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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운 김동찬 Mar 08. 2024

노년의 글쓰기

퇴(推)일까 고(敲)일까, 행복한 고민

글을 쓴다는 것은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벗는 일이다

벗기를 부끄러워하지 말자


망설이다가 벗지 못하면

평생 누더기 속에 살다 갈 따름이다


벗었으면 보이기를 두려워 말자

두려워하다 보이지 못하면

평생 냉가슴 속에 살다 갈 따름이다


기억하라

당신의 참모습을 기다리는 커다란 눈망울들을!


글을 쓴다는 것은 기꺼이 나를 벗는 일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라면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싸구려 배우는 돈을 위해 옷을 벗지만 진정한 배우는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옷을 벗는다. 옷을 벗지 않고도 관객과 온전히 소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꼭 그래야 할 경우가 있기에 그럴 때 배우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옷을 벗는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해주는 관객을 만났을 때 배우는 벗은 몸이 민망하지 않다.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이미 불행을 자초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한 편의 글-그것이 비록 보잘것없는 글이라 할지라도-을 써놓고 느끼는 희열은 써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문재가 출중한 대 문장가에게도 좋은 글이 항상 나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소동파(蘇東坡)와 같은 출중한 시인도 적벽부(赤壁賦)를 지었을 때 이를 완성하기까지 버린 초고가 수레로 석 대가 넘었다고 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읽었던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고려 때의 김황원(金黃元)의 이야기는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가 평양 감사가 되어 부임 길에 부벽루에 올랐다. 누각에 많은 시인들이 지은 제영(題詠)들이 많았지만 그가 보기엔 모두 맘에 안 들었다. ‘이런 것들을 시(詩)라고……’ 모두 떼어내게 한 뒤 온종일 난간에 기대 겨우 두 구절을 얻었다.


長城一面溶溶水  긴 성곽 한 면에는 넘실넘실 강물이오

大野東頭點點山  넓은 벌 동편 머리 점점이 산일러라


하지만 여기서 꽉 막혀 더 이상 마무리를 못하고 끝내는 통곡 하며 돌아섰다고 한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잘 말해주는 이야기이다.


퇴(推)일까 고(敲)일까, 행복한 고민

또한 퇴고(推敲)라는 말이 그로부터 비롯된 중국 중당(中唐) 때의 시승(詩僧)이었던 가도(賈島779~843)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아직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의 시절 어느 날 나귀를 타고 장안 거리를 돌아다니던 그에게 갑자기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들었는데,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민다(鳥宿池邊樹 僧推月下門)'는 시구가 떠올랐다. 스스로 너무 멋진 시구라고 생각되어 흡족했는데 그중 ‘밀 퇴(推)’자가 어쩐지 마음에 걸려 다시 생각해 낸 것이 ‘두드릴 고(敲)’자였다. 고(敲)자로 고치고 보니 또 어쩐지 퇴(推)자가 나은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퇴와 고를 두고 거기에만 정신이 팔려 나귀가 이끄는 대로 돌아다니다가 그만 당송 8대 문장가의 하나이며 당시 높은 벼슬자리에 있던 경조윤(京兆尹) 한유(韓愈)의 행차와 부딪쳤다. 그때까지 나귀에서 내리지 않았으니 불경죄를 범한 것이었다.


병졸들이 가도를 붙잡아 끌고 갔다. 가도가 한유 앞에 가서 말에서 내리지 못한 이유를 사실대로 고(告)하자 한유는 가도의 시작(詩作) 태도에 탄복하며 잠시 생각하더니 “퇴보다 고가 나을 것 같소,”라고 말했다. 이후 두 사람은 시우(詩友)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때부터 퇴고(推敲)는 글을 쓴 뒤 문장을 다듬고 어휘를 살핀다는 말이 되었다.


글쓰기가 있는 노년은 행복하다

나이가 들어서 글을 쓰는 취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근력(筋力)도 전만 못하고 총력(聰力)도 전만 못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취미가 글쓰기이다. 낙양(洛陽)의 지가(紙價)를 올릴 수 있는 글을 매번 쓸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평생에 단 한 편의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수 있다면 그런 글을 쓰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아깝지 않고 필요하다면 나를 가리고 있는 옷을 벗어도 부끄럽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글을 쓰다가 때로는 치기가 넘쳐 평양 감사 김황원(金黃元)처럼 통곡을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쓸려고 노력하지 않았던가! 시승(詩僧) 가도(賈島)처럼 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퇴(推)가 되어도 좋았고 고(敲)가 되어도 좋았지만 그 한 글자를 택하기 위해 그처럼 몰두하고 고뇌하는 그 정성을 배울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몰두하고 고뇌하는 그 시간 동안만큼은 우리는 나이도 잊고 세상의 번잡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노년(老年), 글쓰기가 있는 노년은 행복하다.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W.B. Yeats)가 ‘영혼이 손뼉 치며 더 크게 노래하지 않는다면 노인은 하찮은 존재’ 일뿐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우리 나이 든 사람들이 손뼉 치며 노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글쓰기라고 말하고 싶다.


아주 쉽다. 지금 바로 연필과 종이를 가지고 시작하면 된다. 아니면 컴퓨터를 켜고 자판을 두드리면 된다. 쓰다가 막히면 가도(賈島)처럼 퇴(推)일까 고(敲)일까 고민해보자. 그 고민이 바로 여러분을 행복의 문으로 안내하는 길잡이이다. 


2018.6.30


석운 김동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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