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으로서 내 경력이 조금은 다채롭고 특이하다 보니 내 지인 혹은 지인의 지인 혹은 지인의 지인의 지인이 간혹 이직에 대한 조언을 구하러 올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조언대신 소설가에 대한 구라를 푼다. (사실 나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위인이 아니기 때문에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얘기는 구라가 딱 맞다)
브런치에 짧게 소개한 나의 작고 귀여운 경력
이직에 대해 고민하는 직장인을 상대로 소설가에 대한 구라라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께서는 '한강의 시대에 또다시 숟가락 얹혀가려는 수작질은 아닌지?' 살짝 의심이 될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끝까지 읽어보면 한강에 대한 얘기도 소설가에 대한 얘기도 아닌 찐 이직에 대한 어떤 작고 귀여운 통찰을 얻어 갈 수 있다. 어쩌면 인생에 대한 통찰까지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나는 소설가를 좋아한다. 소설가의 소설은 당연히 좋고, 소설가의 에세이도 좋아한다. 심지어 하루키*의 소설은 읽어내지도 못하면서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재밌게 완독 했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기 위해 몇 번이나 시도했는데 <노르웨이의 숲>은 절반을 못 넘기고 있고, 1Q84 또한 번번이 몇 장을 읽지 못한채 정체 되었다. 몇 장 읽지 못하고 잠이 오기 때문이다. 유독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 심하게 잠이 온다. (나에게는 졸피뎀보다 하루키의 소설이 더 강력하다) 한 때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내지 못하는 내가, '책을 읽을 자격이 있나?'라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엄청난 다독가인 어떤 작가님도 하루키의 소설은 못 읽는다고 하더라. 이후로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내가 흥미를 느낄 수 없고, 나와 잘 맞지 않는 책은 과감히 읽지 않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받지 않겠노라고. 제멋대로 나혼자 선언했다.
가끔씩은 소설가의 소설보다 소설가의 에세이를 더 기다리는데, 나의 별난 취향이다. 좋아하는 소설가의 소설과 더불어 에세이를 함께 읽으면 좋은 점이 있다.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은 물론이요,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특유한통찰력도 가끔 얻어 걸린다. 개인적으로 여러 소설가들의 십시일반 도움을 받아 그래도 이만큼 인간이 되지 않았나싶다.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도 확장되었고, 이 글의 주제인 '직장인의 이직'에 대한 나름의 가치관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소설가와 이직'에 대한 나의 구라다.
"이직"이란, 우리가 직업적 성장을 위해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고, 어딘가를 떠나야 할 때 맞닥뜨리는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고 성장하기 위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마치 소설가가 이야기 속에서 새 캐릭터를 창조하고, 전혀 다른 세상을 구상하는 것처럼. 그렇다면, 이직에 필요한 기술들을 소설가의 시선에서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1. 자신을 아는 힘 (주인공의 시점으로 바라보기)
소설가는 작품을 쓸 때 등장인물의 내면을 철저히 파악하고, 그 인물의 고유한 목소리를 찾아낸다.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의 강점과 약점, 가치관과 원하는 목표는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상상하고, 내가 바라는 결말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그 결말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경로를 선택해야 할지 나를 주인공으로 놓고 소설가처럼 그린다.
나를 예로 들면, 나는 가장 기본적인 과제인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에 대한 구분'을 못했다. 나는 말로 씨부리고 임기응변과 기지를 발휘해서 상대방을 설득한다거나 영업하는 일을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착각했다. 하지만 나를 알면 알수록 그리고 나를 알려는 노력을 하면 할수록 사람과 부대끼며(특히, 콘대와) 하는 일을, 조금 잘할 뿐이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나의 최근 2년 6개월 전 이직을 할 때도 이러한 나의 성향을 잘 알지 못했는데, 여기에서 오는 괴리와 스트레스로 요즘 뒤늦은 성장통을 앓고 있다. 그럼에도 러키비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다음 이직 때는 절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이 생겼다.
그렇다.. 나는 2.5년 전의 이직으로 지금 정서적 분열 상태를 거듭하고 있다. 스트레스 속에서도 동시에 나를 알아가는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열 상태가 나쁘지는 않다. 분열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안목이 생겼다.이를 바탕으로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적절히 분배해서 다음 이직 때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는 자신감 또한 얻었다. 소설을 읽으며 나를 알아가는 과정 중에 발견한 가장 값진 가르침이다.
2. 끊임없는 수정과 개선 (원고를 다듬는 태도)
소설가는 수없이 많은 원고 수정 과정을 거친다. 초안은 늘 허술하지만, 그 초안을 끊임없이 다듬어가며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이다. 이직을 준비할 때, 우리는 종종 ‘완벽한 상태’로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만, 완벽한 모습은 시간이 걸려야만 다듬어진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도, 나의 커리어 계획도 끊임없이 수정하며, 배움과 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소설가가 한 줄 한 줄 다듬는 열정으로 나 자신을 다듬어가는 것이 이직 성공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3.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새로운 장면을 설정하기)
소설은 여러 장면으로 구성된다. 주인공은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한다. 이직은 이러한 장면 전환과 비슷하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관계와 업무 방식에 적응해야 하는 과정을 소설가처럼 생각해 보자.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이 변화에 적응하며 성장하듯, 새로운 환경에서 배울 자세를 갖추고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다.
4. 작은 것에 담긴 의미 발견하기 (세부 묘사의 기술)
소설가는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 장면, 한 문장이 그 소설 전체의 맥락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직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순간들과 경험들이 결국 새로운 직장과의 적합성을 만들어낸다. 작은 인상과 느낌을 무시하지 말고, 이를 통해 직무와 회사가 나에게 정말로 맞는지 고민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5.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나가는 용기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가능성들을 펼쳐 보이는 일이다. 이직은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을 다시 시작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선택이다. 소설가가 미지의 줄거리를 펼치는 용기로, 나만의 새로운 커리어 스토리를 창조해야 한다. 기존의 경력에서 벗어나려면 두려움이 따르지만, 그 두려움을 뛰어넘어야만 성장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직장인인 나는, 오늘도 소설가에게 배운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있다면 이직이라는 새로운 장을 멋지게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