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가고 젊음은 사라지고
거울 속의 백발을 보며
장구령(張九齡 673~740, 당나라의 시인)
옛날엔 청운의 뜻을 품었지
뜻도 못 이루고 백발이 되었네
그 누가 알까 맑은 거울 속 사정
나와 내 그림자가 서로 가련하다 하네
照鏡見白髮(조경견백발)
宿昔靑雲志(숙석청운지)
蹉跎白髮年(차타백발년)
誰知明鏡裏(수지명경리)
形影自相憐(형영자상련)
[宿昔(숙석): 옛날
蹉跎(차타): 미끄러져 넘어짐(뜻을 이루지 못하고 나이가 듦)
形影(형영): 形은 거울 앞에 있는 내 육신, 影은 거울 속의 내 육신의 그림자]
세월의 무상(無常)함을 느끼는 사람의 마음은 시대와 상관없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진가 봅니다. 앞에서 감상하였던 ‘찻집’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가 자주 들리던 찻집의 소녀가 변해 가는 것을 보고 세월의 무상을 시로 읊은 때는 20세기 초였습니다. 장구령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세월의 무상을 느껴
조경견백발(照鏡見白髮)을 쓴 때는 8세기 초쯤입니다. 천 년도 훨씬 넘는 세월이 두 시인 사이를 흐르고 있지만 그들이 쓴 시를 통해 흐르는 ‘세월의 무상’은 같은 공통분모를 가진 분자의 느낌으로 오늘 우리 가슴을 울려 이제껏 살아온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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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唐)의 현종(玄宗) 때 사람인 장구령은 젊은 날엔 현종의 눈에 들어 높은 관직에까지 올랐지만 뜻하지 않은 일로 벼슬자리를 빼앗긴 뒤 초야(草野)에 묻혀 살았습니다. 복직을 꿈꿨으나 뜻대로 되지 않고 세월만 보내다가 어느 날 문득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세월의 무상을 한탄하며 이 시를 지었습니다.
‘形影自相憐(형영자상련)’
무엇보다도 마지막 구절 ‘形影自相憐(형영자상련)’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장구령이 살았던 시절엔 유리 거울이 없었습니다. 기껏 청동 거울이 있었겠지만 낙향(落鄕)하여 실의에 빠져 살던 그가 거울을 보는 기회는 아주 드물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그만 한탄합니다. 무심한 세월이 흘러 백발이 된 것도 모르고 아직도 옛 생각만 하고 있는 자기의 모습을 거울 속에서 본 것입니다. 그 순간 입에서 고백처럼 튀어나온 말이 ‘形影自相憐(형영자상련)’입니다. 자주 거울 앞에 서지는 않았지만 그때까지는 자신(形)이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影)을 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날엔 거울 속의 자기(影)가 거울 앞의 자신(形)을 가련한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거울 속과 거울 앞의 자신을 살펴보았지만 결국 서로 가련하다는 표정을 짓는 두 개의 자신을 느꼈기에 그 앞 구절에 썼듯 ‘그 누가 알까 맑은 거울 속 사정(誰知明鏡裏 수지명경리)’이라고 탄식하며 세월의 무상을 안타까워했던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 혹시 장구령과 같은 경험을 하신 분이 없으신지요? 약 삼 년 전 어느 가을날 저는 거실에서 책을 읽다가 옥편(玉篇)을 가지러 서재로 들어가다 벽 한쪽에 걸린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만났습니다. 그때까지 안경을 쓰고 거울 앞에 선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책을 읽다가 거울 앞을 지났기에 안경을 그대로 쓰고 있었습니다. 안경을 통해 거울에 비친 확연한 내 모습을 보고 저는 비로소 내가 노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안경을 안 썼을 때는 잘 보이지 않았던 주름살과 처진 피부와 같은 내 육신의 노쇠한 모습을 보았을 때 문득 이 시(詩)가 생각났기에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렸습니다.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거울 앞에 섰다가 백발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시를 쓴 장구령이나 안경을 쓰고 거울 앞에 섰다가 노인이 된 자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저나 ‘세월의 무상’ 앞에서는 너무도 무력한 필멸의 존재라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이럴 때 꼭 한번 짚고 넘어가고 싶은 시의 한 구절이 미당(未堂)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의 한 연입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시인 이백(李白)이 물속에 비친 달을 보고 달을 건지러 물속으로 뛰어들 듯 상상력과 감성이 풍부한 시인들은 곧잘 거울 속의 세계와 현실을 혼동합니다. 어쩌면 시인은 현실을 투영하는 거울 속 세계를 통해 현실을 잊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국화를 거울 앞에 선 누님 같다고 말한 미당은 거울 앞에선 실제의 누님을 가리켰을까요? 아니면 거울 속에 투영된 누님을 가리켰을까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미당이 거울 속에 비쳐 있는 누님을 젊음의 뒤안길을 걷기 이전의 청초했던 누님으로 추억하며 국화의 모습과 같다고 읊은 것 같습니다. 결국 미당도 거울 속에 비친 사랑하는 누님의 옛 모습을 상상하며 ‘세월의 무상’을 탄식한 것입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어떨까요?
거울을 매체(媒體)로 하여 시를 쓴 시인의 마음을 보다 더 알고 싶다면 여러분 스스로가 한번 거울 앞에 서 보시기 권합니다. 가능하면 큰 거울이 좋겠지요. 그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분은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겠고 어떤 분은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실 것입니다. 과거를 회상해도 좋고 미래를 상상해도 좋지만 중요한 것은 거울 속의 내 모습은 나의 두 눈을 통해 내 망막(網膜)에 맺히는 상(像)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상(像)은 거울 속의 내 모습에 나의 마음이 입혀진 심상(心像)입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느냐에 따라 이 심상이 발하는 색깔과 의미가 달라집니다.
오늘 우리가 본 두 편의 시를 쓴 시인은 거울에 비친 자신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며 ‘세월의 무상’을 영탄했습니다. 여러분이 시인이라면 어떤 시를 쓰시겠습니까? 사랑, 희망, 행복, 믿음을 노래하는 시일까요? 아니면 그 반대의 것들을 이야기하는 시일까요?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거울 속의 내 모습보다는 내 모습을 보는 내 마음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