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진 내 눈 흰자를 들켰나? 싶었다. 시급 20불짜리 저택 하우스키핑 아르바이트 자리는 물거품이 되었다.
경기장 새벽 청소와 세이프웨이 청소하는 시간을 더 늘렸다. 새벽 청소는 정말이지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일단 먹고살려면 해야만 했다. 나름 새벽에 일어나는 장점은 있었다. 뭔가 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는 에너지가 좋았고, 어쩌다 경기장 바닥에서 줍는 지폐는 꽤 쏠쏠했으니깐.
카페와 레스토랑에만 넣던 이력서를 닥치는대로 아무 곳에나 전부 돌렸다. 100 군대 가 넘는 곳에 지원을 했고 연락이 오는 곳은 가리지 않고 면접을 보았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계속되는 취업 실패
뭐가 문제 일까?
나의 영어 실력이 문제일까?
아시안이라 그런 걸까?
계속되는 취업 실패에 자존감도 많이 떨어지고,
그 문제를 내 안에서 찾으려고만 했다.
자기 연민에 빠질 것 같았고,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다. 시무룩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려 무작정 멜버른 시티를 걸어 다녔다. 마음의 환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길치인 나는 구글 맵을 보고도 늘 헤매곤 했다.
어딜 가나 지도를 보며 걸었고 늘 가던 길로만 다녔다. 이날은 그냥 마음 가는 데로 무작정 걸어 보았다.
3시간 넘게 걸었던 터라 다리도 아팠고 좀 앉아서 쉬고 싶었다. 그러다 저 멀리 교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름은 기억안나지만 멋있었던 교회
크리스천이 아니었기에 나에게 교회는 참으로 낯선 곳이었다. 쭈뼛쭈뼛 안으로 들어갔다. 교회 중간쯤 기다란 나무 의자에 앉았다. 고요한 오후 3시의 교회 안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다.
'하느님 정말 존재하시나요? 신이 있다면, 저에게 제발 일자리를 주세요'
하느님이 들었다면 참으로 황당한 기도였을 것이다. 평생 교회에 오지도 않던 웬 나이롱 신자가 와서 일자리를 내놓으라니..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기도였다.
머쓱해진 나는 교회 안을 조용히 둘러보고는 터벅터벅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며칠이 지나고 한 호텔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세인트 킬다 로드 쪽인데 플린더스 역에서 멀지 않은 거리였다. 다음날 떨리는 마음에 호텔에 도착했다.
Royce Hotel375-385 St Kilda Rd, Melbourne VIC 3004, Australia (구글 이미지)
Royce Hotel (구글 이미지)
외관은 클래식한 벽돌 모양의 호텔이었는데 내부는 정갈하고 깔끔했다. 호텔로비 안쪽 폭신한 소파에서 면접을 보았는데 풍채 좋은 핀란드 산타할아버지 같은 분이 나왔다. 자신을 호텔 지배인이라고 소개했는데 이름은 브라이언이었다.
“저희 호텔에 지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전부터 호텔리어가 되는 꿈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호텔을 보자마자 여느 호텔과는 다른 클래식한 기품이 느껴졌어요. 이곳에서 일한다면 정말 행복하게 손님들을 응대하며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이번에 나의 재능을 하나 발견했다.
임기응변에 강하고 거짓말을 잘한다는 것을.
대화가 길어질수록 나의 짧은 영어 실력은 점점 바닥이 났다.매끄럽지 못하고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나 자신부터 너무 답답했다. 마치 재채기가 나올 듯 말 듯 나오지 않는 그런 답답한 느낌.
나는 꼭 여기 붙고 싶었다.
안 되겠다.
배수의 진을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써먹었던 화로구이 면접법을 썼다.
“제 영어 실력이 아직은 좀 부족한 거 알아요. 하지만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일도 빨리 배우는 편이고요. 일단 일주일만 저를 써 보세요.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르세요. 페이는 받지 않겠습니다.”
브라이언은 아빠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일단 합격되었다.
정말 죽으란 법은 없었다. 계속 시무룩하게 처져 있으면서 자기 연민에만 빠져있었다면 나는 아마 호텔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계속 시도하고, 수많은 면접에 탈락을 했지만 100번이 넘는 이력서를 지원하는 동안 근육이 붙은 것 같았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 근육이.
시급 19불
호텔 레스토랑 웨이터
아르바이트 시간은 5:30 AM~11AM
가짜 호텔리어는 진짜 호텔리어가 되었다.
에필로그
지금까지 브런치 북 <동생이 한국에 안 돌아온대요>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난생처음 외국 생활을 시작했던 호주 멜버른.
워킹홀리데이 1년 차 스토리를 저만의 경험들로 기록해 보았습니다.
다음 스토리부터는 영어를 잘 못하던 제가 호텔에서 겪었던 왕따, 복수 스토리, 특별한 인연, 특이한 사람들.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며 겪었던 박 터지는 에피소드. 영어와 정면 승부를 하며 자존감을 얻게 되는 계기 등을 팔딱팔딱한 활어회 같은 저만의 생생한 경험담으로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다음 스토리는 매거진
<호텔리어는 아니지만 호텔에서 일합니다>가 연재될 예정입니다.
구독과 좋아요, 덧글들은 새싹 작가인 저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