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물결 속에서
2011년부터 시작된 제 직장 생활과 업무는 변화의 연속이었습니다. 첫 업무는 해외 플랜트 수출이었습니다. 플랜트란 쉽게 말해 크고 비싼 공장입니다. 당시만 해도 이 분야는 한국의 핫한 직종 중 하나였죠. 중동의 오일머니를 타고 플랜트 시장이 활황이었고,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로망이기도 했습니다.
해외 플랜트를 수출하려면 영어가 필수였습니다. 그것도 그냥 영어가 아니라 복잡한 계약 용어와 기술 영어에 능통해야 했죠. 특히 FIDIC이라는 국제표준 플랜트 계약서는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악명 높은 문서였습니다. 신입사원들은 이 계약서를 붙들고 씨름하며 밤을 새웠습니다.
신입 시절, 제가 모시던 부장님 한 분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분은 영어로 된 플랜트 계약서를 직접 작성하고 외국 고객들과 능수능란하게 협상하시던 분이었습니다. 다른 능력은 부족하다고 스스로 말씀하시곤 했지만, 계약서 작성과 협상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죠.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실력으로 승부하시는 분이라 윗사람들에게 아부를 전혀 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모두가 그분이 임원이 될 거라 믿었고, 저 역시 그분을 롤모델로 삼았습니다. 열심히 영어 이메일 책을 사서 읽고, 영어 계약서를 공부했습니다. 30년만 버티면 저도 위에 아부하는 기술은 좀 부족하더라도 그 부장님처럼 승진도 하고 임원도 되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가 취직할 때부터 이미 큰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2000년대에 개발된 아이폰이 2009년 한국에 보급되었고, 2011년에 저도 아이폰 4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 작은 기계가 세상을, 그리고 제 밥그릇을 어떻게 바꿀지 전혀 몰랐습니다.
지난 13년 동안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코로나를 거치며 세상은 빠르게 변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변화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Chat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의 탄생입니다. 이제는 복잡한 계약서도 AI가 순식간에 검토하고, 전문적인 영어 이메일도 몇 초 만에 작성합니다. 13년 전 그 부장님의 핵심 역량이었던 업무들이 하나둘 AI로 대체되고 있는 겁니다.
'태생적 문과'의 불안
요즘 은행권의 대대적인 희망퇴직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코로나 이후 이런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죠. 폰뱅킹의 발달로 은행원이 필요 없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저 역시 곧 대체될 운명은 아닐지 두렵습니다.
실제로 충격적인 경험이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집값이 미친 듯이 뛰어오르던 때, 저도 '영끌'을 했습니다. 집안에 있던 동전까지 긁어모아 작고 귀여운 아파트 한 채를 샀죠. 당연히 대출이 필요했는데, 놀랍게도 적지 않은 몇 천만 원의 대출이 스마트폰으로 3분 만에 승인되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은행 창구에서 김 계장님께 대출 신청을 하고, 김 계장님은 이 과장님께 다시 승인을 받고, 이 과장님은 지점장님께 최종 OK를 받는 식이었습니다. 며칠을 기다리는 건 기본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스마트폰과 신용만 있으면 됩니다. 육개장에 물을 부어놓고 대출 신청을 하면, 육개장을 먹기도 전에 돈이 통장에 들어옵니다. 물론 저는 쫄보라서 육개장은 커녕 덜덜 떨면서 신청했지만요.
특히 저처럼 숫자와 기계에 약한 '태생적 문과'는 이런 변화에 더욱 취약합니다. 얼마 전 유시민 작가님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다가 '태생적 문과'라는 표현에 처음에는 위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과적인 내용을 능숙하게 다루는 유시민 작가님의 책을 보며 오히려 더 큰 좌절감이 들었죠.
가정에서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맞벌이를 하면서 36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데, 아내가 육아의 9.3을 담당하고 저는 고작 0.7을 담당합니다(물론 이 숫자도 제 주관적인 계산입니다). 게다가 아내는 재테크도 전담하는데, 저보다 훨씬 돈과 숫자에 밝거든요. 이과 출신인 아내 덕분에 가정 경제는 그럭저럭 굴러가지만, 최근에는 연말정산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한바탕 혼이 났습니다.
'이직84'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이렇게 고민하던 중에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에게는 꿈이 하나 있습니다. '기안84'처럼 콘텐츠 제작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태생적 재능 없음과 게으름이 폭발적인 시너지를 일으켜서 지금까지 제대로 된 콘텐츠 하나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허황된 꿈 꾸기는 계속했습니다. 꿈꾸는 데는 별다른 자본이 들지 않았으니까요.
그동안 단편소설을 웹소설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테러를 주제로 한 중편소설도 써봤습니다. 한 웹툰 제작자와 작품의 웹툰화를 논의하기도 했죠(물론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게 생각을 글로 조금 써내는 것밖에 없더군요.
14년의 직장 생활 동안 저는 2.5번의 이직을 경험했습니다(왜 2.5번인지는 천천히 풀어나가려고 합니다). 몇 년 만에 11위 대기업으로 성장한 회사에도 다녔다가 그 회사가 망하는 것도 직접 봤고, 망하는 와중에도 운 좋게 대기업 종합상사에 중고 신입으로 입사했으며, 코로나 시절에는 국내 굴지의 배터리 회사를 거쳐 지금은 배터리 소재를 만드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군 복무를 했고, 이라크에서 3년간 플랜트를 팔았으며, 버마에서 시멘트 공장 외노자로 일한 경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 커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동안 틈틈이 책을 읽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참 지랄맞고 궁색한 인생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고생도 많이 했고, 중간중간 눈물도 많이 훔쳤습니다. 우울증에 취약한 DNA에 불우한 어린 시절까지 겪었으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이 불안을 잠재우고자 제 나름의 시계와 달력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원래 제목은 '80년생 문과 사무직 꼰대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직을 준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였는데, 줄여서 '이직84'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직을 준비하는 마음'은 단순히 새로운 직장을 찾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급변하는 시대란 결국 변화를 의미하는데, 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아포리즘으로서 '이직을 준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ChatGPT는 제가 13년간 쌓아온 영어 실력을 단 몇 초 만에 무력화시켰고, 스마트폰은 수십 명의 은행원이 하던 일을 3분 만에 처리합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 특히 저처럼 숫자와 기계에 약한 문과 출신 사무직들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요?
꽤 많은 책을 읽었지만, ChatGPT 시대를 살아가는 1984년생 문과 사무직이면서 우울증에 취약한 DNA를 보유한 불혹의 아저씨를 위한 책은 없더군요. 그래서 저만의 시계와 달력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이 글이 단순한 이직 성공담이나 연봉 협상 팁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신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평범한 직장인의 고민과 도전이 담긴 이야기가 되길 바랍니다. 저처럼 어정쩡한 불혹의 사무직, 엔지니어 마인드라고는 1도 없는 문과 직장인들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한 재능도, 뛰어난 능력도 없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남으려 합니다. 이 글이 저와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