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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자까 Jan 07. 2023

동생이 한국에 안 돌아온대요

무계획 삶의 첫 인생 계획



뭐?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언니의 한껏 격양된 목소리가 공중전화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1년 있다가 돌아오겠다던 막냇동생은 한국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언니야 나 여기서 해보고 싶은 것이 생겼어"

"그게 뭔데?"

"여기 있는 대학에 들어가려고"

"뭐~어?????"


다시 한번 언니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비며 생활비 등 돈 걱정을 먼저 했다.

"걱정 마, 나는 한다면 한다 김자까자까야. 어떻게든 할 거야"






현재는 돈도 없고, 영어도 못하지만 내생에 처음으로 가슴 뛰는 꿈과 목표라는 것이 생겼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 되자'라는 막연하고 두리뭉실한 목표가 꿈이라면 꿈이었다. 한국에선 퇴근 후 친구들과 주구장창 술만 마셨고, 멜버른 와서도 아르바이트 끝나면 워홀 친구들과 술만 마셨다. 취미도 술, 기쁠 때도 술, 슬플 때도 술이었던 나였다. 살면서 이렇게 까지 가슴 뛰는 목표를 가진 것은 처음이었다.


불현듯 21살 홍대 클럽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만난 지니언니가 써준 편지 문구가 생각이 났다.

"자까자까야 사람은 꿈을 먹고사는 동물이래. 꿈이 없다면 산다는 건 무의미할 거야. 언제나 반짝이는 꿈 많은 네가 참 이뻐 보여. 너의 꿈을 꼭 이루길 바"


국제 변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던 지니언니와의 인연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하지만 지니언니의 저 말은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간직하게 되었다. 이 날 이후 나는 항상 꿈을 꾸며 살았는데, 말 그대로 꿈만 꾸며 살았다. 계획도 없고, 실행도 없이 그저 망상만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26살에 호주 멜버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오게 되었고, 1년만 있다가 가려고 했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내 인생에 큰 자극이 되었다. 더 이상 솔잎만 먹던 송충이가 아니라 힘껏 날아오르는 나비가 되고 싶어진 것이다. 진짜 꿈을 꾸고 싶어졌다. 그때의 반짝이던 21살의 내가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결정이었다.

고등학교땐 공부도 못했고, 공부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특히 영어와 수학은 질색 팔색했던 나였는데 외국에서 대학 갈 생각을 하다니. 어쩌면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미리 포기부터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 물론 성적이 안되기도 했었지만.


'외국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가 생긴 후부터 나는 가슴이 마구마구 뛰었다.

내 마음은 이미 대학교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외국인 친구들과 영어로 자유롭게 쏼라 쏼라 대화하면서 페퍼로니 피자와 콜라를 먹는 상상까지 했다. 또다시 마음이 둥둥 떠서 망상을 만들어 내려고 하던 찰나, 간신히 정신줄을 부여잡고 하얀색 A4용지를 책상 위에 촥 펼쳤다.


그리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피라미드를 그려 놓고 꼭짓점에 목표부터 적었다.



RMIT 대학교 입학을 위한 신년계획



목표는 멜버른에 있는 대학교 입학. 

일단 입학하는 것까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멜버른에 있는 대학교 리스트들을 먼저 뽑았다.

제일 유명한 대학교 3 군대로 추렸다.

RMIT 대학교, 멜버른 대학교, 모나쉬 대학교.

나는 주저 없이 RMIT를 뽑았다.



RMIT University, Melbourne, Australia



건축과 패션으로 유명한 학교였다.

멜버른 대학교는 법학, 교육학, 음대로 유명했고 모나쉬 대학교는 약대로 유명했다.

다음 스텝으로는 현재 나의 상태와 중간 계획, 대학 입학까지의 시간과 드는 비용, 필수 조건들을 알아보았다. 큰 목표와 작은 목표를 나누고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1년 안에 꼭 해야 할 3가지>

1. 1년 안에 1만 불을 모을 것

2. 유학원에서 영어 공부를 하면서 RMIT English Program에 입학할 조건을 갖출 것

3. 학생비자 신청할 것

#돈 #영어 #비자 이 3가지가 올해 나의 최우선 목표였다.

목표가 생기니 뭐부터 해야 할지 우선순위가 정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급을 많이 주는 오지잡이 필수인데 2개월째 일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근근이 새벽에 경기장 청소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무식하게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이력서를 멜버른 시티에 돌리고 또 돌렸다. 카페와 레스토랑에 집중 공략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영어를 잘 못하는 동양인을 통 뽑아주지 않았다. 지칠 때로 지쳐 몇 날 며칠을 시무룩해 있는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왜 피곤하게 돌아다녀? 온라인으로 구직해 봐. seek.com이라고 여기 들어가 봐"

나는 의지의 한국인이라며 발로 뛰어야 한다는 이상한 고집에서 빠져나와 이날부터 온라인으로 카페와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지원했다.


백수 생활 3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3개월을 넘기면 1년 안에 만불을 모으기 힘든 계산이 나왔다. 나는 절박해졌고 밤낮으로 멜버른 시티와 외곽까지 이력서를 지원했다. 그렇게 2주일이 더 지나고 마음이 초조해질 때쯤 마침내 면접을 보러 오라는 이메일을 한군대에서 회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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