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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Aug 30. 2023

남편이 육아휴직계를 냈다

"육아휴직계 써서 내야 되니까 오늘은 여보가 아이들이랑 같이 자"

"지금???"


올 것이 왔다.





남편은 한 회사를 17년째 다니고 있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만족하는 사람이 없듯 남편도 그저 가장이라는 무거운 이름으로 살기에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다는 이유로 버티며 일을 하고 있다. 좋아서 다니는 날보다 어쩔 수 없이 출근을 하는 날이 훨씬 많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당연히 해야 하는, 삼시세끼 먹고사는 것과 같은 본능적인 그런 활동이다. 


이른 출근 + 이른 퇴근이라 아침 6시 20분에 가족 모두 자는 시간, 혼자 6시쯤 일어나 통근버스를 타러 나선다. 겨울에는 컴컴하기도 하고 추운 시간이라 아마 출근길이 많이 외로울 것 같다. 물어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4시 반 퇴곤 5시 통근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를 살고 있다. 


3년 주기로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했다. 슬럼프가 주기적으로 왔다는 뜻이다. 아이가 하나 둘 생기고, 나는 어린아이들을 보느라 집에 있으니 우리 집의 경제사정은 남편의 월급에 100% 의존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실현되기 어려웠다. 당장 손을 빨고 있기에 4명은 너무 많은 수 아닌가. 앞뒤 재지 않고 그만두고 싶다고 진지하게 얘기하는 무책임한 사람은 아니라 당장 휴직이나 실업이 현실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다 결혼 초기에 남편은 크게 아픈 적이 있었고,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우리의 삶이 영원할 것 같지만 지속적인 것조차 내가 선택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 자신도 책을 읽고 생각을 많이 하며 삶의 방향을 바꾸며 행복이라는 것을 찾아 살아가게 되었다. 


회사라는 곳이 한 사람의 평생을 묻어야 하는 게 아닌 세상이 되었고, 월급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다니는 사람도 늘어났다. 또 그와는 반대로 개인의 힘은 커졌고 그 개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나와 남편이 그런 개인이다. 

나처럼 자신의 쓸모를 찾아 남편은 여전히 고민 중이다. 남편은 아이를 키우다 난데없이 책을 쓰겠다는 나를 밀어준 것도 그림을 그리는 일에 매달 돈을 들여도 응원해 주었다. 일을 하며 집을 비우는 시간이 늘어도 늘 아이들을 담당해 주었고, 그런 나를 요즘은 부러워한다. 

그러니 이제 나는 남편에게 받은 것들을 조금이나마 돌려주고 싶다. 확 그만두라는 말은 차마 못 하지만.


"지금 당장, 돈도 시간도 가족도 모두 자유롭다면 무엇을 하고 싶어?"


이 이상적이고 현실성 없는 질문에 우리를 놓고 답을 찾기 시작했다. 현실적인 요소들을 단 하나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안다. 두 아이에게 조금이지만 매달 들어가는 돈, 식비, 가끔이지만 누리면서 사는 호사(책구매나 캠핑이나 여행), 시댁 용돈, 아파트 대출이자 하물며 그냥 있어도 나가는 아파트 관리비와 전기세와 가스요금까지. 우리 가족이 숨만 쉬는 1초 동안에도 얼마의 돈이 매일 나가는지.. 

그 넘의 돈돈 안에서 남편은 웃음을 잃고 한숨이 늘어간다.




"육아휴직 1년은 좀 그렇고 6개월, 그 정도는 나도 가능하다고 생각해"


우리 집 수입 전체를 담당하는 남편의 월급이 1년 동안 없다면 그건 재난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현실과 타협하고 어느 정도 기간이면 육아휴직 월급으로 생활이 가능할까를 고민했을 때 내가 내린 결론은 6개월이었다. 17년이라는 시간에 비해 매우 짧지만 우리는 과거 17년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 현재와 앞으로 살아가할 시간도 고려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기간, 6개월을 선택했다.


결혼한 지 10년. 10년 동안 우리의 경제력을 책임져준 남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데 큰 도움을 준 사람에게 이제는 돌려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결론이다. 


요즘 그는 육아휴직 기간을 너무 잘 채우고 싶어서 뭘 할까 매일 즐겁고도 고독한 고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냥 매일을 운동하고 피아노 치면서 한량처럼 보내도 괜찮은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캐나다에 열흘쯤 여행을 가고 겨울에는 강원도에서 살아볼까. 들어오는 돈은 반이상 줄어드는데 시간은 늘다 보니 놀 궁리만 잔뜩이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해보냐는 말로 모든 걸 덮으면서.


어쨌든, 10월이면 남편은 육아휴직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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