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하기도 전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넷플릭스 영화 <사냥의 시간> 리뷰를 하려 한다. 윤성현 감독의 영화 <파수꾼>을 정말 재밌게 봤는데 10년 만에 돌아오는 차기작이 <사냥의 시간>이었던지라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개봉은 올해 2월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19에 치이고 배급 문제에 치이다 결국은 지난 4월 23일 오후 4시에 넷플릭스에서 독점 공개됐다. 4시가 되자마자 바로 영화를 봤고, 당일에 리뷰를 남겨야겠다고 계획까지 했지만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쉽게 키보드를 두드릴 수가 없었다. 참 아이러니했다. 두 시간 조금 넘는 영화에 왜 개봉 한 시간도 채 안돼서 별점 한 개짜리의 평점들이 우수수 올라오는가. 왜?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대중들이 아닌 내가 느낀 사냥의 시간이 어땠는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이 바로 사냥의 시간이 아니라 시간의 사냥이라는 댓글이었다. 물론 그 사람은 별점을 한 개인가 반개인가 주면서 댓글을 남겨놓았기에 이는 상당히 불만족스러운 상태에서 나온 감상이라고 추측되지만 나는 다른 의미에서 그 댓글에 공감했다.
나는 사실 계속 보는 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불안한 감정을 느꼈다. 영화 <기생충>의 후반부를 볼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하지만 이런 류의 불안한 감정은 불쾌한 감정과는 다르다. 그만큼 몰입해야 그만큼 불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보는 내내 내가 사냥당하는 느낌이 들었고, 다른 의미에서의 시간의 사냥이었다.
이 영화의 힘은 스토리보다 전체적인 분위기에 있다. 무엇보다도 배경 설정이 흥미롭다. 원화 가치가 폭락하고 총기 소지와 마약이 합법화된 디스토피아 상태의 한국이라니. 내가 상상하기는 싫지만 다른 사람이 기어코 해낸 그 상상을 시각적으로 지켜보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어떤 이는 우스갯소리로 '김치 디스토피아'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이렇게 흔치 않은 공간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다뤘으면 훨씬 신선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카지노를 털고 경찰과 연루된 조직 폭력배들에게 쫓기는 이야기는 사실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흔한 이야기다. 빌런 역할로 나온 '한'과 엮이는 순간부터 '김치 디스토피아'라는 쿨한 배경 설정은 있으나 마나 한 병풍 신세가 되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는 사운드도 한몫을 했다. 아까 영화 <기생충>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사운드 부분에 대해서는 영화 <독전> 중 한 장면이 떠올랐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농아 남매가 대량으로 마약을 제조하는 씬이 있는데 힙한 음악을 배경으로 실험실 기구들이 비치고 방독면을 쓴 남매는 엉뚱한 춤을 추는 장면이다. 모든 연출이 비장해야 할 것만 같은 씬에서 예상치 못한 배경음악이 훅 치고 들어오면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다. <사냥의 시간>에 스타일리시하다는 평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놀라운 사실은 <사냥의 시간> 음악 감독이 뮤지션 '프라이머리'였다는 것이다.
지인들이 "사냥의 시간 어땠어?"라고 물었을 때, 나는 "볼만 했어."라고 대답했다. 그게 내 진심이자 한 줄 평이다.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 가치는 스토리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영화가 천만 관객을 목표로 한다면 우리나라 영화계는 평생 제자리일 것이다. 넷플릭스는 보는 눈이 없어서 이 영화를 120억에 샀고,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보는 눈이 없어서 이 영화를 초청 상영했을까? 단순히 재미없다고 치부당하기에는 안타까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