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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자까 Sep 19. 2023

왜 항상 모든 게 잘 될 거라고만 생각해?

최상의 시나리오와 최악의 시나리오



해외살이는 낭만파를 지독한 현실파로 바꿔 놓았다.




호주 멜버른으로 온 이후, 2년간의 워킹 홀리데이를 지내면서 나의 목표는 오로지 한 가지였다.

멜버른의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

졸업까지도 아니었다. 일단 RMIT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다.


계획도 했고, 실행도 하고 있었지만 나는 항상 제일 좋은 결과만 고려하며 살았다. 더 나빠지는 상상. 혹시나 안되면 어떡하지 라는 다음 스텝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그냥 운에 맡겨두는 낭만파 스타일 었었다.


"왜 항상 모든 게 잘 될 거라고만 생각해?"


오늘도 친구의 뼈 때리는 조언은 아프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듯, W의 뼈아픈 조언은 늘 옳았다.


낭만파인 나는 계획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고, 쓰디쓴 실패를 맛보고 나면 큰 좌절감에 시달렸다. 우울감에 마음은 바닥까지 촥 가라앉고 원래의 명랑한 나로 다시 돌아오는데 몇 날 며칠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에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술을 진탕 퍼마시거나 현실 도피용 드라마를 시청하며 판타지 속에서 박혀 살았다.


한 번은 밤 10시에 시청을 시작했던 미국 드라마 <히어로즈>를 다음날 아침 9시까지 꼬박 11시간을 눈이 벌게지도록 시청한 적도 있었다. 덕분에 밤낮이 바뀌어 한동안 다시 돌아가는데 고생을 꽤나 했었다.

한때 '이번 딱 한편만 더?'는 나에겐 달콤한 중독과도 같은 문장이었다.


한평생 그렇게 낭만파로 살아온 나에게 W의 조언은 참으로 신선했다. 그리고 듣기 싫었다.


"왜 너는 항상 좋을 거라고만 생각해? 모든 일을 계획할 때는 최상의 시나리오와 최악의 시나리오. 둘 다 생각해야 해."


오늘도 저놈의 최상과 최악의 시나리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잔소리 같이 느껴져 더 듣기 싫었다.

두 가지 시나리오와 해결책을 시뮬레이션해 두면 상황이 나쁘게 흘러갔을 때 우왕좌왕 하지 않고 시간을 덜 버리게 되며 멘털까지 챙길 수 있었다. 팩트는 알고 있지만 머리만큼 내 몸은 따라주지 않는 게 늘 문제였다.


역시 W는 똑똑한 친구였다.  괜히 멜버른 대학교 회계학과가 아니었다.

W는 가족도 해 주지 않는 현실 조언을 아낌없이 해 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현실을 때려 맞는 건 꽤나 아팠지만 지나고 보면 W의 말은 전부 옳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영어도 잘 못하고, 부자도 아니고, 남들보다 한참 늦게 시작한 가난한 유학길이었다.

조금은 가혹한 현실 앞에 W의 조언은 쓰디쓴 한약과도 같아서 언제나 달게 꿀꺽 삼켰다.


RMIT 대학교 입학이라는 목표가 생긴 후부터 나는 무모하리만큼 잘 될 거라고만 생각했다.

당시 <시크릿>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던 터라 온 마음을 우주를 향해 보내고 또 보냈다.


'나는 RMIT 파운데이션에 합격한다. 그리고 RMIT 대학교에도 입학한다. 나는 간절히 원한다. 그리고 꼭 들어갈 것이다'


온 마음의 염원을 담아 우주로 우주로 깨랑까랑 접신하듯.


아이엘츠 시험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RMIT 파운데이션(일종의 고3과정이며 한국에서 대학을 1년 이상 다니지 않았다면 호주 대학 입학 전 파운데이션 과정을 졸업해야만 한다.) 들어갈 돈도 마련이 되었다. 이제 아이엘츠 영어 점수만 5점을 넘기면 나의 계획대로 한 스텝 더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바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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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점 턱걸이 합격!!!!!!!!!

털걸이면 어떤가? 합격을 한 것을!!

ABCD만 알던 통영 촌년인 영어 무식자는 2년간의 각고의 노력으로 아이엘츠 시험 5점을 받아내다니. 나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무모했지만 통했다. 무식한 나의 방법이.

하지만 어떤 일을 계획할 때 너무 잘되는 쪽만 이제는 생각하지 않는다.

W덕분에 나는 항상 두 가지를 염두에 두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최상의 시나리오와 최악의 시나리오.





호주 멜버른에 있는 RMIT 대학교 (건축과 패션으로 유명하다)




RMIT 인터내셔널 스튜던트 건물 (초록 건물)

RMIT 파운데이션 과정을 등록하러 가는 길.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내셔널 스튜던트 사무실에서 필요한 절차를 밟았다. 아직은 어색한 RMIT 학생 카드를 손에 쥔 채 드디어 대망의 오리엔테이션 날이 왔다.


이제 나도 어엿한 RMIT 학생이다~ (파운데이션 과정이지만)






* 다음 이야기부터는 호주의 고3과정인 RMIT 파운데이션 코스의 에피소드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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