벽 3시 마감 까지 하는 쉬프트가 주어졌다.


HQ에서의 첫 날. 모든 일이 즐거웠다.

역 안에 있다보니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손님으로 왔다. 그중에 재미있었던 점은 나라마다 특유의 엑센트가 달라서 같은 영어 표현인데도 전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먼저 호주인들은 특히 A와 T발음이 쎘는데 영국식 발음이었다.

"캔아이 헤브어 라아테. 플리즈"


미국 사람들은

"캔아이 헤브라레~ 플리즈~"

조금 더 부드러운 느낌이다. 


이를테면 호주인 들은 "워터." "버터." "라테." 딱딱 끊어서 말을 하고,

미국 사람들은 "워러~" "버러~" "라레~" 이런식으로 흘려서 말을 했다.


인도인들은 발음이 너무 쎄서 알아 듣기 어려웠고, 중국인들은 그냥 중국말로 커피를 주문했다.


한국사람들은 딱 교과서에 나오는대로 주문을 했다.

"캔 아이 헤브어 컵.오.브. 커피(f보다는 p발음이다) 플리즈~"

누가 봐도 한국인이이다. 그러면 나는

"한국분이세요?"

한국인 커밍아웃을 하고 나면 손님은 살며시 웃음을 짓고 그때 부터 편하게 주문을 한다.


HQ는 플린더스 역 안이 있는 테이크아웃 카페이다.

역 안에는 다양한 스낵들을 파는 곳과 편의점이 있고 테이블과 의자는 테이크아웃 음식점이 밀집된 곳 앞에 모여 있다. 미국에서는 Take out이라 표현하지만 보통 호주에서는 Take away라는 표현을 가져가는 주문에서 많이들 쓴다.


출처: Flinders Street | Railway Station, Melbourne, Australia 구글 이미지
출처: Coffee HQ at Flinders station 구글 이미지
출처:  Coffee HQ at Flinders station 구글 이미지


기차역 안에 있다보니 장사가 꽤 잘 되었다. 냉장고에 우유를 가득 채워도 오후가 되면 똑 떨어졌다. 창고는 플린더스 역 플랫폼안 구석진 곳에 있었는데 주변은 어둡고, 주황색 불빛만 근근히 비추는 그런 을씨년 스러운 곳이었다. 당장 좀비나 부랑자가 튀어나와도 이상할 곳이 없는 그런 으쓱한 장소였다. 


우유 상자를 가질러 갈땐 무조건 2인 1조로 다녔다. 하루에 한 번은 4~5박스를 트롤리에 싣고  다시 카페로 돌아와야 했다. 그럴때 마다 좀비가 튀어 나오지는 않는지 주변을 열심히 탐색해야만 했다. 

카페에 일하면서 제일 심장이 쫄깃해지는 순간이었다.


출처:  Coffee HQ at Flinders station 구글 이미지

함께 일하는 사람들 3명에서 4명이었다. 

주문을 받고 샌드위치와 머핀을 준비하는 사람 1명, 동전 거스럼돈을 자주 챙겨야 하기에 숫자에 밝고 임기응변에 강해야 한다. 에스프레소를 주구장창 뽑는 사람 1명, 밀려드는 손님이 오는 시간이면 손이 빨라야 하고 함께 커피 스티밍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커피를 만들어서 손님에게 전달하는 사람 1명, 커피의 퀄리티는 기본이고 라떼 아트, 그리고 더럽게 날려쓴 악필의 이름들을 다 읽을 수 있어야 하는 극한의 포지션 이다. 

마지막 1명이 더 붙는데 더 많이 바쁜 포지션을 도와주는 시스템이었다. 한 마디로 모든 일을 할 줄 아는 만능 키맨 이어야 한다.


언젠가 아침 출근시간에 한번 일을 한적이 있었는데 완전 전쟁이었다. 

커피를 주문하는 사람들은 줄을 길게 서 있고, 3평 남짓 좁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은 5명이었다. 진짜 2시간 넘게 주구장창 에스프레고만 뽑은 날도 있었다. 하필 화이트컬러 컴버스를 신고간 탓에 근할때쯤엔 회색 신발이 되어 있었다. 커피를 주문 받을땐 이름을 꼭 컵에 적어야 했는데 스펠링이 처엔 어찌나 어렵던지. 지난번 스타벅스에서 내 커피가 나올때 이름을 이상하게 불러준 걸 그제서야 찐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호주는 커피의 나라답게 다양하게 커스텀 주문을 받는다. 우유도 일반 우유, 스키니 우유(저지방), 두유 이렇게 3가지가 카페마다 꼭 있다. 설탕도 직접 넣어주는 시스템이라 주문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특히 이런 사람을 만나면 두 세번 "Sorry?"를 해야 했다.


"라떼 한잔 주세요. 우유는 3분의 2만 넣어 주시고, 스키니 밀크에 설탕은 2스푼 반만 넣어 주세요."


정신이 혼미해 진다. 처음 이 말을 영어로 들었을땐 외계어로 들렸다. 빡센 HQ 바리스타 생활에 익숙해 질때쯤 이런 복잡한 커스텀 주문은 껌이 되었다. 하지만 영어 이름은 여전히 어려웠다.


문화가 다르다고 생각한 부분은 쉬는 시간에 티가 났다. 3평 남짓한 테이크아웃 카페안에서 대부분 휴식을 취했다. 프론트엔 커피 머신과 픽업 하는 곳, 샌드위치와 머핀이 들어있는 케이스가 있다. 카페 뒤쪽엔 전자랜지와 도마 그리고 믹서기와 싱크대가 있다. 커다란 냉장고 2개 앞 플라스틱 우유 상자를 뒤집어 의자를 만들어 쉬곤 했다.


한국 사람인 필렉스와 일을 할땐 쉬는 시간이어도 바쁘면 잠깐씩 주문을 봐준다거나 서로 도와 준다. 하지만 다른 서양권 사람들은 달랐다. 쉬는 시간은 딱 쉬는 시간. 손님들이 주문하려 줄을 서 있어도, 자신의 휴게 시간 30분을 무슨일이 있어도 칼 같이 지켰다. 조금 정이 없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문화가 다른걸 어쩌겠는가.


역 안에 있는 카페이다 보니 밤이 되면 취객이 많았다. 보드카는 파냐, 신문은 파냐, 어디 어디 가야하는데 기차 플랫폼은 어디이냐, 멜버른 시티 어디로 갈려면 트램은 뭘 타야 하냐, 핸드폰 번호는 뭐냐,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 북한에서 왔냐? 등등 수많은 질문 폭탄들을 처리해야만 했다.


폭탄들을 처리하고 새벽 3시면 문을 닫았는데, 셔터가 잘 내려가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다. 사실 새벽 3시에 문을 닫지만 필렉스와 난 매니저 몰래 2시에 종종 닫기도 했다. 어차피 밤 12시 넘으면 취객 말고는 손님이 없었다. 그럼 우린 꾸벅 꾸벅 졸면서 앉아 있기도 했고, 추우면 좀 따뜻한 티를 마시며 몸을 움직이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대화를 하기도 했다. 처음엔 손님이 없을때 영어 공부를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피곤하기도하고, 뇌도 작동하지 않아 그냥 멍때리기 일쑤 였다.


"누나, 우리 그냥 문 닫고 갈까? 쉬프트는 3시까지 적고"

"그럴까? 어차피 손님도 없고, 춥고 졸린데 갈까?"


이 날 이후 종종 우린 1시간 일찍 문을 닫고 퇴근 했다. 나중엔 양심이 찔려서 얼마 가진 못했지만.


HQ는 정말 다양한 인종이 함께 일을 했다. 오픈을 아침 6시에 하고 마감은 새벽 3시. 연중무휴. 기차역 안에 있다보니 일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쉬프트는 새벽, 아침, 오전&오후, 오후&밤, 밤&마감 다양하게 있었다. 호주인, 인도인, 한국인, 말레이시안, 중국인, 네덜란드인, 흑인 정말 다양한 인종이 함께 손발을 맞춰 일을 했다.


금요일엔 모나쉬 대학교 학생인 흑인 여자애와 함께 일을 했는데, 매번 나를 무시했다. 일부러 못 알아 듣는척을 하며 "뭐라고? 못 알아 들었어. 다시 말해 줄래?"를 몇번이나 반복했다. 처음엔 나도 영어가 익숙치 않아 그냥 참고 넘어 갔다. 얼마전에 흑인 택기기사와의 사건도 있고 그래서 흑인은 사실 조금 무서웠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이 못된 계집애에게 한국인의 매운맛을 보여줘야 할때가 온 것이다.






"쟤야 쟤. 쟤가 계래. 한국에서 온 미친X."


역시 호구보다는 ㅆㄴ이 편한 세상인건가?

그 날 이후 나는 HQ 안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다.





다음 스토리는

<호구보다는 미친X이 되겠습니다.> 가 발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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