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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Jan 14. 2024

산책일기

똥쟁이 웅밍이와




웅밍이는 2021년 9월 4일 고양시 동물 보호소에서 데려왔다.

공고기간은 2021년 9월 1일부터 9월 13일까지.

웅밍이는 보호소에 들어온지 4일만에 입양이됐다.

꽤 많은 아기 강아지들이 보호소의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폐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릴 수록 생존률은 떨어진다. 웅밍이는 입소 시 약 50일 정도로 추정되었고 몸무게는 1.5kg밖에는 되지 않는 연약하고 어린 생명체였다. 웅밍이의 입장에서도, 웅밍이를 만난 우리의 입장에서도 서로를 발견한 건 엄청한 행운이었다.




입양 후 얼마간, 그러니까 필수 백신 예방접종이 끝날 때까지 웅밍이는 산책다운 산책을 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길에서 태어났지만 한 3개월간은 이동가방에 넣어 다니거나 아주 잠깐 땅에 내려놓는 정도로 나름 애지 중지 키웠다. 우리는 웅밍이가 어떤 식으로든 아프지 않기를 바랬으니까.

아주 어렸을 때는 큰 문제가 없었다. 집안도 작은 웅밍이에게는 큰 놀이터였고 낯선 장소는 웅밍이의 모험욕구를 어느 정도는 만족시켜줬다. 하지만 배변훈련이 끝나갈 때쯤 문제가 발생했다.


웅밍이가 자기 똥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 그 흔적을 발견했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지.

배변 패드에 똥을 싼 흔적은 있는데 똥이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라고 하고 넘기길 몇 번, 우리는 곧 그 비밀을 알게 됐다.

똥을 싸자마자 입으로 챱! 가져가는 강아지라니. 우리는 화도내고 달래보기도 하고 가르쳐도 봤다. 하지만 똥을 싸자마자 치우지 않으면 웅밍이는 늘 자기 똥을 먹었다.

예방주사를 맞으러 간 날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니 어릴 때는 그럴 수 있다며 접종을 끝내고 산책을 시작하면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 병원에 다니는 어떤 말티즈는 두 살이 다 될 때까지 똥 먹기를 계속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함께.



웅밍이는 이제 똥을 먹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본격적으로 산책을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다. 그렇게 고치려고 하던 우리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이제 웅밍이는 자기 똥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또 조금은 이상한 결과로 나타났다.

웅밍이는 이제 자기 똥을 먹지 않지만 집 안에서 똥을 싸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똥이었다가 다음에는 오줌이 됐다. 산책을 시작하고부터 밖에서 싸는 회수가 늘어나더니 이제는 집안에서는 전혀 똥오줌을 싸지 않는 개가 됐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다

전혀.

절대로.

가끔 실외배변견을 보면 왜 더럽게 밖에다 싸느냐, 너네 집에서 싸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본다.

나도 싫어.

나도 싫다고.

나도 그냥 집에서 편안하게 있고 싶어.

강아지의 배변활동을 위해 하루에 세번 이상 밖을 싸돌아다니는 짓은 나도 사절이라고! 비도 오고 눈도 오고 장마와 태풍, 폭설, 그 더위와 추위 정말 너무 싫다고!

그런데 안 싸는 걸 어쩌란 말이야........

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하루 종일 보송한 배변 패드를 보고 알았다. 아, 우리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로 넘어갔구나.




웅밍이가 우리집에 온지 2년 하고도 4개월이 지났다. 이제 3살짜리 개청년이 된 웅밍이는 낮에 한번, 저녁에 한번, 밤에 한번 밖에 나간다. 하루에 세번 산책이라고 하면 많다고 생각이 들지만 하루에 화장실을 세번밖에 못간다고 생각하면 조금 안쓰러워서 그 세번만은 꼭 지켜주려고 한다.

하지만 안쓰러운 마음과는 별개로 웅밍이의 평일 산책을 100% 책임지고 있는 내 생활은 꽤나 웅밍이 위주로 돌아가는 중이다. 외출을 하려면 산책과 산책 사이에 하거나 아예 함께 간다. 긴 나들이라도 나가려면 웅밍이의 산책을 도와줄 누군가를 섭외하고 가야한다. 그나마 주말에는 남편이 대신해 주기도 하지만 주 5일 독박육견은 생각보다 빡세다. 그리고 육신은 동적이지만 정신은 정적이 된다.

발은 끊임없이 앞을 향해 내딛고 눈은 내 개가 더러운 것 위험한 것을 밟거나 입에 대지는 않는지 살피고 손은 이미 싼 똥을 줍느라 바쁘지만 머리속 만은 꽤나 고요하다. 집에 있었다면 핸드폰이라도 뒤적이고 집안일이라도 하겠지만 산책이라는 활동은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생각이란 것을 한다.

걸으면서 하는 생각은 그리 길 수가 없다. 그게 아니라면 강렬한 영감처럼 나를 사로잡아야 한다. 내가 산책이 끝날 때까지 기억할 수 있을 만큼의 짧은 길이거나 산책이 끝나고서도 계속 생각을 이어갈만큼 나에게 흥미로운 주제여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들을 적어 놓아야겠다는 생각도 산책 중에 떠올랐다. 그래서 산책일기에 쓰는 글들은 서로 연결성이 없을 수도 있고 그다지 정제되지 않은 것일 있다. 어줍짢거나, 어설프거나, 얕거나 하찮을  있다. 하지만 영감이란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고 기록은 언제고  역할을  때가 온다.

그래서 그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무언가들을 한번 기록해 보려고 한다.







똥먹던 시절
집 안에서는 똥을 안싸기 시작하던 시절




산책 3년차의 달견이 되어 이족보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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