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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Dec 07. 2024

벌거벗은 상무님

동화에서 배우는 꼰대 탈출법

저에게는 36개월 된 아이가 있습니다. 이제는 제법 말도 할 줄 알고, 동화책도 봅니다. 저는 육아에 거의 빵점임으로 아이와 함께 있을 때만이라도 재밌게 놀아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잘 안됩니다) 그 일환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동화책을 시간이 될 때 함께 봅니다.  


지금 아이의 동화책을 보면, 30년 전 제가 봤던 동화책과는 수준이 다르더군요. 하지만 지금 동화책의 수준이 훨씬 높아도,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 내용이 문득문득 생각나는 걸 보니 아이 때 배운 '조기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습니다.


아래는 지인 C의 이야기와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벌거벗은 임금님>에 대한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직장에서 만난 A 상무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꼰대 상사'였습니다. 그는 늘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습니다. 회의에서 후배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예전에 우리가 다 해본 거야. 안 돼."


하지만 그가 '다 해봤다'는 그 시절은 이미 20년이 넘은 과거였고, 그때의 성공 방식은 더 이상 지금의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회사는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뒤처져 가고 있었지만, A 상무는 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의 모습은 마치 동화 속 벌거벗은 임금님과 닮아 있습니다. 임금님이 새 옷을 입었다며 거리를 행진할 때, 아무도 그에게 "벌거벗었다"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임금님의 권위 앞에서 진실을 말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벌거벗은 상무님


마찬가지로, A 상무의 '완벽한 세계' 안에서는 그가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지적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후배들은 그의 고집과 권위에 눌려 "네, 상무님"이라는 대답만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A 상무와 넵무새들' 입니다. 마치 동화 속 신하들이 보이지 않는 옷을 칭송하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의 막내 사원이 용기 내어 말했습니다.


"상무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방법은 요즘 시장 상황에 맞지 않습니다. 다른 접근법을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순간, 회의실 공기는 얼어붙었습니다. 모두가 그 말을 한 막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A 상무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침묵하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래? 그럼 네 말대로 한 번 해봐. 결과로 보여줘."


그 일이 있고 나서, 팀의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막내의 아이디어는 예상보다 훨씬 큰 성공을 거뒀고, A 상무도 자신의 방식이 언제나 정답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꼭 '해피엔딩'만은 아닙니다. 제가 저의 소망을 담아 임의로 결말을 바꿨기 때문입니다. A 상무는 여전히 '벌거벗은' 채로 혼자만 모르게 회사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많은 경우, 현실의 꼰대 상사들은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개인의 용기뿐만 아니라, 그 용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사와 조직 문화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느 순간 '벌거벗은 꼰대'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이 내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실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것입니다. 꼰대가 되는 것은 시간이 만든 결과일 수 있지만, 꼰대에서 벗어나는 것은 자기 성찰과 변화의 용기에서 비롯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어린아이였을 때,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법에 대해 다 배웠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벌거벗은 임금님'을 기억하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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