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엘뤼아르의 '이곳에 살기 위하여'와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이곳에 살기 위하여
폴 엘뤼아르(1895~1952)
하늘이 나를 버렸을 때, 나는 불을 만들었다,
친구가 되기 위한 불,
겨울 밤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불,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불을.
빛이 나에게 준 모든 것을 나는 그 불에게 주었다:
숲과, 덤불, 밀밭과 포도밭,
둥지와 새들, 집과 열쇠,
벌레, 꽃, 모피, 축제.
나는 불꽃이 탁탁 튀는 소리만으로,
그 열기(熱氣)의 냄새만으로 살았다:
나는 흐르지 않는 물속에 가라앉는 배와 같았다,
죽은 자처럼 나는 단 하나의 원소밖에 갖지 않았다.
Pour vivre ici
Paul Éluard
Je fis un feu, l'azur m'ayant abandonné,
Un feu pour être son ami,
Un feu pour m'introduire dans la nuit d'hiver,
Un feu pour vivre mieux.
Je lui donnai ce que le jour m'avait donné :
Les forêts, les buissons, les champs de blé, les vignes,
Les nids et leurs oiseaux, les maisons et leurs clés,
Les insectes, les fleurs, les fourrures, les fêtes.
Je vécus au seul bruit des flammes crépitantes,
Au seul parfum de leur chaleur �
J'étais comme un bateau coulant dans l'eau fermée,
Comme un mort je n'avais qu'un unique élément.
위의 시는 엘뤼아르가 ‘이곳에 살기 위하여’라는 이름으로 쓴 5편의 연작시(連作詩) 가운데 첫번째 시로 1918년에 발간되었던 그의 초기 시집 ‘평화를 위한 시편’들에 수록되었던 시입니다. 1939년에 그는 이 시와 같은 제목으로 4편의 시를 더 써서 모두 5편의 연작시(連作詩)로 만들었습니다.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인 폴 엘뤼아르는 초현실주의 시인이며 또한 열렬한 저항 시인이었습니다. 2차 대전기간에는 항독 비밀 저항 운동에 가담하여 싸우기도 했던 그는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초현실주의의 이상을 삶으로 실천했던 시인이었습니다. 그의 시의 주제는 언제나 영원한 사랑, 평화, 그리고 자유에 도달하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이 시도 그의 저항 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하늘이 나를 버렸을 때’의 하늘은 신(神) 또는 그가 추구하는 자유로운 세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에서 하늘이라고 번역된 프랑스어는 ‘ciel’이 아니고 ‘azur’입니다. 일상적인 의미의 하늘인 ‘ciel’ 대신 맑고 푸른 하늘을 의미하는 창공(蒼空)의 하늘인 ‘azur’가 나를 버렸다는 것은 그가 추구하는 사랑과 평화와 자유의 세상, 또는 그런 것들을 조화롭게 다스려야 할 신(神)이 그를 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는 불을 만들었습니다. 불은 물론 저항과 혁명의 불꽃을 뜻합니다. 시인은 그 불과 친구가 되기 원하고 그 불과 더불어 겨울밤과 같은 어둔 세상으로 들어가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겠다고 합니다. 초현실주의 시인답게 꿈과 현실을 하나로 융합하는 모습입니다.
둘째 연에서 ‘빛이 나에게 준 모든 것을 나는 그 불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빛’이라고 번역된 프랑스어 ‘jour’는 ‘날’이라는 뜻의 시간적 의미도 있습니다. 따라서 ‘빛이 나에게 준 모든 것’은 ‘빛’이라는 자연과 ‘날’
이라는 시간이 준 모든 것, 즉 삶이 그에게 부여했던 모든 것을 그가 추구하는 혁명의 ‘불’에게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연 속의 숲도, 육신을 담아야 했던 집도, 때론 즐거움을 주었던 축제도, 모두 혁명을 위해 포기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연에서는 혁명, 즉 불과 하나가 된 시인의 삶을 볼 수 있습니다. 혁명은 결코 고요하거나 침묵하지 않습니다. 혁명의 함성은 때론 불연속성으로 허공을 갈랐고 시인은 그 소리만 들어도 살 것 같았으며 또한 그 속에서 터져 나오는 열기를 사랑해 그 냄새만 맡아도 살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살고 있던 세상은 나태하고 깨어 있지 않아 마치 흐르지 않는 물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이 그런 흐르지 않는 또는 닫힌(fermée) 물속에 가라앉는 배와 같다고 자탄했습니다. 가라앉았기에 움직일 수도 없고 무력했기에 죽은 자와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물 밖의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잡다한 욕망과는 달리 오직 ‘불’이라는 하나의 원소만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끝까지 지키고 있는 하나의 원소 ‘불’은 흐르지 않는 물속에서도 꺼지지 않았습니다. 자칫하면 마지막 두 줄이 죽음 앞에 무기력해지는 시인의 모습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두 줄에서 ‘같았다’라고 사용된 동사 ‘J'étais’와 ‘갖지 않았다’에서 사용된 ‘je n'avais’의 시제는 모두 반과거(Imparfait)입니다. 불어에서 반과거 시제는 말 그대로 완전히 끝난 과거가 아니라 과거의 지속적인 상태로 현재까지 이어집니다. 닫힌 세상 속에서 가라앉아 있어도 유일한 원소 ‘불’을 갖고 있기에 혁명과 항거는 계속될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이곳에 살기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 번 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엘뤼아르는 23살의 나이에 이와 같은 혁명의 불꽃이 튀기는 시를 썼습니다. 사실 그의 대표작은 훨씬 나이가 든 뒤인 1942년에 쓴 ‘자유(LIBERTE')’입니다. ‘자유’는 엘뤼아르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전개하며 발표한 저항시이자 참여시입니다. ‘초등학생 때 나의 노트 위에,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로 시작하는 이 시는 출판되자 곧바로 프랑스 밖의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었다고 하니 그 당시 이 시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말해줍니다. 그때뿐이 아니라 대전이 끝난 뒤에도 이 시는 자유를 갈망하는 많은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우리나라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입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金芝河:1941~2022)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는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 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1960년 19살 나이에 4.19 혁명에 참가한 뒤로 계속 학생운동을 했던 그는 엘뤼아르보다 더 어린 나이에 자유의 귀중함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민주와 자유를 위한 그의 운동은 계속되어서 1961년 5.16 쿠데타 이후에는 정국의 수배를 피해 고향 목포시를 포함한 여러 곳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며 도피 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이지만 하도 지하로만 숨어 다녔기에 지인들이 그를 지하(地下)라고 불렀기에 나중에 스스로 한자를 바꿔서 김지하(金芝河)라고 하였기에 필명이 된 것입니다. 이름이 바뀐 연유만 생각해도 그가 얼마나 민주주의를 갈구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타는 목마름’은 1975년에 발표된 시입니다. 1970년대 내내 박정희 정권과 맞서 투쟁을 하던 그가 군사독재가 극에 달했던 당시 암담했던 현실을 말 그대로 ‘타는 목마름으로’ 울부짖었던 시입니다. 하지만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감옥에서 듣고 삶의 무상함에 휩싸여 "잘 가시오. 나도 뒤따라 가리다"라는 혼잣말이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나왔다고 하니 훗날 '생명 사상가' 로 변신하는 시인의 일면이 그때 벌써 나타났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엘뤼아르의 ‘자유’에 영향을 받아서 썼다 하더라도 이 시는 절창(絶唱)입니다. 둘째 연을 보면 알지만 누구에게 잘못 말했다가는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비명소리 통곡소리와 더불어 밤중에 잡혀가는 세상에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른 새벽 아무도 없는 뒷골목에 ‘민주주의’라고 쓰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쫓겨 다니는 생활이 지긋지긋해서 그리고 쫓겨 다니는 발길이 너무 힘들어 머리는 이제 그만 너(민주주의)를 잊으려 했어도 가슴은 갈증으로 물을 찾는 목마름 같은 한 가닥 기억이 있어 통금이 끝나자마자(*그때는 자정에서 4시까지 통금이 있었던 시대이다) 뒷골목에 나가 ‘민주주의’라고 쓰지 않으면 못 배겼던 시인의 아프도록 절실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쓴다’라는 행위는 ‘말한다’라는 행위 다음의 의사 표시 방법입니다. ‘말한 것’은 사라지지만 ‘쓴 것’은 남기에, 그리고 말은 듣는 상대가 있어야 하지만 쓰는 것은 불특정 다수에게 하는 것이기에, 자기 생각을 알리면서도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기에 시인이 택한 최선의 저항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남의 눈을 피해 신새벽 뒷골목에 그렇게 쓰는 시인의 귀에는 문득 같이 운동하다 잡혀가던 동지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그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옵니다. 오늘날 같이 쓸 것이 많지 않았던 그때 기껏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쓸 것은 백묵이었습니다. 백묵으로 쓴 글씨가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지만 시인은 서툰 솜씨로 씁니다. 글씨를 못 써서 서툰 것이 아니고 어둠 속에 들키지 않게 치떨리는 분노를 삭이며 쓰기에 서툴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썼다’라는 과거를 택하지 않고 ‘쓴다’라는 현재형을 택한 것은 시인의 민주 항쟁이 언제까지도 계속될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이렇게 끝을 맺은 이 시의 마지막 구절들을 읽다 보면 이제 시인은 돌아가셨지만 민주주의를 갈구했던 시인의 간절했던 마음은 지금도 가슴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1975년에 발표되었던 이 시는 1980년대 초에 노래로 작곡되어 대학가에서 널리 퍼져 민중가요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 시인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민주화 운동 덕분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이 빠른 속도로 자유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정확히 반세기가 지난 2025년 오늘 우리나라의 시국은 너무도 위험합니다. 너무도 빠른 경제 성장과 너무도 많이 주어진 자유 때문인지 풍요와 안일에 나태해진 많은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귀중함보다는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다는 포퓰리즘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다시 모두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지켰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2025년 5월 석운(夕雲)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