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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Jul 07. 2024

진로에 대해 고민인 분들을 위한 글

카카오와 해외 건설 노동자(feat. 운칠기삼)

주의: 이 글은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쓰여졌으나, 역설적이게도 실질적인 도움은 1도 되지 않으니 미리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즉, 진로때문에 고민인 분들에게 다른 시각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진정한 직장생활 시작의 기준은 무엇일까? 단순히 돈벌이의 크기일까? 아니면 근무기간일까?그렇다면 내가 17년 전에 웨이터로 도합 2년여 일하면서 월평균 3백만 원 이상을 벌었으니, 나의 첫 직장은 XX단란주점인 것일까?(XX단란주점에서 웨이터로 오래 일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진정한 직장이란 4대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중, 특히 건강보험) 가입 가능한 직장이다.


내가 왜 4대보험을 강조하냐면,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김민섭 작가님을 통해 4대보험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는 너무 당연한 4대보험이 어떤 직장과 일자리에서는 너무 당연히 거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책을 통해 시간강사들이 제대로 된 4대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이는 시간강사들의 불안정한 고용 상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4대보험의 적용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임을 강조하며, 시간강사들도 정규직 교원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잠깐 그의 인터뷰를 살펴보자.



“결혼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학자금 대출을 받고, 시간강의를 하면 카드가 밀리고 용돈을 버는 수준이지만 유지는 되는 상황이었요.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서 생계비가 늘어나고 무엇보다 건강보험이 필요했습니다. 시간강사는 4대보험이 되지 않거든요. 그래서 많은 선배들이 부모님의 ‘피부양자’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결혼을 해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혼인신고를 하면 부양자가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때는 모든 상황이 그랬습니다. 

시간강사 수입으로 아내에게 80만 원을 생활비로 가져다 주는 상황이었는데 지역가입보험료는 10만 원이 넘었습니다. 당시 저에게 필요한 것은 한 달에 50만 원의 추가수입과 건강보험이었습니다. 맥도날드에서는 월, 수, 금요일 또는 주말 구인광고를 보고나서 다음 날부터 물류상하차 일을 시작했습니다. 마침 월, 수, 금요일에는 오전 강의가 없었습니다. 또 건강보험도 보전해주고 여러 사회적 보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월수입 130만 원으로 세 식구가 어떻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끼니는 당연히 학생식당, 맥도날드에서 해결했죠.(웃음) 한 번은 아내가 보건소에 갔더니 한 달에 달걀과 감자, 쌀을 두 번씩 보내주는 영양플러스라는 제도를 안내받았습니다. 제도의 혜택을 받으려면 소득증명을 건강보험으로 하는데 당시 납부금액이 1만4천500원이었습니다.

납부금액을 본 뒤 보건소직원이 ‘0이 하나 빠진 것 아니냐, 이정도면 지역에서 가장 적게 내는 편’이라고 전해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마 지역가입자로 10만 원을 납부하고 대학강사만 했다면 이런 보장도 못 받았을 겁니다. 맥도날드 알바가 우리 가족 생계에는 큰 도움이 됐습니다.

새벽부터 점심까지는 알바를 하고, 점심부터 저녁까지는 강의를, 저녁부터 새벽까지는 논문을 준비했습니다. 그때는 치킨 한 마리 시켜 먹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냥 평균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로서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의 삶이고, 본가에서 지원을 받아서 성과를 내면 좋겠지만 그것은 특별한 경우죠.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결혼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진 것 없이 결혼해서 책도 쓰고 그랬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웨이터로 일하면서 꽤 많은 돈을 벌었으나, 4대보험 가입은 불가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 덕분에 학자금 빚 없이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휴학하고 돈 버느라 졸업이 꽤 늦긴 했지만, 오히려 학교 졸업할 때 수중에 2백만 원 정도가 남았었다. 그렇게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한 후 처음으로 4대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내가 취직 후 직장생활을 했던 해가 2011년 이었고, 취직을 준비했던 때가, 2010년이었다. 당시는 이명박 대통령의 아우라가 나라 전반에 영향을 미친 상태였다. 건설, 플랜트, 조선, 에너지 등등 중후장대형 회사가 인기였고, 실제로 그런 회사가 정부의 지원도 많이 받는 것처럼 보였다.(멀쩡한 강 뒤집기라든가...) 나는 문송 중에서도 가장 문송한 어문학과 출신이다. 그것도 대중적인 언어(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등) 아닌 소수어과. 그래서 대학원에서 더 깊게 통번역을 공부하는 것 외에는 대학교 졸업장 만으로 취업을 하기가 더 어려워 보였다.


선택지가 많이 없다고 생각했던 당시의 나는, 시대가 요구하는 쪽으로 열심히 준비를 했고, 플랜트 해외영업직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휴학하고, 알바하고, 또 틈틈히 토익 공부하고, 정말 고단하게 살았드랬다...ㅠ)


비슷한 시기에 졸업한 동기와 선후배들도 배를 해외에 팔기 위해, 공장을 해외에 팔기 위해, 전자 제품을 해외에 팔기 위해 사회로 사회로 흘러가게 되었다.


내 주위 어문계열 친구들은 그나마 익숙한 회사나 공기업 쪽으로 많이 도전했다. 그것도 대부분 경영학을 복수 전공해서 해외영업직 혹은 경영관리직으로 지원했다. 선택폭이 무척 좁을 수 밖에.


중에 우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O라는 친구가 있었다. 나의 같은 과 동기 U의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우리는 같은 대학을 같은 시절에 다녔다. 하지만 O와 나는 특별히 친해질 기회가 없었던지라, 얼굴 정도만 알았다. (U에 따르면, O는 컴퓨터 게임에 심하게 중독 되어 거의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고, 겨우겨우 최저 점수를 맞추고 졸업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졸업할 무렵 U로부터 O의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바로바로 카카오에 취직했다는 것!


내심 우리는 안도했다. '그래, O는 대학 생활 내내 게임만 열심히 했으니깐... 당연한 결과겠지... 그런데 문자메세지 회사가 직원은 왜 뽑지? 월급은 줄 수 있으려나? 4대 보험은?'


하... 그랬다. 2010년의 나와 U는 정말 세상을 있는 그대로 믿었다.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도 모른채... 이미 미래는 다가 와 있었음에도. U는 아이폰 3를 샀었고, 나는 아이폰 4를 샀었다. 그리고는 아이폰 3와 4를 이용해서 카카오톡을 하며, '오... 이거 편하네. 재밌네.' 라고만 했다. 딱! 거기까지. (U는 배만드는 회사에 취직해서 울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지금은 배는 팔지 않고, 같은 회사 제품의 포크레인을 팔고 있다)


그 후, 종종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O는 김범수 의장의 오른팔의 왼팔이 되어, 카카오 그룹에서 승승장구 했고, 지금은 당당하게 카카오 계열사의 임원이 되었다. 또한, 카카오 그룹 초창기 멤버로 인정받아 주식도 액면가로 많이 받았다고 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백억 원대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U도 편하게 만나지 못한다고, 쓸쓸하게 U가 전했다. (U야... 그래도 나는 항상 그 자리에 있잖니. 언제든지 너는 나를 만날 수 있잖니)


나는 지금 O를 만날 수도 없고, 친구가 아니기 때문에 카카오톡 메세지를 보낼 수도 없다. 그래서 물어볼 수는 없으나, 추측컨데 아마 O는 대학시절 컴퓨터 게임에만 빠져 있었던 건 아니였을 것이다. 열심히 미래를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대통령이, 나라가, 해외로 나가서 건설 근로자가 되어 열심히 달러를 벌어오라는 주문을 걸어도 넘어가지 않았나싶다. 물론, 내가 정한 진로를 나라탓, 대통령탓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덕분에 나는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었고, 지금의 내가 있지 않은가? 4대보험도 가입한 직장에 여전히 다니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4대보험이 다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2010년에 카카오는 4대보험을 보장해줬을까... O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하지만 정말정말 그럴 가능성은 없을까? O가 졸업할 때 쯤, 취직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스펙은 준비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주 우연히, 밤새 게임을 하다가 뜬 카카오 취업 공고 배너를 보고 재미삼아 지원했는데… 합격했다… 그리고…


O 사연을 접한 이후로, 부단히 미래를 보려고 두 눈 부릅뜨고 살았다. 그래서 배터리 회사로도 이직까지 했다. 하지만 코로나때 배터리 분야가 반짝 뜨고는 지금은 시장이 매우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챗GPT는 좋아하면서 엔비디아 주식은 사지 않았다. 마치 아이폰 4를 쓰며, 아이폰 좋다고 그렇게 찬양을 하면서 카카오를 사과 주식을 외면 했던 것처럼. 역사는 반복되나 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운칠기삼이라고… (만약, 위에 의심이 맞다면, 운칠기삼이 아니라, 운구기일, 아니 운십 운백 운천이지 않을까)


운칠기삼. 운이 7할이고, 노력이 3할이다"라는 뜻. 이는 인생에서 성공이나 성패가 운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고, 개인의 노력은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음. 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노력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는 표현임. 


이 글은 웨이터 급여 오픈과 4대보험으로 시작해, 살짝 정권을 비판했고, 그리고 카카오 계열사에 있는 동갑내기 O 임원을 부러워하며 고상하게 사자성어로 마무리 지었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글이다. 하지만 인생도 진로도 가끔씩 종잡을 수 없게 흘러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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