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까자까 Dec 06. 2022

솔잎이 먹기 싫은 송충이

새로운 경로로 안내합니다.


'두근 세근'

그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면 나는 유독 긴장했다.


항상 내가 제일 꼴찌 같이 느껴졌다.

아무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자격지심 그득그득했던 난 그들 사이에서 언제나 꼴찌였다.

최대한 꿀리지 않으려고 화장을 신경 써서 하고 최대한 옷을 갖춰 입었다. 만나면 사실 기가 좀 죽긴 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들은 호주 멜버른으로 유학 온 유학생, 이민 2세대들이었다.



나만 홀로 워킹 홀리데이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워홀과 유학생들은 친해지기가 어렵다고 한다. 워홀의 수명은 1년에서 최대 2년이고 유학생은 3년에서 졸업 때까지이니

두 비자의 조합은 영 친해지기 어려웠다.

유학생과 이민 2세대 또한 그랬다. 이곳에 뿌리를 내리러 온 이민자들은 몇 년만 지내다가 떠나버릴

바람 같은 사람들과는 친해지려 하지 않았다.

친해지고 마음을 주고 난 후의 이별은 언제나 힘든 법이니까.



시간이 흘러 멜버른에서 7년을 지내보니 나도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친구들을 한 명 두 명 떠나보내면서 펑펑 울기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워홀 1년 차도 안 되는

해외 살이 애송이인 내가 뭘 알겠냐 말이다.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나는 늘 겉돌았다.

일단 그들의 대화는 영어가 60% 한국어 40%였다.

'참나, 다 같은 한국 사람인데 굳이 영어로 대화를 할 건 또 뭐야?'

속으로 투덜거렸다.

내 기를 팍팍 죽이려고 일부러 저러나 싶기도 했다.

내 마음은 참으로 빈약했고 간장 종지만 했다.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많이 써온 그들로서는 영어가 더 편했겠지만 나는 도통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한국인들 사이에서 소외감이 느껴졌다.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대화에서 좀처럼 웃음 포인트를 나 혼자만 찾지 못했다. 마치 영화관에서 한글 자막 없이 외국 영화를 보는데 모두가 웃을 때 나 혼자만 영문을 모른 체 웃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남들 웃을 때 눈치껏 따라 웃어야 했다. "큭큭큭, 하하하하" 그러다 보니 자괴감도 들었고 못난 자격지심은 더 깊어졌다. 나는 생활에 쪄든 26살에 워홀 1년 차 였는데, 저들은 팔팔한 20대 초반에 유학생 또는 이민자에 영어까지 잘했다.


어떤 애는 멜버른 대학교에서 회계학 전공이었고,

어떤 애는 법학과 전공이었다.

또 어떤 애는 모나쉬 대학에서 약대를 전공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음대, 교육학 등 전공도 다양했다. 한국에서 부모님이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주는 친구도 있었고, 캐나다 시민권자 친구도 있었다. 호주 시민권자이거나 영주권자도 있었는데 그들의 아르바이트 목적은 오로지 엑스트라 용돈이었다. 나는 생계가 목적이었는데 게임이 안 되출발점이었다.



어느 날엔 사우스뱅크에 있는 크라운 카지오 안

파인 레스토랑인 '노부'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후덜덜한 메뉴판을 보곤 심장이 쪼그라들기도 했다. 1인당 한 끼 식사가 100불이 넘는 돈을 턱턱 내는 친구들을 볼 때면 참 많이 부럽기도,

시급 7불 받는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면 각자 하고 싶은 방향들이 있었다.

아직 20대 초반인데도 벌써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놀라웠다.

나는 20대 초반에 친구들과 한국에서 맨날 술만 퍼먹고 다녔는데, 지금은 멜버른에서 워홀러 친구들과 맨날 술만 퍼먹고 다니고 있었다.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게 울컥 올라왔다.


저 친구들과의 만남이 잦아질수록 나는 더 초라하게 느껴졌고 그때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저들처럼 멋지게 빛나고 싶다.'


솔잎만 먹고 자란 송충이의 세상이 지겨웠다.

더 맛있는 것이 세상에 많다는 걸 나는 알아버렸다.

내가 살아왔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맛보았고, 꿈꾸고 싶어졌다.

워홀러에 26살인 나는 저들처럼 대학생이 되고 싶어졌다. 그것도 호주 멜버른에 있는 대학교에.


"삐빅 삐빅 새로운 경로로 안내합니다"

목적을 잃고 방향을 잡지 못했던 내 마음에 새로운 경로가 보였다.


가난한 유학생의 진짜 가난한 유학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 에피소드는

12월 12일 월요일에 발행됩니다.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구독과 좋아요는 사랑입니다




이전 13화 맨날 술이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