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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희 Dec 29. 2023

오기(傲氣)

시즌 1-9.  


기(傲氣)

오기 뜻은 능력은 부족하면서도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다.


우여곡절 끝에 입사하자마자 첫 일본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부사장님 : 서비스 매뉴얼을 만들어야 하는데 일본어 할 줄 알아요?

나 : 아니요

부사장님 : 일본어도 못하는데 가서 어떻게 하려고 해요?

나 : 영어로 대화하고 정 안되면 파파고(papago)로 해보겠습니다.

부사장님 : (어이없어하는 표정) 실장님 오라고 하세요.



일본 출장

3박 4일 일정에 방문한 VR매장만 10곳이 넘었고 월요일 출근날이 돼서 회사에서 출장 보고서를 작성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처음 선보이는 문서이자 핀잔을 듣고 떠난 출장이었으니 주말 내내 심혈을 기울여 작성하고 월요일 오전에 제출했다. 단순 보고서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실제 오프라인 매장을 준비할 때 참고할만한 모든 것을 정리했다. 참 오랜만에 발동한 오기였다.


<출장 보고서 리스트>

(1) 상황 분석

- 시장 흐름/현황

(2) 시장 조사

 - VR체험관/ 콘텐츠별 유형 분류 (MOT 접점 프로세스)

- 방문지 상세 내용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휴먼웨어)  

(3) 인사이트/시사점

- 인사이트 요소 도출 및 적용 안 제안

- 콘텐츠별 고객 대응 매뉴얼 정리 (VR기기 특징 상 오퍼레이터가 고객의 HMD 탈착, 컨트롤러 사용, 콘텐츠 이용 방법을 모두 안내하고 콘텐츠에 몰입할 수 있는 서비스 멘트를 개발해 사용한다.)


보고서를 제출 한 지 30분 만에 대표님의 회신 메일을 받게 되었다.

' 오늘 오후 3시 본부장 회의에서 발표하세요.'

그렇게 내가 가진 재능과 강점을 꽃피울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주신 대표님과의 첫 만남을 하게 되었다.


입사한 지 3개월 후, 

나는 연봉인상과 함께 최연소 여자 팀장이 되었다.


대표님 : 20년간 여기서 같이 일한 실장, 본부장들도 나한테 칭찬들을 일이 손에 꼽는데,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내가 3번이나 칭찬을 했지? 너는 보통애가 아니다.

나 :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표님 : 전략기획실 팀장 해봐라


200명이 안 되는 규모의 중소기업,

연봉은 포괄임금제였고 내 초봉은 고작 2,900이었다.

가끔은 내가 넷마블 공채가 되었다면 지금의 2배는 벌텐데라는 생각에 괴롭기도 하고, 처음 해보는 전략기획실 직무를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불 가리지 않고 주어진 일이 무엇이든 최선을 다했던 건 8할은 나 스스로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남이 아닌 나에게 증명하는 삶 말이다.

면접관에게,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매 순간 내가 한 선택들을 평가받았던 시간들은 참 잔인했다.

최고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했던 순간과 선택들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증명하고 그때의 나를 응원하고 싶었다. 나에겐 오로지 기회가 없었을 뿐, 나에게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아쉬움에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삼켰던 그 말,
'나도 잘할 수 있는데...'
이제 이 말 대신, 잘해보자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었다.


내일이 무섭고 두렵고 혼자인 것 같아 눈물 나는 하루를 보냈던 지난날, 

평범한 안정보다 불안한 변화를 선택한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끼자는 마음이 들었던 그날,

어쩌면 포기하지 않으면 인생은 내 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모든 도전, 그 여정에 아낌없이 애정과 사랑, 위로와 축하를 해준 친구들에게 언젠가 나도 도움이 될 날을 기대하며 그렇게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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