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공기가 뺨을 스치는 새벽 5시. 어둡고 적막한 택시 안은 긴장감이 감돈다. 운전석 룸밀러로 나를 바라보는 저 눈은 필시 맑은 광인의 눈빛이었다.
아. 2%의 또라이 택시 기사를 만났다.
짧은 영어로 대들어 볼 것이냐, 가만히 당하고 있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도와줘요 태스형...
누구나 한 번쯤은 택시를 탔는데 빙빙 돌아가는 눈탱이를 겪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잘 모르는 지역을 갔거나, 특히 여행지에서 심심찮게 눈탱이를 겪게 된다.
멜버른에 살면서 처음엔 길은 낯설고 영어는 무서워서 많은 눈탱이를 당해야 했다. 호텔 알바를 가는 날은 트램도 다니지 않는 새벽 시간이라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차도 없던 나에겐 달리 옵션도 없었다.
살고 있는 동네에서 호텔까지의 길은 심플했다. 거의 일직선 거리로 어딜 둘러가거나 하고 말 것도 없는 그런 길이었다. 하지만 어딜 가나 손님 등 처먹으려는 기사들은 있기 마련이었다. 동양인의 작은 여자 승객에게 친절하고 정직한 택시 기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영어 공포에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끙끙거리며 온전히 당할 뿐이었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니 나만의 택시 타는 나름의 노하우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멜버른의 택시 기사들은 대부분 머리에 터번을 쓴 인도인이 많았다. 낮은 비율로 호주인과 흑인도 있었지만 10명 중에 9.5명은 인도 택시 기사였다. 멜버른 택시에서 눈탱이 당하지 않는 나만의 비법은 이랬다.
함께 호텔에서 일하는 동료 중 인도에서 온 칸에게 힌디어 인사 말를 배웠다. '안녕하세요(살람)'와 '감사합니다(슈크리아)' 딸랑 두 마디 배웠지만 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백이면 백 인도인 택시 기사는 활짝 웃으며 반갑게 힌디어를 아냐고 묻고, 함께 일하는 동료가 인도인인데 친하다, 조금 배웠다,라고 말을 한다. 그럼 택시 기사는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호텔로 간다. 심지어 택시비 1불 정도는 깎아 주기도 한다.
언어란 참 신기했다. 나 또한 호텔에서 일할 때 손님이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해 주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나는 이 점을 착안해서 힌디어 인사말을 배워둔 것이다. 자신의 모국어를 하는 사람에게 사기를 치는 그런 인간 말종은 드물었다. 그것도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나라에서.
또 다른 방법은 택시를 타자마자 도착지와 경로를 미리 말을 하는 것이다.
집 근처에서 호텔까지는 거의 일직선 거리였다.
"세인트 킬다 로드에 있는 로이스 호텔이요. 이 길로 쭉 가신 후 스완스톤 스트릿 쪽으로 해서 플린더스 역 앞쪽으로 가주세요."
이렇게 말을 하면 택시 기사 80%는 그 길로 간다. 나머지 18%는 본인이 아는 길이 있다며 다른 길로 나를 유도한다. 흥. 어림 반푼어치도 없지. 그럴 땐 멜버른에 오래 산 것 같은 티를 낸다.
"제가 저 호텔에서 일한 지 3년이 넘었거든요. 이 시간엔 이 길로 가는 게 제일 빨라요."
그럼 택시 기사는 더 이상 구시렁거리지 않는다. 본인도 알기 때문이다. 이 길이 제일 빠르고, 달리 돌아갈 필요도 없는 길이란 걸.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은 해외라고 해서 별반 다를 건 없었다. 2%의 또라이는 어딜 가나 있었다.
다시 적막한 긴장감이 감도는 택시 안.
맑은 광인의 눈빛은 유리구슬처럼 어둠 속에서 반짝거렸다. 가뜩이나 어두워서 표정도 잘 안 보이는데 흰자가 더욱 새하얗게 보여 순간 섬짓함이 느껴졌다. 이럴 땐 어떡해야 할까? 요즘같이 흉흉한 세상에서는 차라리 택시비 조금 눈탱이 당하는 것이 더 안전한 선택이겠지만 나는 한번 내 주장을 굳건히 말 하기러 결심했다. 언어는 소통만 되면 그만, 기세가 더 중요한 법이다.
"기사님 말씀하신 길 말고 제가 말한 쪽으로 가 주세요. 지금 늦었거든요"
"늦었으니깐 내가 아는 길로 가는 게 빠르다고"
"지금 가는 호텔에서 일한 지 3년이 넘었어요. 매번 이 시간에 택시를 탔고요. 그냥 제가 말한 길로 가 주세요"
"이봐. 아가씨. 나는 택시 한지 10년도 넘었어. 그냥 내 말 들어"
호텔로 가는 길은 거의 일직선인데 돌아가는 건 말도 안 되었다. 순간 납치 되는 건 아닌지 무섭기도 했고, 이 사람이 갈려는 곳으로는 절대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순간 흑인 택시 기사는 룸밀러로 나를 흘깃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뿨킹 에이시안"
순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온 걸까?
"뭐라고 했어요?"
"왓더뽝.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갈 거니깐, 싫으면 내려"
"네? 여기서요? 여기서 내리면 택시 어떻게 잡으라고요?"
"내가 알바 아니지. 내려"
"차 세워요"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다 택시는 인적이 드문 도로변에 멈추었다. 순간 가슴이 미친 듯이 콩닥거렸다. 택시에서 내려서 총을 쏘면 어떡하지? 칼로 찌르거나, 주먹으로 때리면? 너무도 공포스러웠다. 택시 기사는 창문을 열고 온갖 욕을 에미넴처럼 랩 하듯이 나에게 퍼부었다.
한 손엔 000을 미리 찍어 두고 뒤걸음질 치며 나는 소심하게 한국 욕으로 응답했다. "시..ㅅㅂ럼아..!" 택시 기사는 "뻐킹 차이니즈"를 외치며 가운데 손가락을 보여주곤 부아앙 하고 떠났다.
흥, 난 한국 사람이다. 요놈아. 혹시 몰라 택시 번호판을 사진 찍어 두었다. 심장은 요동치고 손발은 부들부들 떨렸다.
날씨는 안개가 껴 있어서 더욱 을씨년스러운 새벽이었다. 귀신이든 좀비든 어디서든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길거리였다. 혹시라도 돌아와서 해코지를 할까 봐 5분 동안 000을 눌러 놓은 채 바로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호주에서 긴급 상황일 땐 000을 누른다 (살인, 강도, 성폭행 등 즉각적인 출동이 필요한 경우)
그렇게 공포의 5분이 흘렀고, 마침내 저 멀리 노란색 택시 한 대가 다가왔다. 다행히 인도인 택시 기사이다. 힌디어로 아침 인사를 하며 호텔로 향했다.
미친놈은 맞설 것이 아니라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운이 좋아 욕만 먹었지 하마터면 헤롤드 선 신문 1면에 실린뻔했다. 이 날 이후 새벽에 택시를 타는 날이면 혹여나 그때 그 흑인 택시 기사를 만날까 두려워 한동안 변장을 하고 택시 넘버를 꼭 확인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