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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Apr 10. 2023

엄마처럼 나도 작가님이야

엄마의 세상, 아이의 세상

"엄마가 우혜진 작가님이잖아. 그러니까 나도 채아작가님 이렇게 썼어"


아이는 하루 중에 많은 시간을 쓰고 그리면서 논다. 혼자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그림책이라며 나름의 책자도 만들어 한 장 한 장 그림과 글을 채운다. 비록 이야기가 연결성이 없거나 아무 말대잔치지만,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들어낸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어제 아이가 쓴 글은 이게 8살이 쓴 게 맞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몇 번이고 읽었다. 덤으로 코끝도 찡해졌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 번갈아가며 아이가 쓰고 간 글을 읽으며 둘 다 눈이 이따 만치 커졌다. 그 옆에 그려진 그림도 예사롭지 않다며 호들갑도 떨었다. 글자 받침 하나 맞지 않고 앞 뒤 문장의 연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나를 응원하는 사람이 있고 좋은 미래가 기다린다는 내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떤 생각, 어떤 마음에서 이런 글이 나온 건지 아이의 머릿속이 궁금해질 만큼 신기한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채아작가님'이라고 첫 장에 야무지게 써두었다. 

책에 작가 이름이 있어야지, 암만.




엄마라는 존재가 되고 나서 많은 것들이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나'라는 사람이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적다는 사실이 가장 두려웠다. 살아온 인생이 만족스럽고 자신 있는 엄마는 나만큼만 살라고 이야기하겠지? 하지만 나는 지금껏 살아온 내 삶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아이에게도 영향을 줄 나의 모든 것이 무섭기까지 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조차 품지 못했지만 나만큼의 삶 딱 그만큼만 보여주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우연히 책을 냈고, 감사하게도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걸 계기로 내 생각은 넓어졌고, 내가 사는 세상도 바뀌었다. 아이는 고스란히 엄마의 세상에 함께 올라탔다. 누군가 엄마를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고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구나, 이런 일을 하는구나' 알고 있는 모양이다. 글의 처음이 꼭 자신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걸 보면 말이다.


엄마처럼 나도 작가라고 썼다는 아이의 말이 꼭 '엄마 멋있다' 이렇게 이야기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런 호칭과 분위기가 좋아 보였으니 따라 하고 싶었을 것이고, 자신도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를 볼 때면 고맙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엄마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으로 떠올렸으면 좋겠다. 그래야 자신도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결국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 아직 어린 8살이지만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들에 영향을 받고 자란다. 그래서 앞만 보고 가다가도 나와 아이를 돌아보게 된다. 


엄마가 하는 일과 엄마가 사는 방식을 그대로 보는 아이는 이제 엄마처럼 작가라고 자신을 말한다. 삐뚤게 가위질을 한 종이와 아무렇게나 찍은 스테이플러, 첫 장 표지에 '채아 글 그림' 또는 '채아작가'라고 써둔 걸 보며 엄마보다 더 큰 세상에서 살아갈 아이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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