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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자까 Jul 10. 2023

브라이언과 만두

나의 최애 소울 푸드 ooo



오늘은 또 뭘 먹어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나의 호주 유학 시절은.


그래서 매주 일요일은 장을 본다음 일주일치 음식을 미리 만들어 두었다. 김치찌개, 미역국, 어묵볶음, 짜장, 카레를 잔뜩 만들어서 냉장고와 냉동실에 소분해 두었다. 밥도 미리 해서 얼려두고 밥때가 되면 데워서 대충 빨리 먹고 아르바이트를 갔다. 요리하는 시간과 치우는 시간이 절약되는 아주 훌륭한 시스템이었다.


그러다 매일 비슷비슷하게 먹는 것이 지겨울 때쯤엔 아껴둔 고향만두를 냉동실에서 꺼낸다. 새하얀 밥 위에 찐 고향만두 5개와 파,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살짝 넣고 간장과 참기름 조금이면 훌륭한 한 끼가 해결되었다.


멜버른에 있는 동안 고향 만두는 나의 소울 푸드였다. 만두밥 레시피를 알려준 백종원 선생님께 브런치를 빌어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유학 시절 최애 소울 푸드였던 만두밥, 고춧가루와 마늘 장아찌를 토핑으로 올려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나의 최애 만두는 한인 마트에서 한 봉지씩 구매하는 냉동 고향만두였는데 한국 마트처럼 원 플러스 원이 없는 게 참 아쉬웠지만 만두 한 봉지면 2주 동안은 별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 나의 만두 소비는 머스트해브(Must have) 아이템과도 같았다. 남들은 머스트해브 아이템으로 가방과 신발을 살 때 나는 한인마트 쇼핑 리스트로 꼭 만두를 구매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어김없이 호텔 레스트로랑으로 출근을 했다. 9시면 지배인이 출근을 하는데 오늘따라 주방에서 익숙한 냄새가 났다. 필시 이건 만두 냄새 였다. 앞치마를 두른 브라이언이 보였다.


브라이언은 50대 후반의 호주 할아버지로 푸근한 핀란드 산타 할아버지 같은 인상을 가졌다. 남산만 한 배와 금발의 헤어스타일이 매력 포인트인 그는 나를 로이스 호텔에서 일할 수 있게 해 준 호텔 지배인이다.

면접도 브라이언과 보았고, 매일 아침 나에게 프린세스라 인사해 주었다.  나의 장점들을 호텔 사람들에게 수다로 퍼뜨려 결국 컨퍼런스 알바까지 추가로 하게 되었으니 브라이언은 나에게 있어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런 브라이언의 취미는 주말에 덤플링(만두)을 만드는 것이었다. 일찍이 한번 돌싱이 되었다가 지금은 아시안 여성과 교제를 하고 있다고 그는 말해주었다.  그래서 매주 만두를 만들어 오는 것일까?


나는 브라이언이 만들어 오는 만두타임을 즐겼다. 브라이언의 만두에서는 생강과 마늘 맛이 강하게 났지만 속이 꽉 차고 잘게 다져진, 육즙이 팡팡한 고기와 초록색 부츠의 조합은 언제나 옳았다.


가끔 너무 많이 만들었다며 일회용 플라스틱 통에 따로 담아 나눠주기도 했었는데, 그럼 그날 저녁엔 떡국떡을 넣어 만굿국을 바글바글 끓여 먹곤 했었다. 나의 식비까지 줄여주는 브라이언의 만두는 단순히 음식 이상이었다. 달걀을 풀은 뜨끈한 만둣국을 한입 먹고 있노라면 긴 아르바이트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듯했다.


당시 로이스호텔에서 한국인 킴과 그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었던 터라 유일하게 숨통이 틔이는 시간이기도 했다. 차가운 시선에 베이고 날카로운 언어에 수없이 마음을 다치던 그때 브라이언이 싸 온 만두를 먹는 시간은 나에겐 힐링타임과도 같았다.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만두를 먹으며 브라이언과 이런저런 스몰토크를 나누었다. 브라이언의 썰렁한 농담조차 그땐 그렇게 재미가 있었다. 어쩌면 나는 저때부터 아재개그를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킴과 그들은 브라이언 앞에서는 만두가 맛있다고, 너무 좋다고 온갖 아양을 떨어놓고는 브라이언이 주방을 떠나면 불평을 해 대기 시작했다.


"아.. 또 덤플링이야? 아니 매주 덤플링은 왜 만들어 오는 거야? 오늘은 마늘이 너무 많이 들어간 거 아니야? 아.. 씨... 이걸 또 언제 다 먹어. 말리나 너 하나 더 먹을래?"

"싫어. 나도 겨우 먹고 있단 말이야. 너무 자주 먹으니깐 지겹다. 지겨워"


그리곤 브라이언이 추가로 만두를 포장한 일회용 용기들을 꺼내면, 서로 더 갖겠다고 난리를 쳤다.


"브라이언, 너무 맛있어요~ 저 한통 더 주세요."

"아니야~ 내가 더 가져갈래. 저 주세요"


연말 연기 대상 감이었다.

1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만두가 먹기 싫네, 어쩌네 불평을 해 대더니 브라이언 앞에서는 손바닥 뒤집듯 저런 말과 행동을 하다니 참 지랄도 풍년이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나의 소울푸드는 고향만두였다.

언제나 우리 집 냉동실에 자리 잡던 대기업 냉동 만두는 오래도록 나의 머스트해브 아이템이 되었다.

비비고를 만나기 전 까지는.


때때로 만두를 먹을 때면 브라이언이 떠 오른다. 지금도 여전히 로이스호텔에서 근무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멜버른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꼭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다.

그때 당신이 만들어주던 만두는, 만두 그 이상이었다고.


너무도 따뜻했다고.

당신의 사소했던 친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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