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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씨 Feb 04. 2023

네가 이유 없이 좋아

샌디에이고, 미국


2011년 미국에서의 시간 속 가장 사랑하는 풍경,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몰을 꼽는다면 주저 없이 이 한 장의 사진을 고르겠다. 


엄마 친구 아들 그리고 미국 교환학생 시절을 함께 보냈던 동생과 코로나도 섬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샌디에이고 시내가 잔잔히 내려다보이는 섬을 천천히 돌아 나오는 길에 우연히 마주한 풍경에 차를 세웠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의 색이 너무나도 선명해 비현실적일 지경이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양 뺨으로 느끼며 앞으로 어떤 시간에 어떤 곳을 가더라도 지금의 일몰이 가장 사랑하게 될 풍경임을 확신했다. 별 이유는 없었지만 그랬다.


살면서 정말 몇 번 없지만 때때로 이유 없이 사랑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이유 없이 좋아하는 사람, 이유 없이 좋아하는 물건, 이유 없이 좋아하는 행동. 왜냐고 물어도 딱히 별다른 이유를 붙일 수 없이 마음을 쏟게 되고 계속 해서 생각이 나는 것들. 그런데 오히려 그렇게 이유 없는 것들이 나라는 충족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와 값어치를 따지지 않고도 사랑하게 된 것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해주고 앞으로의 미래를 물 흐르듯 이끌어 간다. 그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나만의 온전한 행복이 피어나는 것이다.


샌디에이고에서의 이 순간 이후 내가 일몰을, 시간의 경계선을, 화려하게 대비되는 색의 그라데이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여행을 가서도 일몰을 보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행복할 수 있음을 항상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샌디에이고는 미국에서 제일 좋아하는 도시가 되어 너무나도 당연히 교환학생으로서의 마지막 여행지로 다시 방문했다. 암트랙을 타고 산타바바라에서 샌디에이고로 넘어가는 동안 혼자 그리고 완벽히 일 년을 마무리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당시 함께 있던 오빠에게 이 사진을 다시 보냈는데 놀라운 소식을 알려주었다. 2022년 가장 좋아했던 영화인 <탑건>이 이 브레이커스 비치(Breaker's beach)에서 촬영되었다고 했다.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 해변에서 톰 크루즈가 대원들과 미식축구를 하던 그곳이었다. 


처음에는 이유 없는 우연으로 시작했건만 점점 필연으로 이유가 덧대어진다. 유치하지만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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