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힐링’이니 ‘치유’니 하는 말에 굉장히 학을 떼던 사람 중 하나였다. 진짜로 전쟁터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터진 상처 쯤은 대충 동여매고 다시 무기를 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날아오는 총알에 비명횡사하지 않으니까.
이런 맥락에서, 한때 온갖 SNS를 휩쓸고 지나간 ‘힐링’이라는 유행은, 비교적 한가한 사람들의 보여주기식 무언가라고 치부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호전적이고 오만한 생각이냐만.
그렇게 전쟁터에서 한창 피터지게 싸우던 어느 날. 내 머리 위로 미사일 하나가 뚝 떨어졌다. 그야말로 정통으로 뚜욱, 펑. 피할 틈도 없이, 그리고 미사일이 터진 뒤 도저히 자력으로 상처를 동여맬 기력도 없이 그대로 게임 오버. (비유를 걷어내고 말하자면, 불의의 사건(?)으로 사회초년생 때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현금자산을 몽땅 날렸다.)
“혹시 근처에 힐러 분 계신가요? 저 힐 좀 주세요.”
내가 얼마나 깊은 상처를 입었는지, 지금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일부러 사방팔방 떠들고 다녔다. 그러면 혹시 도움을 줄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그러나 돌아오는 건, HP를 아주 조금 회복시켜주는 빨간 물약 몇 개. 왜냐, 주변인들도 각자의 전쟁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었거든. 남 도와줄 정신이 어딨겠어? 그 HP 회복 물약도 겨우 꺼내줬을 터다.
그러나 그렇게 애써 모은 물약을 다 털어 넣어도 겨우 손가락 몇 개 움직일 힘만 돌아왔을 뿐. 오, 지쟈쓰. 이대로 정말 ‘캐삭’이라도 해야 하나요. 내가 얼마나 극악의 확률을 뚫고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이렇게 죽도 못 쒀보고 게임 종료를 해야 하다니요.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HP 회복 기술을 있는 대로 긁어 써봤다. 규칙적인 산책, 정신과 치료 받기, 새로운 취미 만들기 등등. 안 하던 짓이라 그런지 효과는 미미했다. 그러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명상’이라는 걸 시작했는데.
“혹시, 이거 은둔 고수가 숨겨둔 비기인가요?”
첫 번째 명상을 끝내고 멍하니 앉아 눈만 껌뻑거렸다. 놀랍게도, 고작 10분 사이에 마음이 너무 가벼워진 거지. 나는 명상 같은 건, 티벳에 사는 스님들이나 하는 건 줄 알았다고. 아니면 영화 ‘쿵푸 팬더’에 나오는 판타지 기술이거나. 그런데 이게 ‘현대 대한민국 서울’에서도 먹히다니!
내가 한 거라고는, 고작 침대에 걸터앉아 명상 앱을 켜고, 안내자가 시키는 대로 10분 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열심히 숨을 쉰 것 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스마트 워치에 표시된 내 스트레스 지수는 눈에 띄게 낮아졌고, 맥박도 차분해졌다. 엄마, 이거 진짜 효과 있나 봐.
RPG게임을 시작했다 하면 무조건 ‘원거리 딜러’, 그것도 마법 공격 캐릭터만 골라댔던 내가 처음으로 ‘힐링’의 효험에 놀란 순간이다. 사이비 약장수 같지만, MSG 조금 보태서 현대인 스트레스 해소에 명상이 직방이다. 주변에도 두루두루 추천하고 있는데, 어째 잘 안 먹힌다. 아마 얼마 전의 나처럼 ‘명상’이라고 하면 한가한 신선 놀음 혹은 쿵푸 팬더를 떠올리고 있을 지도?
그래서 되는 대로 야매 명상 일지를 써보려고 한다. 원래 영업 하려면 카탈로그 한 부씩은 들고 다녀야 하잖아. 이걸 명상 영업용 카탈로그로 써먹어야지. 여러분, 명상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