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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Apr 13. 2022

01_나이 현기증

홍 편집


(tumblr.com)



(전화 통화)

[홍 편집] “선생님, 오랜만에 차 한 잔 하시면서 말씀하시죠.”

[명 작가] “그럴까. 이번에는 홍 팀장이 홍대로 와요.”     


날씨 좋고~ 바람마저 살랑살랑~

근무시간에 밖에 나오면 항상 느끼는 이 야릇한 기분.

세상의 색이 한 단계 짱짱해진 느낌.     

 

(버스에 올라탄다)

흠흠~ 버스도 텅 비었군.

다리 짧은 나의 지정석은 바퀴자리!     


[버스 라디오] “70~80년대 인기가수이자 명MC였죠. 고(故) 박상규 씨가 부릅니다. 조약돌.”

(노래 흘러나옴)

“꽃잎이 한 잎 두 잎 바람에 떨어지고

짝 잃은 기러기는 슬피 울며 어딜 갔나~“   

  

햐, 저 노래 진짜 오랜만이다. 애기 때 뜻도 모르고 따라 부르던 노래~

이게 이런 가사였구나.      


“여름 가고 가을이 유리창에 물들고

가을날의 사랑이 눈물에 어리네~”     


(아련하게 생각에 잠긴 홍)     


[앞자리 경로석의 70대 부인이 무심결에 따라 부름]

“내 마음은 조~약돌~ 비바람에 시달려도~ 둥글게 살아가리~”

흥얼흥얼~    

 

(아련하게 바라보는 홍)

울 엄마도 저 노래 좋아했는데.

아흑, 안구를 압박해오는 이 짠한 느낌.     


(건너편에는 스마트폰 삼매경의 남자대학생)

[대학생 생각] ‘박상규? 누구? 목소리는 짱인데?’     


아해야, 아해야. 너는 모를 것이다.      




(홍대 거리)     


[판촉요원] “시음하세요! 짜릿한 젊음의 음료 받아가세요! 공짜로 드려요!”   

  

목마른데 하나 받아가자.

(홍, 줄선다.)     


(홍이 받을 차례가 되자)

[판촉요원] “헉, 20대 대상으로 드리는데! 아니에요! 어머님도 드세요!”   

  

헉, 누구보고 어머니야.      


(홍, 음료수를 받아들고 억울한 얼굴로 걷기 시작)

이런 쓰벌, 제길리우스.

니네 엄마는 이렇게 앳되냐, 짜식아?

막돼먹은 놈.

암말 말고 주든가, 깔끔하게 안 된다고 하든가. 의사결정력 없는 새끼.

음료수 망해라, 이딴 거 안 먹어.

(쓰레기통에 투척.)     


(홍, 뒤돌아본다. 젊은이들이 줄서서 음료수 받는 풍경.)

(홍, 문득 주위가 인식된다. 거리의 20대 젊은이들. 갑자기 마음이 썰렁하다.)     


(홍, 카페에 들어선다. 명 작가가 창가에 앉아 있다.)     

[홍] “작가님, 안녕하세요!”

[명] “바빴다더니 얼굴은 더 좋아졌어.”

[홍] “헹, 그럴 리가요.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제 야근하면 얼굴이 썩어요.”

[명] “왜 이래. 아직 30대잖아.”

[홍] “넘은 지가 언젠데요. 나이 먹었다고 여기저기서 눈치 줘요. 느껴져요.”

[명] “...”

[홍] “나이 드니까 겉도는 것 같아요. 피부만 겉도는 게 아니에요.”

[명] “...”

[명] “자기, 새치 염색해?”

[홍] “아직요.”

[명] “자기, 노안 와?”

[홍] “벌써요?”

[명] “그럼 까불지 마.”

[홍] “넵, 언니.”    

 

(진동벨이 진동한다)

부르르릉!     


[홍과 명 동시에] “옴마, 깜짝이야!”

(쳐다보는 주위 사람들)    

 

[명] “젊은 홍 편집이 뛰어갔다 와.”

[홍] “넵, 언니!”

(홍, 진동벨 들고 뛰어간다.)     


(차 마시면서)

[명] “그래도 공짜 음료 받겠다고 냅다 줄서고  홍은 아직 패기 있네. 나는 젊은 애들 모여 있는 데는 아예 안 가잖아. 무슨 욕을 볼지 몰라.”

[홍] “오래 살아서 욕본다더니 남 말이 아니에요.”  

   



(회사에서 홍의 모습 I)

[팀 막내, 장미] “이게 뭔데요?” “왜 이런 거죠?” “왜 이래야 하죠?”

골이 띵하다.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웃기자고 그러는 거지? 그렇다고 말해줘.

몇 번이나 설명했잖아. 이해한다고 했잖아.

[홍] “시간 없어요. 장미씨. 가치판단 하지 마. 그냥 해. 외워.”  

장미의 이마에서 너 보란 듯이 빛나는 두 글자.

꼰대.      


(회사에서 홍의 모습 II)

[홍] “여태 오탈자도 안 털고 뭐 했어?” “죽을래? 죽을래?” “막교를 몇 번 봐?” “너 막교랑 사귀니?”

부글부글 울그락붉그락

냉커피, 아니 아이스아메리카노 벌컥벌컥.

[울그락붉그락 날리고 다시 씀. 울그락불그락. 울그락붉그락은 표준어 아님.]    




나이 들수록 인내심은 바닥을 치고.

(책상 앞에서 뚜껑 열리는 홍)

분노지수가 하늘을 찌른다.     


나이 들수록 작은 일에 노엽고.

(음료수 캔을 한 손으로 찌그러뜨리는 홍)     


나이 먹을수록 유치해지고.

(명 작가 앞에서 웃는 홍)

언니~ 언니~ 해해해해!     

 

나이 먹을수록 위축된다.

(젊음이 용약하는 거리에서 썰렁하게 혼자 떨어져 있는 홍.)     


우리 나이.

인생의 중간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나이  

   

나이 생각하면

아찔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가다가

문득 뒤돌아봤을 때의 느낌

우리 나이란

.

.

.

.

그럴 때 느끼는 현기증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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