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욱 읽어나가다 보면, 나는 두려움과 슬픔에 빠진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사무직인 나의 일자리를 AI는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지극히 일반적인 사무직스럽다. 여기서 말하는 일반적인 사무직이라 함은, 윗사람의 지시에 따라 (대단하지도 않은) 자료 만들고 보고하고, 또 수정하고, 또 보고하고 그런 일을 말한다. 나의 지금 일이다. 그래서 나는 엔비디아의 주식이 오를수록 나의 두려움도 차오른다. 엔비디아와 하이닉스의 주식이 시뻘게지면, 내 속은 걱정에 시뻘겋게 타들어간다.
고민만 하고 있으면 정신 건강에 해롭다. 그래서 또 책을 들었다. 그런데 AI시대에 별로 도움 되지 않을 법한 책이다. 아마 황젠슨(젠슨 황의 한국식 이름)씨가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될 정도다. 자기 계발서와 경제 서적은 멀리하는 이 몹쓸 독서 습관을 고치고 싶다고 매번 소설을 읽을 때마다 다짐하곤 한다.
'이번이 마지막 소설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런데, 이번 소설책에서 우연히 AI시대 권고사직에 맞서는 작은 혜안을 얻었다면 믿으시겠는가?(소설을 계속 읽기 위한 스스로의 변명은 절대 아니니 끝까지 들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문제의 소설은 김탁환 작가님의 <참 좋았더라>이다. 부제로 <이중섭의 화양연화>인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불우하고 불행했던 화가 이중섭이 아닌, 이중섭의 찬란했던 화가 시절을 집중 조명한 소설이다. 소설의 장르를 택하고는 있지만 김탁환 작가님께서 공부도 많이 하시고, 실제 소설의 배경이 되는 통영에 오래 머무르면서 소설의 완성도를 높였기 때문에 단순 허구의 소설이 아닌, 정말 이중섭은 이랬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과 소설을 오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이중섭과 그의 제자 사이에 있었던(혹은 실제 있었을 법한) 대화를 옮겼다.
나흘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어진 듯 제각각인 풍경화 두 점이 완성되었다. 저물녘 서피랑에서 내려온 이중섭은 저녁도 먹지 않고 곯아떨어졌다. 남대일은 강구안을 담은 스승의 풍경화 두 점을 나란히 놓곤 밤을 꼬박 새웠다. 주먹으로 제 이마를 치며 자책하고 한숨 쉬었다. 나흘 동안 그도 스승을 따라 서피랑에 서서 강구안을 스케치북에 담았다. 바다와 건물과 사람으로 채웠지만 어딘지 허술해 새벽에 깨어난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지껀 우째 이리 휑합니꺼?”
이중섭은 그림을 훑더니 담배부터 찾아 물었다. 속이 쓰린 듯 인상을 잔뜩 쓰며 한 모금 빨았다가 뱉은 뒤 말했다.
“유 선생에게서 폴 세잔 배웟디? 화가에겐 중요한 거이 둘인데, 뭐과 뭐네?”
“눈과 정신이지예.”
“눈으로는 자연을 보는 거이구, 정신이란 무엇이갓어?”
“잘…… 모르겠심더.”
“감각이래 논리를 동반한다!”
“……어렵심더.”
“보이는 대루만 그리문 사진을 어드릏게 넘어서갓네? 해석을 해야디. 나흘 동안 뭘 그렛네?”
“강구안이지예. 저건 동피랑이고 또 이건 남망산…….”
“누가 기걸 몰라?” 제자의 시선이 스승의 풍경화로 옮겨 갔다.
“마찬가지 아입니꺼? 선생님 것도, 이건 강구안이고 또 저건 남망산인데예.”
“똑똑히 보라.”
“모, 모르겠심더.” 강구안을 출발한 여객선이 점점 작아지다가 섬 뒤로 사라지듯, 이중섭이 말끝을 흐렸다.
“물길! 원산에 가 닿는…….”
김탁환 작가님은 이북 출신의 이중섭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일부러 이북 사투리를 그대로 옮겼다고 한다. 그래서 언뜻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대화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20세기 초 화가들의 고민이 잘 드러난다.
그 고민은 바로 ‘사진의 시대에 어떻게 화가들은 살아남아야 하는가?’이다.
(위쪽) 이중섭이 그린 통영 앞바다 (아래) 실제 통영 앞바다
최초의 영속적인 사진은 1825년 조제프 니세포르 니에프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 사진의 발명과 보급이 당시 화가들의 일자리와 밥자리를 심각하게 위협한 것이다. 왜냐하면 19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당시 인정받는 화가의 최고 덕목은 얼마나 실제와 비슷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가였다. 사진기가 없던 시대에는 그림의 목적이 단순했다. 바로 사실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고, 이것이 화가의 존재 이유였다. 하지만 사진기의 발명으로 기존의 화가 존재 이유가 위협받기 시작한 것이다. 어딘가 현재의 모습과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은가?
'AI라는 기술(사진기)의 등장으로 사무직 노동자의 일자리(화가의 일자리)가 위협받는 현상'
나는 예술과 예술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사진기에 맞선 예술가들의 일련의 노력들이 인상주의, 신인상, 후기인상, 야수파, 큐비즘, 상징주의, 표현주의, 미래파, 다다, 추상으로 발전한 것은 안다.
피카소의 '소 추상화 과정'
사진과 같이 '똑같은 재현'이 불가능하고 승산 없음을 깨친 화가들은 전에 없던 상상력을 회화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즉, 전에 없던 그림을 그려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우리도 잘 아는 피카소, 구스타프 클림트, 오스카 코코슈카, 파울 클레, 반 고흐, 이중섭, 천경자, 김환기 등등의 현대에 이름을 남긴 화가들은 그림 자체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도 그림 자체가 대중들의 호기심을 끌었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기억될 수 있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감상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림에 스토리를 부여하거나 화가 자체가 독특한 스토리로 존재해서, 사진기와 차별화를 둔 것이다. 피카소의 언변(혹은 구라), 반 고흐의 압생트, 이중섭의 비극적인 인생 등등의 스토리가 그림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진기(기계)와 대적해서 살아남은 화가들은 결국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로 살아남았다는 게 조심스러운 내 생각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림도, 사람들이 열광하는 스토리도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내가 소설을 끊을 수가 없다.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도구는 AI도 아니고 유튜브도 아닌 소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 소설을 읽고, 소설쓰고 앉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p.s. 이 글을 완성하고 다시 읽어보니 소설을 계속 읽기 위한 치졸한 변명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AI시대이자 또한 한강의 시대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