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어느 평범한 오후. 사무실에서 후배가 쓴 영어 이메일을 검토하던 중, 제 일상을 뒤흔드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처음에는 평소 영어를 잘하는 후배가 이번에도 멋진 메일을 작성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못나고 쩨쩨한 질투심마저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평소 직장에서는 대인배 페르소나를 곧잘 흉내 내는 저였기에, 쿨함을 온전히 끌어모아 영어로 짧게 평가하던 저였습니다.
"Oh. Oh. Good. Perfect."
"팀장님..." 후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사실, 이 메일 ChatGPT 도움 받았어요."
후배의 고백은 제 인생에 큰 균열을 가져왔습니다. 사실 저는 영어에 대한 꽤 큰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국내파'로서 영어 이메일 작성법 책 두 권을 달달 외우고, FIDIC이라는 플랜트 계약서의 정석 같은 수천 페이지 교본을 몇 년간 공부하며 겨우 이메일을 쓸 수 있게 된 사람이었으니까요.
매번 이메일을 쓸 때마다 구글에 문장을 하나하나 넣어가며 최대한 원어민스러운 표현을 찾곤 했습니다. ChatGPT도 그런 수준일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ChatGPT는 전혀 다른 차원의 빅테크였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로 '진짜배기'의 출현이었죠.
처음에는 영어 이메일을 조금 고치는 수준으로만 ChatGPT를 사용했는데, 이제는 그림도 그려달라고 하고, 영어 계약서도 번역해 달라고 하고, 심지어 여행 일정까지 짜달라고 합니다. 이제는 ChatGPT가 없으면 불편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이런 도구를 사용할 줄 몰랐던 제가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1984년생, 우리들의 이야기
저는 1984년생 문과 사무직입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그 1984년 맞습니다. 제가 태어난 해에는 674,793명이 태어났습니다. 참고로 2023년에는 약 23만 명이 태어났다고 하니, 현재 출생률의 약 3배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우리나라의 인구 변화는 꽤나 극적입니다. 1950년대에는 987만 명, 1960년대에는 1,044만 명이 태어났습니다.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죠. 1970년대에도 912만 명이 태어났습니다.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는 매년 약 백만 명이 태어났으니, 최근 출생률의 5배나 되는 숫자입니다.
가뜩이나 좁은 나라에서 인구가 폭발하려 하자, 정부는 대대적인 산아제한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 효과는 즉각적이었죠. 1980년대에는 701만 명으로 줄었고, 이후 90년대 600만 명, 2000년대 459만 명, 2010년대 319만 명으로 급감했습니다.
인구 통계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 추이에서 수많은 시사점을 읽어낸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지식이 부족한 데다 지독히 나르시시스트적인 성향까지 있다 보니, 아주 짧고 이기적인 생각만 듭니다.
'1980년 대생들은 참 힘들겠군... 적지 않은 출생 속에서 죽어라 경쟁을 했고, 많은 수의 베이비부머 부모 세대를 돌봐야 하는 세대잖아...'
40 드루와. 세기의 명작 '신세계'를 찍을 때 황정민 배우도 40 초반이었습니다.
불혹(不惑)이라는 무게
1984년생들은 이제 40줄에 들어섰습니다. 80년생 중간부터 40줄에 들어섰다는 얘기죠. 내년이면 85년생도 마흔이 됩니다(Welcome to 40). 누군가 우리나라는 유교 때문에 망국으로 간다고 하던데, 저도 여기에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바로 이놈의 40, 불혹(不惑) 때문입니다.
불혹은 공자님이 <논어> 위정 편에서 "나이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다"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사실 저는 <논어>를 읽어본 적도 없고 위정 편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불혹이라는 단어의 무게 때문에 40세가 되면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루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압박을 받아왔습니다. 저희 집안이 가난하지만 유서 깊은 유교 가문이다 보니 더욱 그랬죠.
하지만 실제 불혹이 되니,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아니, 있었습니다. 안 좋게 달라졌습니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현실은 팍팍해졌고, 30대 초반 영등포구민배 수영대회에서 핀수영 2등을 했던 날랜 몸은 어디 가고 두툼한 턱살과 풍만한 뱃살만 남은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방심하면 직장인 선배들의 3종 세트를 고스란히 물려받게 될 것 같습니다. 지방간, 고혈압, 고지혈증이 그 주인공들이죠. 물론 핑계는 차고 넘칩니다.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능력이 부족해서 밤늦은 술자리로 보충했다고, 직장 상사들에게 술을 마시며 아부하고 고객에게 술을 올리며 조아렸다고... 그러다 보니 '운동은 먼가요? 운동은 숨 쉬기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잠시 걷는 게 운동 아닌가요?'라고 묻는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기안84'와 '이직84'
같은 1984년생 중에는 '기안84'라는 분이 있습니다. 저와 같은 해에 태어난 674,793명의 신생아 중 한 명이죠. 나이 말고는 저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기안84'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것도 알지만, 이 자리에서는 장점만 언급하려고 합니다. 불호에 대해 많이 언급하면 금세 우울해지는 제 나약한 성향 때문입니다.
저는 우울에 취약한 DNA를 타고났습니다. 광화문 J주치의(몇 년 전 우울증 상담과 치료를 도와준 의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이직84님 같이 우울증이 심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의식적인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그 시작으로 주위 사람들을 볼 때 단점 말고, 장점을 먼저 보는 노력을 하세요. 쉽지만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안84'의 장점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의 최고 장점은 지속적인 콘텐츠 프로바이더 능력입니다. 그 어떤 논란과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웹툰 크리에이터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이죠.
2008년, 우리가 25살이던 때 '기안84'는 데뷔작 <노병가>를 선보였습니다. 그의 군대(의경) 이야기를 담은 웹툰이었죠. 그 후로도 꾸준히 웹툰을 창작했고, 지금의 '기안84'가 되었습니다. 반면 저는 <노병가>를 읽기만 했고, 다른 웹툰들도 읽기만 했습니다. 지금까지 콘텐츠 프로바이더들이 내놓은 작품을 꾸준히 소비만 했죠. 이것이 1984년 동갑내기 '기안84'와 '이직84'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1984년에 태어난 동갑내기 '기안84'
소설 <1984>와 빅테크의 시대
1984년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연관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1948년에 쓰였는데, 작가는 끝 두 자리 숫자만 바꿔 1984를 만들었습니다. 전체주의에 대한 공포와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소설이죠.
2차 대전 직후인 1948년은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 체제가 강화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조지 오웰은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전체주의의 폭력성과 암울함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동물농장>도 전체주의를 풍자하며 그 위험성을 폭로하는 소설이었죠.
전체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굳이 학문적 분석이 필요 없습니다. 38선 너머 북한을 보면 됩니다. 물론 저는 대한민국에도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북한과 비교하면 이곳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1950년 분단 당시만 해도 남과 북은 같은 출발선에 있었지만, 지금의 북한을 보면 전체주의의 끝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죠.
하지만 제가 이 자리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전체주의가 아닙니다. 소설 <1984>에서 빅브라더의 감시와 통제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당시로서는 최신 빅테크(텔레스크린, 디지털 추적)였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윈스턴이 이 체제에 저항하려 했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람마저 배신하고 빅브라더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 이유도 이 빅테크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984년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 주인공 윈스턴이 두려워했던 것처럼 저도 빅테크 때문에 두렵습니다. 인간이 불안한 근본적인 이유는 막막함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시계와 달력을 꼽습니다. 끝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인간의 정신줄을 잡아주고 불안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이 바로 인간들의 약속, 즉 시간과 날짜라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