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하나 달랑 들고 무작정 멜버른 시티를 돌아다녔다. 영어 울렁증을 극복하기 위한 본격 스파르타 스피킹 연습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워홀 신분으로 학생비자와 이민 2세대 친구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열등감을 열량 삼았고 워홀이었던 나는 새로운 목표라는 것이 생겼다.
"영어 솰라솰라 할 수 있게 되기"에서
"멜버른에 있는 대학교 입학하기"로!
앞으로의 계획은 심플했다. 워홀 연장 후 남은 1년 동안 최대한 학비를 모아 두고 영어 공부를 한 다음 대학교 입학하기!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돈과 영어 두 가지가 필요했다. 아르바이트는 한인잡에서 오지잡을 알아보기러 했고 영어는 랭귀지 스쿨을 다니면서 우선 기본기부터 다지기러했다.
멜버른 시티에서 저렴하게 배울 수 있는 영어 학원을 알아보았는데, 주 3회 무료로 영어를 가르쳐주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지저스의 가르침을 함께 배워야 하는 호주 교회였다. 딱히 종교는 없었지만 지금은 하느님, 부처님을 가릴 처지가 못되었다.
나는 이날부터 나일롱 신자가 되었다.
월, 수, 금 이렇게 주 3일 1시간 동안 수업이 진행되었는데 한 클래스엔 10명 남짓 학생들이 있었다. 대부분 돈을 아껴 영어를 배워보려는 워킹홀리데이였고, 아시아인들이 많았다. 유럽인들도 몇몇 보였는데 충분히 영어를 잘하는데 여긴 왜 왔지 싶었다. 떨리던 첫 수업. 커다랗고 네모난 나무 데이블에 빙 둘러앉았고 백발의 호주 할아버지 선생님은 새로운 친구들 소개로 클래스를 시작했다.
"간단히 이름, 국적, 영어를 배우는 이유 등을 소개해 볼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김자까자까입니다. 영어를 배워서 멜버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고 싶어서 여기 오게 되었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멋지게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Hi~ I'am 김자까자까 from Korea, nice to meet you"에서 나의 짧은 소개는 끝이 났다.
2주 정도 수업을 받았는데 나와 맞지 않아서 그만두었다.
수업은 주로 영어로 된 성경을 읽고 토론하는 내용이었는데 한 명씩 돌아가면서 특정 부분을 읽어야 하는 것이 그만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한 명 한 명 읽을 때마다 유럽인의 발음, 일본인의 발음, 한국인의 발음을 듣는 건 재미있었지만 나의 차례가 다가올 때면 긴장이 되어 왼쪽 아랫배가 쿡쿡 쑤시듯 아팠다.
'이런 지저스~ 다음은 내 차례야...'
성경책은 너무도 어려웠다. 크리스천이 아니었기에 한글로 된 성경을 읽은 적도 없는데 이역만리 멜버른에서 영어로 된 성경책을 읽게 될 줄이야 라스베가스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읽는 것이 어렵기도 했지만, 읽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 길이 만무했다. 전자사전으로 단어 찾는 데에만 백만 년이 걸렸다. 무엇보다 제일 힘들었던 건 클래스가 끝나기 10분 전 눈을 감고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백발의 노 선생님의 성스러운 주기도문은 한 귀로 듣고 쾌속 열차처럼 한 귀로 빠져나갔다. 모두가 눈을 감고 기도를 하고 있을 때 눈을 몰래 떠서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는 다른 클래스메이트와 눈으로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아.. 지겨워 죽겠어,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어"
"야, 너도?"
"야, 나도!" ㅋㅋㅋ
역시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이 길면 지루해하는 건 만국 공통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영어를 배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고문을 당하러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공짜로 영어를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역시 공짜라서 커리큘럼은 별로 였다. 역시 영어 공부는 돈을 투자해야 하는 걸까 고민이 되었다. 한숨을 내쉬며 멜버른 시티에 있는 마이어 백화점 앞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제각각의 개성이 가득 담긴 호주 사람들의 패션 스타일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MYER 백화점이 있는 버크 스트릿 (314-336 Bourke St, Melbourne, Victoria)
빨간색 원피스에 짧은 진주 목걸이,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백발의 멋쟁이 할머니.
검은색 스키니 진에 화이트 티셔츠, 레이반 보잉 선글라스를 낀 노란 머리 호주 오빠.
알록달록 과일 그림이 있는 미니 원피스에 검정 롱부츠를 신고 짙은 스모키 화장에 피어싱을 잔뜩 단 호주 언니까지도 참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문득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
'이거다! 저들의 스타일을 사진으로 담아보자! 내가 포토그래퍼가 되어 저들의 사진을 찍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도해 보는 거야. 그럼 영어 울렁증도 극복하고 스피킹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다음날 나는 최대한 포토그래퍼처럼 보일 수 있도록 스타일링을 하고 디카를 든 체 무작정 멜버른 시티를 돌아다녔다. 기본적인 회화 몇 개는 외우고 갔다. 마이어 백화점 앞 벤치에 앉아 타깃을 물색했다.
'어? 저 사람 스타일 좋은데?'
그러나 좀처럼 다가가는 게 쉽지 않았다. 나를 무시하면 어떡하지? 사진을 안 찍는다고 하면? 다른 말을 했는데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오만 가지 걱정이 앞을 가려 시도를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2시간을 벤치에 앉아 고민만 주구장창 했다.
그러다 에라 모르겠다. 모 아니면 도다! 물어봤는데 거절당하면 일본인 인척 하면 돼. 일단 질러 보기로 했다.
뚜두두두두두두.
눈앞에 타깃 발견! 2시 방향 스타일 좋은 남자 둘!
우선 성별이 남자니깐 여자에게 조금은 친절하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Go!
"익스큐즈미~?"
"예스?"
"스타일이 좋으셔서 그러는데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저는 스트릿 포토그래퍼입니다."
".... 네, 찍으셔도 돼요" ^^
예스!!! 성공이다!
본인들을 찍고 있는 나를 찍고있는 호주오빠들: 나의 첫 길거리 캐스팅 결과물
흥분되어 심장이 미친 듯이 폴짝폴짝 뛰었다. 흔쾌히 사진 찍기를 허락한 남자 두 명은 쿨하게 사진 몇 방 찍혀주고 호로록 떠났다. '뭐야... 별거 아니자나?'
역시 일단 해 보기 잘한 것 같았다.
처음 시작이 어렵지 한번 해보니 별거 아니었다. 스타일이 좋은 사람들을 찾고 다가가 물어보고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 거절도 몇 번 당했는데 처음엔 창피했지만 여러 번 당하니 아무렇지 않았다. 다른 타깃을 찾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날 때쯤엔 약간의 농담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비슷한 대화를 반복했더니 길거리 캐스팅은 더 이상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한국에서 온 야매 포토그래퍼는 멜버른 시티를 돌아다니며 열심히 패션피플 사진을 찍었다. 하다 보니 꽤 재미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영어 울렁증은 조금씩 극복되고 있었다.
역시 뭐든지 해봐야 아는 것이다.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니까. 작은 실패가 쌓여 결국은 미미하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걸 또 한 번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영어 울렁증이 어느 정도 극복이 되어 갈 때쯤 고깃집 아르바이트와의 결별을 조금씩 준비하고 있었다. 역시 영어는 계속해야 느는 것이고, 돈을 모으려면 시급이 센 오지잡이 필수라고 생각했다. 뭐든 닥치면 결국 해내게 되어 있다.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 늘 때까지 나는 한국인은 절대 만나지 않기러 결심했다.
다음 일자리를 찾지 않은 채 나의 생계를 책임지던 한인 고깃집을 그만두었다.
이제 나는 절박해졌다.
<알아두면 쓸데있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언어> * 한인잡 * 오지잡 워킹홀리데이들 사이에서 많이 쓰는 용어로 일하는 곳 사장이 한국 사람이면 한인 JOB 호주 사람이면 오지잡 AUSSIE JOB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