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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배우는 꼰대 직장인

러다이트 운동과 AI

by 바그다드Cafe

러다이트 운동: 기계화에 맞선 인간의 저항


어느 직물공의 이야기


1811년 영국 노팅엄의 어느 추운 겨울밤. 한 방직공장 앞에서 수십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망치와 도끼가 들려있었고, 얼굴은 스카프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이었던 잭 밀턴은 10년간 자신이 익혀온 직조 기술이 새로 도입된 기계 때문에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 기계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으란 말인가!"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들이닥쳤고, 그날 밤 수많은 방직기가 파괴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러다이트 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현대의 러다이트


2024년 어느 날, 저는 한 후배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습니다. "팀장님... 사실, 이 메일 ChatGPT 도움 받았어요."


잭 밀턴이 망치를 들었던 그 순간과, 제가 ChatGPT의 능력 앞에서 충격을 받은 순간이 겹쳐집니다. 213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인간은 여전히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요?


러다이트 운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하지만 러다이트 운동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한 기계 파괴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했던 것은 기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가져올 삶의 근본적인 변화였습니다.


당시 영국 정부는 1812년 '프레임 브레이킹 법(Frame Breaking Act)'을 제정해 기계 파괴를 사형에 처하는 중범죄로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후 노동조합 운동이 시작되고 노동자의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러다이트 운동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환경 개선과 노동자 권리 신장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저항은 단순한 파괴가 아닌, 새로운 시대에 대한 준비를 촉구하는 경고였던 셈입니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을 때만 해도, 많은 사무직 종사자들은 그것이 자신의 일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그랬죠. 하지만 ChatGPT의 등장은 다릅니다. 이제 AI는 영어 이메일을 쓰고, 계약서를 검토하고,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러다이트처럼 AI를 두려워하고 저항해야 할까요? 아니면 다른 길이 있을까요?


흥미로운 점은, 러다이트 운동 이후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기계를 관리하고 수리하는 기술자, 공장 관리자, 품질 관리자 등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결국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없앤 것이 아니라, 일의 형태를 바꾸어놓은 것이었죠.


저항을 넘어서: 적응과 혁신으로


러다이트 운동이 끝난 후, 영국의 직물 산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놀랍게도 더욱 번성했습니다. 기계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도 함께 찾아왔습니다.


많은 수공업 직조공들이 공장의 숙련공이 되었고, 일부는 기계를 관리하고 보수하는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오히려 더 많은 종류의 직업이 생겨났죠.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현대의 '기계 파괴자'가 되지 않으려면


요즘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자주 듣습니다.


"ChatGPT 같은 거 쓰면 실력이 늘지 않아."


"AI에 의존하다가 나중에 다 잃게 될 거야."


"결국 AI가 우리 일자리를 다 뺏을 텐데..."


이런 생각들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AI는 우리가 하던 많은 일을 대체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태도는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과 다를 바 없습니다. AI를 거부한다고 해서 변화가 멈추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직장 생활을 시작한 2011년만 해도 영어 계약서 작성과 검토는 전문가들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ChatGPT가 순식간에 계약서를 검토하고 수정합니다. 처음에는 저도 이 변화가 두려웠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제 전문성이 무너지는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AI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AI와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걸요.


새로운 길을 찾아서


213년 전 러다이트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했던 것은 기계 파괴가 아닌 '적응을 위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변화는 피할 수 없었지만, 그 변화에 적응할 시간과 기회가 그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죠.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그들보다 더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AI의 발전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고, 우리는 지금도 적응할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현시대의 '적응'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AI를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새로운 도구로 받아들이기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강점 발견하기

AI와 협업하는 방식을 배우고 실천하기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고 도전하기


러다이트 운동은 실패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남긴 교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변화는 피할 수 없지만,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다음 편에는 <AI 시대의 현대판 러다이트를 넘어서: 구체적 생존 전략>이라는 주제로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많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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