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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희 Jan 05. 2024

제너럴리스트

시즌 1-10


제너럴리스트


제너럴리스트는 모든 분야에 대하여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3년간 전략기획실에서 내가 한 업무들을 정리해 보니,

사업 기획, 사업 개발, 해외영업, 마케팅까지 개발 빼고 다 경험했는 생각이 들었다.

전략기획실에서는 소위 대표님의 수족으로 전사 전략 기획, 신규 사업 검토를 진행했고, 해당 사업 추진 부서가 업무진척도가 더디거나, 헤매고 있으면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전담하게 되었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VR 키즈카페였다.

VR은 콘텐츠 특징 상 HMD를 착용해야 하는데, 어린이들은 착용은 어려울 수 있어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공간을 구성하고, 사업성을 검토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으로 떠났다. 

단순 체험 위주의 지난 출장과는 달리, 이번 미팅은 콘텐츠 개발사와의 미팅, 사업추진을 위한 조건 협의를 해야 했다. 팀원들과 같이 떠난 첫 해외출장이기도 했다. 걱정과 달리 중국 파트너와도 능숙하게 대화를 진행하고, 중국 특유의 접대 문화도 상황에 맞게 잘 대처할 수 있었다. 열심히 논의한 것과는 별개로 공간 사업 특징 상 비용은 매장의 규모, 위치, 인테리어 등에 따라 상이했고, 자사 콘텐츠 판매에 있어서 수익성이 낮다고 결론을 내렸다.

중국 업체와 미팅


세 번째 프로젝트는 비트세이버 IP사업이었다.

당시 비트세이버는 체코의 인디게임 개발사 비트게임즈의 콘텐츠로 개발자 5명이 만든 VR게임이었다.

(이후 2019년에 페이스북에 인수가 되고 현재까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게임스컴에서 비트게임즈 콘텐츠를 보고 회사 내부에서는 퍼블리싱 계약을 맺고 사업화를 하기 위한 논의가 한참이였다.

비트게임즈 측과 세부 조항을 두고 치열한 논쟁과 양보가 여러 번 반복된 이후, 계약이 성사되고 한국과 일본, 중국, 홍콩, 마카오,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국가에 VR기기와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었다.

HMD 대중화가 어렵다면 기 구축된 아케이드장을 활용해서 제2의 펌프가 돼 보자는 비전으로 하드웨어 생산을 위해 무더웠던 8월 중국 광저우 공장을 방문하고, 생산부터 발주, 설치, 운영까지 프로세스를 구축해 사업화 준비를 했다. 좋은 IP를 확보했고, 국내 사업팀 인력 충원까지 하면서 좋은 성과가 기대됐다.

국내외로 좋은 반응이 있었지만, 하드웨어 유지보수, 콘텐츠 라이선스 비용으로 매출 대비 수익률은 높지 않았다. VR B2C시장이 정체한 와중에 B2B 시장을 공략해 수익창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깨달았다.

2019년 중국 VR 포럼


첫 번째 프로젝트였던 국내 VR 테마파크가 안정적인 매출을 내면서 중국, 미국 등 해외 진출을 위한 준비와 동시에 공간사업 기반의 신규 사업 검토가 많아졌다. 중국 시안에 VR테마파크를 구축하기 위해 12시간씩 현지 사업자와 미팅하고, 공사장에서 몇 날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중국 시안 VR SQUARE 구축 현장


여러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며 나에 대한 무용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해외에서도 담판을 지어 불리했던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거나, 현업부서에서 못했던 일들을 며칠 만에 해냈다 등등이었다. 사실 현업부서에서 진행해던 일들을 도와주는 역할에 불과했는데, 중요도가 높고 시급했던 일을 하다 보니 성과가 눈에 보이기 쉬었기에 그런 말들이 생긴 것 같았다. 사실 나는 대표님과 함께 근무를 하면서 다이어리에 모든 것을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아는 게 없어서 대표님 입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던 이유도 있었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내가 기록한 일들 중에 내가 해야 할 일과 일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었고, 회사가 돌아가는 구조가 눈에 훤이 보였다. 상황 변화에 대한 적응은 덤이었다.

정신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보니, 주변에서 일을 잘한다는 칭찬을 듣는 날이 많아졌다.

대표님은 회사에서 여자 임원은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최초로 여자 실장을 시키고 싶다는 말을 본부장님들 앞에서 여러 번 하셨다.

내가 지금껏 본 여자 직원들과 다르다는 말과 함께.

직장생활을 하면서 칭찬을 듣는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기분 좋은 일이었다.

매번 새로운 일을 맡아 알려주는 사람도 관련 전문 지식도 없었던 내가 오로지 내 감각만으로 일하고 성과를 낸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되돌아보니, VR회사에서 일잘러 탄생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대표님 주재 회의까지 올라온 아젠다는 항상 이 업무는 어느 부서에서 할 것인지 결정하는 ‘업무 핑퐁'이었다. 업무 핑퐁은 논리가 아닌 정치력, 때로는 각 부서장의 파워게임으로 이어졌다. 

모든 본부장님들이 거절하면, 최후에 대표님은 말씀하셨다.

“김팀장, 할 수 있지?"

그러면 나는 항상 "네"라고 대답했다.

애초에 나에게 선택권이 없었고, 나의 부정적인 대답으로 대표님 얼굴에 먹칠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고래싸움에 끼어들어 새우등이 터지는지도 모른 채, 인풋이 압도적으로 많으면 아웃풋은 절로 좋아지리라 믿으며 반강제적 워커홀릭이자 제너럴리스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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