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운 김동찬 Apr 21. 2024

내 나이 일흔 하고도 하나가 되었을 때

하우스먼의 시(詩)

하우스먼(A E Housman 영국 시인 1859-1936)의 시(詩) 내 나이 스물 하고도 하나였을 때’를 처음 읽었을 때 우연히도 나는 스물한 살이었다. 


내 나이 스물 하고도 하나였을 때

난 어느 현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네

‘크던 작던 돈은 다 주어도

네 마음만은 주지 말아라’

하지만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으니

내겐 소용없는 말이었다네……(첫 연)


그때 스물한 살이었던 나에게 마음만은 주지 말라는 시인의 말은 내겐 정말 소용없는 말이었다. 무엇엔가 마음을 줄 것을 찾기 위해 눈을 있는 대로 크게 뜨고 세상을 휘젓고 다니던 스물한 살의 청년에게 마음만은 주지 말라는 시인의 말은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대학 시절도 중반을 지나던 그때 나는 세상에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을 때였다. 모든 것에 얽매여서 수동적으로 학교 공부만 할 수밖에 없었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오니 모든 것이 자유로워졌다. 세상이 온통 내 것인 양 그때까지 나를 옭매고 있던 그물을 벗어던지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여학생들도 만나면서 정신없이 지나다 보니 어느덧 소포모어(sophomore)의 해도 지나가 버렸다.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둘러보고 또 나 자신을 돌아보니 지난 2년간 해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새장에서 풀려난 어린 새가 세상 넓은 것도 하늘 높은 것도 모르고 끝도 없이 날다 보니 날갯죽지만 아프고 어디에 내려앉아야 할지 몰라 허공을 빙글빙글 맴돌 듯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던 그때 나는 그렇게 방황하고 있었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디에 있고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비로소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던 그때 나는 무척 심각했다. 그때까지의 나의 삶은 그냥 달리기였다. 거개는 타의에 의해 그러나 때로는 자의에 의해 철없이 정신없이 앞으로만 내달리다 문득 그 자리에 서버린 그때 나는 비로소 정신이 들었던 것 같다. 안개 자욱한 광야에 홀로 팽개쳐진 느낌을 가슴으로 받아내며 비로소 나는 왜 살고 있고 나의 삶에서 추구할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몰랐지만 찾기만 한다면 나의 마음을 다 바치겠다고 생각했던 그때, 내 나이 스물 하고도 하나였을 때, 내 눈에 뜨여 읽었던 하우스먼의 시(詩)는 그렇기에 내겐 소용없는 말이었다. 하우스먼이 주지 말라는 ‘마음’이 사랑이든, 평생 추구해야 할 진리이든, 또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길이든, 나는 그 무엇을 찾아서 마음을 주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내 삶의 본격적인 방황이 시작되었다. 내 마음뿐이 아니라 내 모든 것을 다 바칠만한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을 찾기 위한 방황이었다. 많은 책을 읽었다. 문학 철학 종교 예술 등등의 책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나갔지만 두서없이 읽은 책들은 잡다한 지식의 파편만을 머릿속에 집어넣었지 내가 원하는 삶의 그 무엇인가를 알려주지도 제시하지도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때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가까운 친구들과 만나 삶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지만 모두가 나와 비슷하게 마음만 급한 풋내기 철학자들이었고 누구 하나도 이렇다 할 결론을 내놓지 못했다. 애꿎은 담배 연기만 허공에 날리고 헛헛한 가슴을 술로 달래고 우리들은 그게 인생이야(C’est la vie!) 하는 냉소적인 고백을 뱉어내며 헤어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영국 시인 존 키이츠(John Keats)의 시 희랍고병부(希臘古甁賦: Ode on a Grecian Urn)를 읽다가 나는 ‘유레카’하고 혼자 소리쳤다. 나로 하여금 마치 아르키메데스나 된 양 소리 지르게 만든 것은 ‘미(美)는 진리고 진리는 미이다. 이것이 그대들이 세상에서 아는 모두이고 또 알 필요가 있는 모두이다’라고 끝을 맺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었다. 감성이 풍부하다 못해 밖으로 터져 나오던 그 시절 몇 달 동안을 삶의 의미를 찾겠다고 밤낮으로 고심하다가 만난 그 구절은 캄캄한 암흑의 하늘을 헤집고 나타난 별빛 같은 섬광이었다. ‘그렇구나. 미가 진리이고 진리가 미이구나. 왜 그걸 몰랐을까?’하고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하지만 키이츠가 말하는 미는 결코 눈에 보이는 미나 있다가 사라지는 미가 아닐 것이다. 그 미는 영원한 미를 말할 것이고 그렇기에 진리일 것이다. 이제부터 이 미를 찾아야겠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해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가방 하나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미(美)를 찾겠다고 설쳤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쓴웃음이 나온다. 26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키이츠가 그리스의 도자기를 바라보다 ‘미는 진리이고 진리는 미’라는 위대한 고백을 할 수 있었다면 그와 같은 이십 대인 나도 키이츠의 도자기와 같은 무언가를 만난다면 그와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전국을 돌아다녔던 것이다. 경주와 부여 그리고 유명한 사찰을 찾아 돌아다니다 방학 끝 무렵 기진맥진해서 경부선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키이츠가 말한 미는 그런 식으로는 찾을 수 있는 미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말한 참된 미를 찾는 여정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 스물 하고도 한 살이었던 그때 시작된 미와 진리를 향한 추구는 그 뒤 내 평생의 과제였다. 때로는 미를 찾아 때로는 진리를 찾아 그리고 때로는 그 둘을 함께 찾아다니며 나의 평생이 흘러갔다. 어떤 때엔 문학 속에서 그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았고 또 다른 때엔 예술 속에서 그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아 부지런히 뛰어들어 보면 그것들은 언제나 신기루같이 사라져 버렸다. 찾아다니고 쫓아다니다 어느 땐 너무 힘들고 절망스러워 그만 포기하고 쉴까 하다가도 다시 미와 진리를 찾는 방황을 시작하였다. 


그러다 보니 오십 년의 세월이 흘렀고 어느덧 내 나이 일흔 하고도 한 살이 되었다. 하우스먼의 시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를 처음 읽던 홍안의 청년이 백발의 노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제대로 깨달은 것이 하나도 없다. 텅 빈 머리와 허허로운 가슴을 부여안고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며 아쉬워하고 있을 따름이다.  하우스먼은 그의 시를 ‘내 나이 스물 하고도 둘이 되니 그것이 진실인 줄을 알게 됐습니다.’라고 끝냈다. 그러나 그가 알게 된 것은 어떤 진리가 아니라 ‘가슴속의 마음은 결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칠십이 넘게 산 하우스먼도 평생 진리를 찾아 헤매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그가 칠십이 넘어서 쓴 시(詩) ‘나무 중 가장 사랑스러운 벚나무’에서 ‘일흔 봄에서 스물을 빼면 내게 남는 것은 쉰뿐. 그리고 활짝 핀 꽃을 보기엔 쉰 봄은 너무 짧으니.’라고 썼을 것이다.


물론 하우스먼에 비하면 너무도 둔하고 또 둔한 나는 내 나이 일흔 하고도 한 살이 되어서도 아무런 진리도 깨닫지 못하고 텅 빈 가슴을 달래기 위해 기껏 이런 시나 끄적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나이 일흔 하고도 하나가 되었을 때


내 나이 일흔 하고도 하나가 되었을 때

난 내 속의 누군가가 말하는 것을 들었네

찾고 또 찾으며 이제까지 찾고서도

아직도 계속 찾을 것인가


내 나이 일흔 하고도 하나가 되었을 때

난 비로소 그의 말에 귀 기울였네

길을 열려하지 말고 열린 길로 가라는 말

비로소 고개 들어 앞을 내다보니

굽이굽이 열려있는 길

어제까진 안 보였던 길


내 나이 일흔 하고도 하나가 되었을 때

난 가기로 했네 열린 길로

결국은 하나가 되어 만나는 그 길로


2019. 4. 23 석운 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